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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울산지법 부장판사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탄원입니다"

자살 방조미수 피고인들에게 책과 현금 선물

2019-12-09 14:51:49

울산지법 현판.이미지 확대보기
울산지법 현판.
[로이슈 전용모 기자] "재판부는 이 사건을 두고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를 막을 수만 있다면, 강제로라도 여러분들을 장기간 구금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여러분들이 삶의 의지를 조금이나마 되찾았다는 긍정적 징후를 재판과정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상당기간의 정신과적 치료와 심리상담 등을 조건으로 여러분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결정을 했습니다.

재판부의 이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어쩌면 이 마지막 당부는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탄원입니다.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듯 이젠 스스로 선처하고 아끼십시오. 잘 살아주십시오. 부디."

재판장이 신병을 비관한 피고인들이 SNS로 함께 자살할 사람을 물색해 서로 만난 다음, 극단적선택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쳐 자살방조미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달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과 함께 책을 선물해 눈길을 끌고 있다.

책은 ‘팔과 다리의 가격’(장강명 저),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오히라 미쓰요 변호사 전)였다. 특히 피고인 A에게는 책안에 현금 20만원을 넣어 전달했다.

A는 도구 구입을 위해 핸드폰까지 처분해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 형편이었다. 석방후 여동생 집에서 기거할 예정인데 선고 당일 여동생이 법정에 나오지 않았고, 여동생 집이 있는 시흥까지 갈 차비도 없던 상황이어서 재판장이 특별히 차비, 식비 및 조카에 대한 선물용으로 돈을 사용하라고 하면서 현금을 교부했다.

화제의 재판장은 울산지법 제11형사부 박주영 부장판사다.

다음은 박주영 부장판사가 피고인들에게 전하는 간곡한 당부의 말 전문이다.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만, 이제 피고인들을 법정에서 다시 볼 수 없다고 믿기에, 또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 피고인들의 사연이 너무나 기구하고 안타까워 마지막으로 몇 마디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피고인들의 이제까지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 형의 선고로 모두 끝났습니다. 이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각자 써내려가야 합니다. 그 남은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를 기원합니다. 설령 불행하게도 앞으로 채워갈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이야기는 절대로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보르헤스라는 유명한 작가는 우주를 도서관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우주가 도서관이라면 우주를 구성하는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책입니다.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허망하게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주적 섭리에 반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정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외부에서 그 이유를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사연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때문으로 보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있는 한 듣는 사람이 있어야 마땅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극심한 고통에 대해 혼잣말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사건을 즈음한 여러분들의 삶도 그러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비록 늦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여러분의 가족과, 동료 재감인들과, 우리가 듣게 됐습니다. 우리들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게 된 이상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마음대로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 됩니다.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여러분의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A 피고인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피고인의 사랑하는 여동생과 조카가 오빠와 외삼촌의 이야기를 궁금해 합니다. 이번 일로 피고인이 우연히 구치소에서 만난 ○○○ 씨를 비롯한 동료 재감인들이 피고인의 남은 이야기를 궁금해 합니다. 친구들과 주위의 관심은 사라졌지만 부모님과 누나들이 B 피고인의 남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당원 역시 그분들 못지않게 여러분의 못 다한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합니다. 우리 모두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또 궁금해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여러분들의 삶이 대단히 고단하고 힘겨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고 마음먹게 한 그 깊은 고뇌와 참담한 심정을 전부 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극단적 선택에는 그 나름의 이유와 고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삶이 비루하고, 세상이 엉망이어도, 그것이 생명을 버릴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존귀한 것입니다.

또 그 생명은 여러분들 자신들만큼이나 여러분이 관계 맺은 수많은 이들에게도 소중한 것입니다.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여러분들의 갑작스런 부재로 남겨지게 될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떠 올려 보기를 권면합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클지라도, 고립감이 찾아올 때면 가까이 있는 보호관찰관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과감히 도움을 청하십시오.

외람되게도, 인생의 선배로서 여러분들의 이번 판단이 착각이고 오해였음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신컨대,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앞으로 누릴 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대체할 수 없는 존귀한 생명이지만, 특히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와 말도 못할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도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홀로 견디며, 여동생을 살갑게 보살피고, 번듯하게 출가까지 시킨 훌륭한 청년은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나서는 안 됩니다. 비록 한 때 방탕한 생활을 했을지라도, 그 생활을 청산하고 덤프트럭을 몰며 나름대로 선하고 열심히 살아 온 한 젊은이 역시 허망하게 스러져서는 안 됩니다.

당원은, 이 사건을 두고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를 막을 수만 있다면, 강제로라도 여러분들을 장기간 구금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여러분들이 삶의 의지를 조금이나마 되찾았다는 긍정적 징후를 재판과정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상당기간의 정신과적 치료와 심리상담 등을 조건으로 여러분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결정을 했습니다.

재판부의 이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어쩌면 이 마지막 당부는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탄원입니다. 당원에 선처를 호소했듯 이젠 스스로 선처하고 아끼십시오.

잘 살아주십시오. 부디.

이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피고인 A는 2017년경 모친이 사망한 후 그 충격으로 직장생활,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신병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왔으나 매번 실패하자 함께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2019년 8월 10일 오전 2시경 천안의 한 오피스텔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동반 OO하실 분 도와주세요’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고,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이미 결심한 피고인 B와 C는 울산의 불상지에서 같은 날 오전 7시경 위 트위터 글을 보고 서로 연락하게 됐다.

피고인들과 C는 같은 날 오전 10시경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방법을 논의하다가 피고인 B와 C가 있는 울산에 모여서 공기를 차단하고 질소가스와 헬륨가스를 지속적으로 마시는 방법으로 함께 극단적선택을 시도하기로 했다.

서로 일면식이 없던 피고인들(A, B) 및 C가 트위터를 통해 태화강역에서 만난 후 질소가스, 헬륨가스, 비닐봉지 등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한 도구들을 준비한 후 2019년 8월 11일 오전 8시20분경 울산 남구 한 여관에서 질식사를 시도했으나 실패함으로써 서로 극단적선택을 방조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12월 4일 자살방조미수 혐의로 기소(2019고합241)된 피고인 A(29)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피고인 B(35)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보호관찰을 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이러한 범행은 각자의 자살의지를 강화하여 그 실행을 용이하게 서로 도움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결코 죄책이 가볍지 않다. 다만,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 특별한 전과 없는 점, 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며 다시는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다행스럽게도 자살이 미수에 그쳤고, 의식 불명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했던 공범(C)이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또 “피고인들이 처했던 개별적 상황들은 다르더라도 불우한 유년기, 어머니의 사망, 경제적 파탄, 대인관계의 단절 등의 공통적 원인으로 사회적 존재감이 계속 축소된 끝에 피고인들이 극단적 고립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어 “초연결사회라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람 사이 단절과 소외의 위험성은 높아졌고, 심지어 자살예방기관조차 개인의 불행에 진지하게 고민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피고인들의 인식은 사회적 신뢰의 붕괴를 의미하여 매우 뼈아프며, 어떠한 이유에서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빠진 사람을 도태시켜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최소한의 생존방식은 더불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 아니라고 해도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이유는 삶이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기 때문인데, 그 절대적이고 원초적인 원망을 넘어설 수 있는 고통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며, 이러한 사람들이 도처에 있는 한 우리가 결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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