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심으로서는 원고와 피고 1(추진위)에게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할 의사가 인정될 수 있는지 등을 심리하여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의 유효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러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에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이 포함되어 체결되었다는 사정과 이 사건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과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함께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도 무효가 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무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피고 1(추진위)은 구 도시정비법 제13조에 따라 관악구 A일대를 시행구역으로 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시행할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토지 등 소유자 수: 1,311명)을 설립하기 위해 구성되어 2004. 6.25. 서울 관악구청으로붜 설립 승인처분을 받은 비법인사단이다. 피고 2는 피고 1의 위원장, 피고 3내지 13은 이 사건 사업구역 내 토지등 소유자들이다.
피고 1은 2006. 7.25. 주민총회를 개최해 원고(H건설)를 시공사로 선정하는 결의를 했다. 피고 1은 2006. 9.26. 원고와 이 사건 정비사업에 관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 일반조건 제15조는 원고가 이 사건 피고 1의 요청에 따라 이 사건 정비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소요되는 자금을 대여한다고 정하고 있다(이하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 피고들은 제1심 공동피고 N과 함께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에 따른 이 사건 피고 1의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원고는 2006. 11. 24.부터 2010. 7. 15.까지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이 사건 피고 1에 수차례에 걸쳐 합계 3,450,937,380원을 대여했다. 피고 1은 그중 일부 대여금에 관해 다시 원고와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원고에게 공정증서를 작성해 주었으며 피고들 중 일부는 이에 따른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한편 이 사건 정비사업의 정비구역 내 토지 등 소유자가 피고 1을 상대로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해 2010. 11.경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서울고등법원 2010나46574)과 판결(서울고등법원 2010나49757)이 각각 확정됐다.
1심(서울중앙지법 2017. 1.26.선고 2013가합72829 판결)은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에게 2,524,340,220원 및 이에 대해 피고1 내지 3,8내지 10,12,13은 2013. 10.19.부터, 피고 5, 11은 2013. 10.22.부터, 피고 7은 2013. 10.23.부터, 피고 4,6은 2013. 11.26.부터 각2015. 9.30.까지는 연 20%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지연손해금 중 '2015. 10.1.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관한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주위적 및 예비적 청구를 각 기각했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19. 4. 9. 선고 2017나2016790 판결)은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주위적 및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원심은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인 이상 이를 전제로 하는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도 무효라는 점에 대하여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은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 내에 포함됐고 원고와 이 사건 피고 1이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별개로 체결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 역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피고들은 원고에 대하여 연대보증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하나, 그 무효 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민법 제137조). 여기서 당사자의 의사는 법률행위의 일부가 무효임을 법률행위 당시에 알았다면 의욕했을 가정적 효과의사를 가리키는 것이다(대법원 2013. 4. 26. 선고 2011다9068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법률행위의 일부무효 법리는 여러 개의 계약이 체결된 경우에 그 계약 전부가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하여져서 하나의 계약인 것과 같은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때 그 계약 전부가 일체로서 하나의 계약인 것과 같은 관계에 있는 것인지의 여부는 계약 체결의 경위와 목적 및 당사자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6. 7. 28. 선고 2004다54633 판결,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0다288375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이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하여져 하나의 계약인 것 같은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더라도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이 여전히 유효라고 볼 여지가 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고와 피고1은 추진위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의 법적 효력이 분명하지 않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고 거기에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도 포함시켰으며 이에 기초하여 그 무렵부터 2010. 7. 15.경까지 수차례에 걸쳐 금전 대여관계를 맺어 왔다.
추진위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라 하더라도, 조합 설립 후 조합 총회에서 추진위가 한 시공사 선정을 추인하는 결의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결의로 피고1이 한 시공사 선정은 유효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와 피고1의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장차 조합이 설립되면 조합 총회 결의를 통해 추진위 단계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나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유효로 될 수 있다는 사정을 염두에 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추진위 단계에서 체결된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될 것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원고와 피고1이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자금 대여관계를 유지했다는 의사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더구나 원고는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에 관하여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가 계속 중인 2010. 7. 15.까지도 지속적으로 피고1에 금전을 대여하고 일부 대여금에 관하여는 추가로 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작성받기도 했다. 위 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에는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의 해약이 기한의 이익 상실에 따른 이행기 도래 사유로 정해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와 피고1은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체결할 당시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원고와 피고 1에게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할 의사가 인정될 수 있는지 등을 심리하여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의 유효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러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에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이 포함되어 체결되었다는 사정과 이 사건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과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함께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도 무효가 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무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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