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다수 성범죄 피해자들은 사건 발생 직후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수사에 임하는 과정 자체가 큰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며, 가해자 측이 반복적으로 합의 요구 및 금전적 협상을 시도하면서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도 많다.
형법상 성범죄는 친고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기관은 사건을 인지하면 직권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의금을 제시하며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제3자나 중간인을 동원해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가족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또 하나의 정서적 폭력이자 2차 가해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피해 사실을 감추고자 하는 심리와 ‘합의금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합되면서, 피해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범죄 합의금 문제는 단순한 금전 거래를 넘어 매우 민감한 법적 쟁점으로 여겨진다. 특히 최근에는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처벌이 면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합의 여부는 양형의 참고 사유에 불과할 뿐, 중대하거나 반복적인 범죄, 미성년자 대상 범죄 등에서는 실형이 선고되기도 한다.
장예준 변호사(여울 여성특화센터)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합의금은 실질적인 보상이라기보다 또 다른 형태의 심리적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합의를 고민하기 전, 먼저 자신의 상태와 법적 권리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피해자의 감정 상태나 회복 과정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합의하면 끝’이라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선택은 어떤 방식이든 정당한 보호를 받아야 하며, 피해 회복의 중심에는 반드시 피해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
성범죄 합의금은 사건을 덮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법은 피해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며, 진정한 회복은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선택을 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news@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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