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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획] 인천의 숨은 섬들② '대청도', 바람이 새기고, 시간이 쌓아 올린 섬

- 대청도의 10억 년 지질이 들려주는 이야기 “수천만 년의 파도 흔적이 새겨진 섬”
- 대청도 '서풍받이' “시간의 파도에 깎인 바위, 서풍받이의 침묵이 말을 걸다”

2025-10-27 12:03:25

[로이슈 차영환 기자] 대청도 농여해변의 나이테바위(고목바위)가 오랜 세월의 결을 품은 채 바다 위에 서 있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풀등(모래톱)을 걸으면, 바위와 파도, 하늘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서풍받이의 절벽에서 옥죽동 모래언덕까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서해 최북단의 풍경 서해의 끝자락, 파도와 바람이 쉼 없이 깎아낸 절벽이 붉게 타오른다.

인천 옹진군 '대청도(大靑島)', 소청도에서 배로 약 20분 거리, 바다를 건너 도착한 이 섬은 서해 5도 중 두 번째로 크며, 해발 343m의 삼각산을 중심으로 기암괴석과 모래언덕이 공존한다.

바다와 맞닿은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10억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지구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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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지질 보고, 대청층군의 시간 기록

대청도는 인천 백령도·소청도·연평도와 함께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이곳의 지질학적 핵심은 바로 ‘대청층군(大靑層群)’. 대청층군은 하부 지두리층과 상부 독바위층으로 구분되며, 퇴적 시기는 약 10억 년 전 신원생대 이후로 추정된다.

이는 고생대 이전, 지구 대륙이 형성되던 시기의 지층으로, 한반도 서부 지질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두리층은 비교적 입자가 고운 셰일과 사질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독바위층은 조립질 사암이 주를 이룬다. 이 지층들은 당시 바다나 호수의 바닥에 퇴적된 진흙과 모래가 오랜 세월 동안 압력을 받아 굳어진 것으로, 지각 운동을 거치며 위로 융기해 현재의 대청도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해안 절벽에서 관찰되는 지층의 휘어짐과 절리(節理)는 당시의 지질 변동과 압력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대로 부터 내려온 지질학적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바람이 깎은 예술, ‘서풍받이’ 절벽의 경이

섬의 서쪽 끝, 대청도의 상징이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풍받이(西風받이)는 말 그대로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곳이다.

수직으로 솟은 규암 절벽(높이 약 80m)은 파도와 바람, 그리고 시간의 조각칼에 깎여 지금의 형태를 이루었다. 햇살이 기울며 절벽을 붉게 물들이면, 절벽은 불타는 병풍처럼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장엄한 풍광을 드러낸다.

절벽을 따라 조성된 탐방로에는 전망대와 쉼터가 곳곳에 놓여 있다.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귓가에 ‘후’ 하고 스치는 소리가 마치 대청도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바다 건너로는 사람 얼굴 형상을 닮은 대갑죽도가 누워 있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북녘의 산줄기가 눈에 잡힌다.

서풍받이의 동쪽으로 이어진 기름아가리 절벽에서는 S자 모양으로 휘어진 지층이 드러나는데, 이는 지각이 압력을 받으며 비틀린 흔적으로 지질학 교과서에 실릴 법한 형태다.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 서안사구 일대. 바다에서 밀려온 모래가 오랜 세월 바람에 쌓여 만들어진 자연의 예술품으로, 해질 무렵 붉게 물든 모래결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조철수 해설사는 “서풍받이는 대청도 국가지질공원 네 곳 중 유일하게 체계적인 트레킹 코스를 갖춘 곳”이라며 “절벽의 규암은 바다의 풍화작용으로 단단히 다져졌고,지층의 기울기와 방향을 통해 퇴적 당시의 환경까지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시출입연합기자단들이 해설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인천시출입연합기자단들이 해설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대청도의 진면목은 걸어서 만나야 한다.

섬의 최고봉인 삼각산(343m)에서 시작해 광난두 정자각과 서풍받이로 이어지는 7km 길의 ‘삼서트레킹 코스’는 바다와 산, 절벽과 억새가 어우러진 길이다.

가을의 억새밭을 따라 바람결에 흔들리는 해송 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면, 바위 틈새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최춘옥 해설사는 “절벽 바위들이 각도에 따라 사람의 옆얼굴이나 웃는 사자, 말발굽처럼 보인다”며 “자연이 만든 조각품 같은 형상 덕분에 탐방객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삼서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노을이 서풍받이 절벽에 닿는 순간이다. 붉은 빛이 암벽을 타고 번지며,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섞인다. 그 순간, 섬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듯 고요하고도 장엄하다.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면, 대청도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깊다는 것을 체감한다.

모래가 부른 신비, ‘옥죽동 해안사구’

대청도의 북쪽에 자리한 옥죽동 해안사구는 ‘한국의 사하라 사막’이라 불린다. 길이 약 1.6km, 폭 600m의 모래언덕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며, 바람에 날리는 모래결이 시간마다 다른 문양을 만든다.

이곳의 모래는 해안에서 바람에 의해 육지 쪽으로 운반되어 쌓인 것으로, 지형학적으로 활동성 사구(移動砂丘)에 해당한다. 모래 위에 앉아 있노라면, 눈앞의 풍경이 사막인지, 바다인지 혼동될 만큼 비현실적이다.

가늘게 부는 바람에 따라 모래가 춤을 추고, 그 위로 구름 그림자가 흘러간다. 예로부터 대청도에는 “옥죽동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속담이 전해진다. 그만큼 바람과 모래가 삶의 일부였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사구가 지금보다 훨씬 넓어 축구장 60개에 달할 정도였으나, 주민들이 생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면서 규모가 줄었다.

하지만 지금도 옥죽동 사구는 사계절마다 형태가 달라지는 살아 있는 지형이며, 생태학적 가치 또한 높다.

대청도 농여해변의 나이테바위(고목바위)가 오랜 세월의 결을 품은 채 바다 위에 서 있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풀등(모래톱)을 걸으면, 바위와 파도, 하늘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이미지 확대보기
대청도 농여해변의 나이테바위(고목바위)가 오랜 세월의 결을 품은 채 바다 위에 서 있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풀등(모래톱)을 걸으면, 바위와 파도, 하늘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관광과 산업, 대청도의 미래

대청도는 단순한 관광섬이 아니다. 그 속에는 지질학적 가치, 생태자원, 그리고 지역산업의 미래 가능성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서풍받이와 옥죽동 사구, 사탄동 해안, 지두리층 노두 등은 이미 국가지질공원 인증지로 지정되어 학술적·관광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에 인천시와 옹진군은 지질 탐방 프로그램, 생태 트레킹, 마을 체험형 숙박산업 등을 결합한 지속가능한 관광 모델을 구상 중이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한 해안 침식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대청도의 지질자원은 해양환경 보전 연구의 현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질 전문가들은 “대청도의 절벽과 사구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지구의 기후와 환경 변화가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대청도에서 마주한 바람은 차고 세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0억 년 전의 바다에서 시작된 퇴적물이 오늘의 절벽이 되었고, 바람이 불어 모래를 옮겨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인간은 그 곁에서 잠시 머물며 섬의 시간을 빌려 쓴다. 붉게 물든 서풍받이의 절벽 앞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언제나 거대하고, 인간은 그 앞에서 잠시의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그 잠시가, 바로 우리가 이 섬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차영환 로이슈 기자 cccdh76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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