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며 아이까지 낳게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은 “연인관계의 사랑”이라고 주장했으나, 하급심 법원은 “27세나 차이가 나는 욕정”이라며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뒤집고 이 남성에게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연인관계의 사랑”이라는 남자의 주장이 인정받은 것이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A(당시 42세)씨는 2011년 8월 아들이 입원해 있던 서울의 모 병원에 갔다가, 입원 중이던 중학교 3학년 B(여, 당시 15세)양을 우연히 마주쳤다.
A씨는 키도 크고 예쁘장하게 생긴 B양이 연예인에 관심을 보이자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면서 명함을 주며 접근했다. 다음날 새벽 1시경 A씨는 B양을 승용차에 태워 한강 고수부지에 데려가 고민을 들어주다가 추행했다. 그 무렵부터 이듬해 2월까지 A씨는 B양을 수차례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2년 4월말 B양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A씨는 “내가 책임지겠다. 가출해라. 낙태는 불법이다”라며 부모에게 스스로 가출한 것처럼 허위 편지를 쓰게 한 다음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혐의도 포함됐다.
한편, B양이 가출해 A씨의 집으로 들어온 이후 3주 정도 지난 2012년 5월 A씨는 다른 형사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10월의 선고받아 수형생활을 했다.
이에 검찰은 A씨를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간음유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A씨는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인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1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또 5년간 개인신상정보를 공개할 것과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00시간 이수 명령을 내렸다.
이에 A씨가 “위력으로 추행하거나 강간한 사실이 없고,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가출한 것일 뿐 유인한 바도 없다”고 항소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연인관계의 사랑”이라고 항변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7월 “피고인의 연인관계라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형량은 징역 9년으로 낮췄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강간 등), 미성년자유인 등의 혐의로 기소돼 원심에서 징역 9년이 선고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14도9288)에서 A씨에게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연인관계의 사랑”이라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이 다른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동안에 거의 매일 피고인을 접견했고, 피고인에게 많은 접견민원서신, 인터넷서신을 보냈는데, 그 서신은 피해자의 소소한 일상생활 이야기와 함께 ‘피고인을 사랑한다, 많이 보고 싶다, 함께 자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 고맙다, 힘내라’는 내용, 당시 임신 중이던 피고인의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우고 싶다는 내용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해자(B)는 “만일 자신이 서신을 작성하지 않거나, 서신 용지를 가득 채우지 않거나, ‘피고인을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하지 않으면 피고인(A)이 화를 낼 것으로 짐작하고 피고인의 비위에 맞추어 허위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해자가 피고인을 접견한 횟수나 접견 시의 대화 내용, 서신을 보낸 횟수, 서신의 내용, 형식, 즉 색색의 펜을 사용한 것은 물론 하트 표시 등 각종 기호를 그리고, 스티커를 사용해 꾸미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그 내용은 피해자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이고, 이와 달리 마음에 없는 허위의 감정표현을 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과 피해자는 처음 만난 후부터 피고인이 구속되기 전까지 많으면 하루에도 수백 건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고,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피고인을 오빠, 자기, 남편으로 호칭하면서 연인 사이에나 주고받을 법한 일상생활 이야기와 함께 사랑한다는 내용, 보고 싶다는 내용,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내용 등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피고인이 문자메시지마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라고 했고, 답장을 바로 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때문에 피고인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허위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횟수, 내용, 형식 등에 비추어 보면, 그 내용 또한 피해자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이와 달리 피고인의 강요 때문에 허위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피해자의 진술 역시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접견민원서신, 인터넷 서신이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피고인이 구속된 뒤에도 그 감정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신의 내용에 의하면, 피해자는 피고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옷차림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 봤을 때 피고인을 귀엽다고 생각했으며, 피고인의 승용차를 타고 한강 고수부지에 갔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그날 이후 피고인을 쭉 사랑해 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그런데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하는 바로 그날 한강 고수부지 승용차 안에서 피고인이 위력 추행 범행을 저질렀다는 피해자의 진술, 나아가 그 이후에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사실과 같은 각 범행을 저질렀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선뜻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에 의하면, 자신보다 27세나 많은 부모 또래의 피고인이 새벽에 자신을 승용차에 태워 한강 고수부지 주차장에 데리고 가서 위력으로 추행하려고 했는데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같은 날 저녁에 다시 만난 피고인이 또다시 위력으로 키스해 추행하고 며칠 뒤에는 승용차 안에서 강간했는데도 역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음은 물론, 그 뒤에도 피고인과 함께 교회에 가는 등 만남을 계속 가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추행사실이나 강간사실을 알리면 보복하겠다는 내용의 협박을 하거나, 폭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피고인이 만남을 강요했다는 점을 인정할 다른 증거도 전혀 없다”며 “나아가 피해자 스스로 겁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추행이나 강간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피고인과 계속 만난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없고, 상위권의 학업 성적에다가 성교육을 여러 번 받은 중학교 3학년생이던 피해자가 키스만으로 임신이 된다고 믿었다거나 그에 따른 임신중절 비용이 걱정돼 피고인을 계속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진술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접견 대화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피해자를 걱정하면서 성폭행범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서 주거지 인근에 성폭행범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짧은 치마 같은 것을 입고 다니지 말고 조심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한 피해자는 ‘성폭행범도 집행유예로 나오거나 몇 개월밖에 감옥에서 안 사는데, 피고인이 뭘 했다고 왜 못 나오냐’라는 접견민원서신을 보내기도 했다”며 “이것은 추행 또는 강간을 당한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서 주고받을 내용의 대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미성년자유인죄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피해자는 가출한 후에도 얼마든지 피고인의 집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더욱이 피고인이 구속된 이후에도 피고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피고인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피해자보다 두 살 어린 피고인의 아들을 돌보기도 한 점, 피해자는 가출 후 피고인의 집에 거주하는 기간에 경찰관이나 어머니를 만나기도 했고,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으나, 피해자는 어머니를 따라 집에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피고인의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의 어머니는 피고인의 집에 살고 있던 피해자에게 반찬, 미역국, 과일쥬스 등 음식을 챙겨주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망 또는 유혹해 피해자를 자신의 물리적ㆍ실력적인 지배관계 아래에 두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결국, 원심이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한 데에는, 위력에 의한 청소년 추행죄에 있어서의 위력의 개념, 강간죄에 있어서의 폭행ㆍ협박의 정도, 미성년자유인죄에 있어서의 유인의 개념 등에 관한 법리나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