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일영 대법관은 “근래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며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대법관은 “무엇보다도 일선에서 재판에 임하는 법관들로서는 성의를 다해 당사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결론을 내린 후, 어법에 맞고 알기 쉽게 작성한 판결문으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승복케 하는 것이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민일영 대법관은 “당사자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서 재판장을 처음 봤을 때 풍기는 엄숙한 분위기, 법대 앞에서 재판장을 마주했을 때 피부로 느끼는 온화함, 논리정연한 진행 후에 내리는 합리적인 결론(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慮), 무릇 법대 위에 앉은 판관은 이 세 가지 덕목을 갖추고 법정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그는 이어 “나아가 이러한 덕목을 갖춤으로써 모름지기 ‘선배에게는 편안함을 주고, 동료에게는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법조인’이 되길 바란다”고 후배 법조인들에게 당부했다.
민일영 대법관은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이처럼 법관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사법제도 또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지금 대법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하급심 심리강화방안은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봤다.
민 대법관은 “현재의 사건 증가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대법원에 대략 4만 20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대법관 12인이 처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수치다. 가히 살인적이다”라고 과중한 업무량을 설명했다.
그는 “대법관들과 재판연구관들이 아무리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이미 (업무량) 한계를 넘어섰다”며 “사법 신뢰를 운위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고 말했다.
민일영 대법관은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고 국민의 권리를 적정하게 구제하기 위해서는 선진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상고제한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딱한 현실에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고법원안’만이라도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대법관은 “일부에서 제기하듯이 직역이기주의를 내세워 반대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렇게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하며 대법관 증원을 요구하는 변호사단체(대한변협, 민변)와 시민사회단체를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