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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성전환 고민 남성, 여성호르몬 맞은 건 병역면제 목적 아냐”

호르몬 주사로 여성 외모 갖춘 20대 남성, 병역법 위반 혐의 무죄 확정

2014-12-15 18:04:27

[로이슈=신종철 기자] 중학교 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성전환 수술을 고민하던 남성이 군 입대를 앞두고 여성호르몬을 투약해 여성의 외모를 갖추어 갔더라도, 이는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신체적 변화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성 주체성 장애’가 없음에도 오직 병역의무를 감면받을 목적으로 10개월 동안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남성성을 버리는 행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법원에 따르면 A(22)씨는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자신이 여성스럽고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 소수자들이 가입된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A씨는 화장을 하고 성적 소수자들을 만나면서 연인으로 남성들과 여러 번 사귀었고, 처지가 비슷한 주변의 성적 소수자들에게 ‘여성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왔다.

A씨는 대학생이 된 후 휴학을 하고 입대하기 전까지 성전환 수술을 진지하게 고민해 ‘게이 클럽’에서 생활하면서 성적 정체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수술에 따른 경제적 비용,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성전환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A씨의 모친이 지원 입대 신청을 했다. 입대 전까지 성적 소수자들의 집에서 여성 호르몬 주사를 5회 정도 맞은 A씨는 2011년 9월 훈련소에 입소할 당시 가슴에 약간 몽우리가 생기고 부은 상태에서 다른 동료들과 같이 씻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로 심한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자, 도저히 군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남자를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A씨는 국군병원에서 정밀신체검사 결과 ‘동성애로 인해 복무 적응이 힘들다’는 소견으로 귀가조치 됐다.

이후 A씨는 도저히 군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에 성전환 결심했다. 병원에서 ‘성 주체성 장애(게이)’ 진단을 받자 산부인과에서 여성호르몬 주사 및 처방을 17회 이상 받았다.

검찰은 “A씨가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트랜스젠더가 아님에도 고의로 트랜스젠더로 행세하기 위해 산부인과에서 속임수로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가슴이 커지고 털이 없어지는 등 신체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며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대법원 “성전환 고민 남성, 여성호르몬 맞은 건 병역면제 목적 아냐”이미지 확대보기
하지만 1심인 대전지법 형사4단독 최누림 판사는 2013년 10월 A씨의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12고단3896)

재판부는 “입대 직후 피고인이 보였던 상태는 정신과적으로 군 복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성 주체성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입대 직후 피고인이 보인 극심한 불안감, 공포감과 그 직후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힌 언행은 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성적 소수자에게서 나타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피고인이 성 주체성 장애가 전혀 없음에도 속임수를 쓴 것으로 보기에는 매우 부자연스럽다”라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10개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 호르몬 주사를 투약 받아 육안으로 보더라도 신체의 외형상 변화가 확인되는바, 그러한 신체적 변화를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성 주체성 장애’가 없음에도 오직 병역의무를 감면받을 목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에는 피고인의 입대 전까지의 외모, 복장, 언행과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검찰이 항소(2013노2652)했으나, 대전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용덕 부장판사)도 지난 7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트랜스젠더가 되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점이 피고인이 호르몬 주사를 맞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피고인이 자신의 성 주체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 호르몬주사를 통한 여성화를 시도한 점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피고인이 며칠간 경험했던 군 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성 주체성의 혼란에 대해서 더욱 확고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이러한 성 주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군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병역의무가 면제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보이며, 단순히 피고인이 군생활의 경험이 고통스러워 오로지 병역 의무를 면제 받기 위해서 1년간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자신의 남성성을 버리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경험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항소를 기각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2014도9826)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지난 1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2)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며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검사의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칙에 위반되거나 병역법 제86조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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