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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민주화운동 보상금 받았다면, 국가배상 청구 못해”

“국가배상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은 부적법해”

2014-03-31 21:06:07

[로이슈=신종철 기자] 민주화운동 보상금 지급결정에 동의해 생활지원금을 받은 경우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이어서, 또 국가배상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은 부적법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동일방직은 1976년 노동조합의 당시 집행부에 대한 반대파 조합원들을 통해 노동조합의 선거에 개입해 왔다. 인천동부경찰서는 동일방직 노조 대의원 대회 날인 1976년 7월 집행부의 핵심인물인 지부장과 총무부장을 공금횡령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하고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지부장과 총무부장에 대한 횡령 혐의는 구실에 불과했고, 체포의 실질적인 이유는 이들이 대의원 대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 배후에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노조 반대파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체포된 틈을 이용해 대의원 대회를 열어 현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하고 새로운 지부장을 선출해 집행부를 장악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항의 농성을 벌였고, 경찰은 집회를 해산하면서 강제로 연행하려 했다. 여성 조합원들은 속옷만 입고 있거나 알몸으로 시위하며 저항했다.

또 동일방직 노조 대의원 선거일인 1978년 2월 반대파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려던 조합원들을 향해 똥물을 투척했다. 이런 소동 때문에 투표가 진행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명동성당 등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수습대책위원회에서 ‘복직 보장과 구속자 석방’이라는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회사 복귀가 결정되고, 농성 노동자들의 복귀 시한까지 정해졌다.

그러나 결국 120여명의 조합원들이 해고됐고, 노동조합은 와해됐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중앙정보부가 위 사건에 관해 반대파 조합원들과 협의를 하는 등 깊이 개입했고, 중앙정보부의 지시로 조합원들이 해고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후 전국섬유노조 부산지부장 명의의 “인천 동일방직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불미스러운 집단에 동조하기 위해 작업장을 이탈하는 등의 소란으로 해고된 근로자들의 명단을 통보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전국사업장에 배포됐다.

이 블랙리스트에는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중 116명의 명단이 포함돼 있었다. 이 때문에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은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 없었고 취업되더라도 곧 해고됐다.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결과 경찰, 노동부, 중앙정보부 등의 국가기관이 이런 블랙리스트를 작성, 취합, 배포해 노동운동의 통제수단으로 활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해고자 강OO씨 등은 2001년에서 2010년경 사이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당시 인정된 사실은 시위 및 농성, 그로 인한 해고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이들은 보상심의위원회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생활지원금을 신청해 4000만원 또는 5000만원의 지급결정을 받아 지급결정에 동의하고 생활지원금을 수령했다.
이후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강씨 등 조합원들과 유족 22명은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공무원들이 1976년 및 1978년 경찰력을 투입해 노조 선거에 개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조활동에 불법으로 관여해 노조활동을 방해한 것은 노동에 관한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피고의 해당 공무원들은 원고들에 대한 해고를 지시하고 해고 노동자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 및 관리해 원고들의 재취업을 막은 행위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원고들이 경제적 궁핍, 사회적인 편견과 냉대에 직면하게 돼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만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7민사부(재판장 염원섭 부장판사)는 2011년 10월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대한민국)는 원고들에게 위자료 10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산하 국가기관은 업무수행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정도의 잘못을 넘어, 노사관계에 조직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개입해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 및 배포해 재취업을 방해했다”며 “이로써 원고들은 정상적인 직업인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돼 오랫동안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채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으리라 추정할 수 있으므로, 위 행위의 불법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22민사부(재판장 여상훈 부장판사)는 2012년 5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을 근거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은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민주화운동보상법 시행령 별지 제19호 서식의 동의 및 청구서에는 “신청인은 그 보상금 등을 받은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을 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할 것임을 서약합니다”라고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생활지원금을 신청해 4000만원 또는 500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모두 수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됐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해고 노동자들 등의 상고(2012다45603)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보상금을 받은 해고 노조원들의 국가배상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생활지원금을 수령한 원고들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 규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했으므로, 원고들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들에 대해 다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모두 부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재판부는 보상금 지급 결정 당시 판단을 받지 못한 2명의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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