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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자전거ㆍ자가용ㆍ대중교통 출퇴근 사고도 업무상재해

2016-10-02 21:11:19

[로이슈 신종철 기자] 사업주가 제공하거나 지정한 교통수단이 아닌 도보, 자전거, 자가용, 대중교통 등으로 출퇴근하다가 사고를 당했더라도, 앞으로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9월 29일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의 합헌 반대의견과 안창호 재판관의 법정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기기사로 근무하던 A씨는 2011년 11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넘어지면서 버스 뒷바퀴에 왼손이 깔려 왼손 둘째, 셋째 손가락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이에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2011년 12월 A씨가 입은 부상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처분을 했다.

결국 A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 계속 중 위 처분의 근거가 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A씨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에서 업무상 사고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ㆍ퇴근 중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헌재, 자전거ㆍ자가용ㆍ대중교통 출퇴근 사고도 업무상재해이미지 확대보기
이에 대해 헌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면서 “위 법률조항은 2017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근로자가 사업주 지배관리 아래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부상 등이 발생한 경우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며 “도보나 자기 소유 교통수단 또는 대중교통수단 등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산재보험 가입 근로자는 사업주(비혜택근로자)가 제공하거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산재보험 가입 근로자(혜택근로자)와 같은 근로자인데도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있다고 볼 수 없는 통상적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에 발생한 재해(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별취급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오늘날 산재보험제도는 산업재해로부터 피재근로자와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의 전 단계로서 업무와 밀접ㆍ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사실상 사업주가 정한 출퇴근 시각과 근무지에 기속된다”며 “대법원은 출장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데, 이러한 출장행위도 이동방법이나 경로 선택이 근로자에게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통상의 출퇴근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근로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산재보험의 생활보장적 성격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업장의 규모나 재정여건의 부족 또는 사업주의 일방적 의사나 개인 사정 등으로 출퇴근용 차량을 제공받지 못하거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지원받지 못하는 비혜택근로자는 비록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 하더라도 출퇴근 재해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없는데,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4년 제121호 ‘업무상 상해 급부 협약’에서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권고하였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의 한 유형으로 인정하여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으며, 일본도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에서 통상의 출퇴근 재해에 대해 보상하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헌재는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경우 산재보험 재정상황이 악화되거나 사업주 부담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그러나 이는 보상이 가능한 출퇴근 재해의 범위를 합리적 경로와 방법에 따른 출퇴근행위 중 발생한 재해로 한정하는 방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통상의 출퇴근 중 재해를 입은 비혜택근로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도 대부분 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충분한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심판대상조항으로 초래되는 비혜택근로자와 그 가족의 정신적ㆍ신체적 혹은 경제적 불이익은 매우 중대하다”고 말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비혜택근로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줘 자의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심판대상조항을 단순위헌으로 선고하는 경우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마저도 상실되는 부당한 법적 공백상태와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2017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한다”고 설명했다.

◆ 합헌 반대의견(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이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이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않고 업무로도 볼 수 없는 통상의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의 범위에서 제외한 것은 산재보험의 목적과 성격, 업무상 재해의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다”며 “비혜택근로자가 출퇴근 재해에 대해 산재보험법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불이익은 개별 사업장의 근로조건 및 복지수준 등의 차이에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일 뿐이고, 심판대상조항 자체의 위헌적인 요소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비혜택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더라도, 이것은 국가가 앞으로 산재보험의 재정상황, 사업주와 근로자의 사회적 합의, 전체적인 사회보장의 수준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재판관들은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불과 3년 전이다”라며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 테두리 안으로 다시 끌어와 이전보다 엄격히 판단해야 할 정도로 헌법현실이 급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달리 새롭게 해석할 필요성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선례의 판단을 섣불리 변경할 것은 아니다”는 합헌으로 봤다.

한편, 2013년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종전 결정에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심판대상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2011헌바271 등)한 바 있다.

당시 결정에서는 심판대상조항이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당한 근로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의견이 다수였으나, 위헌선언에 필요한 정족수 6인에 미달해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는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데 6인의 재판관이 의견을 같이해 위헌 정족수를 충족함으로써 선례를 변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번 결정으로 심판대상조항은 내년 12월 31일까지 개정돼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반영한 입법이 이루어지면 비혜택근로자가 통상의 출퇴근 재해로 말미암아 부상 등을 당한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고 이번 결정의 의미를 부여했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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