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무담보를 위하여 채권자에게 부동산에 관하여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한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대법원 208. 3. 27. 선고 207도9328 판결, 대법원 201. 1. 10. 선고 201도124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을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의 의의=종래 대법원은 채무담보로 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의 채권자에 대한 저당권설정의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로 보아 이에 위반하여 제3자에게 먼저 저당권을 설정하거나 양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내지 상실시킨 행위에 대하여 배임죄를 인정해 왔다.
그러나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있어 임무위배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에 앞서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가려야 한다. 채무자의 저당권설정의무는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른 의무로서, 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채권자를 위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다. 위와 같은 타인의 사무에 관한 엄격해석을 통해 종래의 판결을 변경함으로써 형벌법규의 엄격해석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법(私法)의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한다는 데 이 판결의 의의가 있다.
회사 대표인 피고인(47)은 2016년 6월 14일경 피해자로부터 전환사채 대금 명목으로 18억 원을 차용하면서 담보로 피고인 소유의 아파트(20% 배우자소유)에 피해자 명의의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정했고, 2016년 9월 13일경 피해자로부터 근저당권 설정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받았으므로 피해자에게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 등기절차를 이행해 주어야 할 임무가 발생했다.
피고인은 위와 같은 임무를 위배해 2016년 12월 15일경 이 사건 아파트에 제3자(회사) 명의로 채권최고액 12억 원인 4순위 근저당권을 경료해 줌으로써 이 사건 아파트의 담보가치 상실액인 4억7500만 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피해자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사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주체를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받은 제3자로 보았으나,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배임행위로 인한 재산상 이익 내지 손해를 이 사건 아파트에 대한 상실된 담보가치 상당액으로 보는 이상,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람은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줌으로써 그 담보가치 상당액을 이용할 수 있게 된 피고인이라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2018고합663)인 서울중앙지법 제33형사부(재판장 이영훈 부장판사, 판사 박상훈, 이정덕)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인정된 죄명 : 배임),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강제집행면탈의 점은 무죄.
1심은 피고인이 1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하 ‘특정경제범죄법’)위반(배임)의 점은 판결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하고, 피고인이 4억 7500만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배임의 점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피고인은 항소했다.
원심(2심 2019노287)인 서울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차문호, 판사 김민기, 최항석)은 2019년 9월 26일 1심판결 중 유죄부분(이유무죄 부분 포함)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1심판결 중 무죄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피고인(47)이 피해자로부터 18억 원을 차용하면서 이 사건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했음에도 제3자에게 채권최고액을 12억 원으로 하는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어 1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피해자에게 같은 금액 상당의 손해를 가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당시 이 사건 아파트의 시가가 50억 원이었고, 거기에 설정되어 있던 선순위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이 합계 37억 9000만 원이었으므로, 이 사건 아파트의 잔존 담보가치는 12억 1000만 원(= 50억 원 - 37억 9,000만 원) 상당이었는데, 피해자의 채권액이 18억 원 이상이었으니 적어도 위 잔존 담보가치 12억 1000만 원 상당은 모두 피해자에게 제공되어야 했다. 그런데 피고인이 위 잔존 담보가치 중 12억 원 상당을 제3자에게 제공함으로써 피해자는 1000만 원 상당의 담보가치만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피고인의 배임행위로 인한 피고인의 재산상 이익 또는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인 담보가치 상실액은 12억 원(= 12억 1000만 원 - 1000만 원)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대법관 안철상)은 2020년 6월 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서울고법에 환송했다(대법원 2020.6.18.선고 2019도13440 전원합의체판결)
대법원은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간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에 있고, 피고인을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이 이에 해당된다고 전제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채무자가 제3자에게 먼저 담보물에 관한 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담보물을 양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금전채무에 대한 담보로 부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채권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그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와 달리 채무 담보를 위하여 채권자에게 부동산에 관하여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한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7도9328 판결,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도11224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한편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은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위 판결은 부동산이 국민의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부동산 매매대금은 통상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뉘어 지급되는데,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대금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하고도 매도인의 이중매매를 방지할 충분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래 현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종래의 견해를 유지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는 이 판결의 다수의견에 반하지 아니함을 밝혀둔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9명)이 일치했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과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이 있다.
반대의견(4명) :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 → 상고기각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저당권설정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은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채권자에게 취득하게 하는 데 있고, 위와 같은 채무자의 의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부동산 이중매매에서 배임죄를 인정하는 것과 같이 부동산 이중저당의 경우에도 배임죄가 인정되어야 한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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