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은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합법적인 공권력의 행사임을 전제로 한 ‘보상’과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를 전제로 한 ‘배상’은 헌법ㆍ법률에서도 준별돼 있고, 화해 당시에 예상할 수 없었던 중대한 사정변경이 생기면 화해의 효력이 그대로 미치지 않는다는 확고한 법 규정 및 해석론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더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대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해 동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심판 계속 중에 있고 이에 따라 관련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추정 중에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라면 대법원으로서는 마땅히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법 해석의 통일을 기하는 판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변은 “그럼에도 대법원이 일반적인 법 원칙을 무시하고 관련 법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고려하지 않은 채 판결을 서둘러야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 1월 16일 서울고법 제12민사부(재판장 김기정 부장판사)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민변은 “이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2013다217962)을 하급심에서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판부는 “비록 설훈이 체포된 때로부터 48시간을 초과해 구속되고 가혹행위를 당하는 등 수사과정에서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어 결국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으로 인한 손해를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변은 “그러나 위 판결은 당시 공무원인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고의로 긴급조치를 발동하는 위법행위를 감행한 점, 검찰 등 수사기관은 그 수족에 불과한 점, 나아가 불법체포 및 불법 구금 하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증거능력이 부인돼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는 점, 수사기관의 영장 없는 체포, 법률에 의하지 않은 불법 구금, 그리고 가혹행위와 유죄판결이 상호 인과관계가 있는 점 등을 간과한 ‘영혼 없는 판결’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최근 사법부는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대폭 축소ㆍ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시효를 법률상 근거 없이 6개월로 축소하고, 진실화해위원회 등 과거사 결정문의 증명력을 격하시켰다”며 “이러한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전원합의체 판결(2010도5986) 긴급조치는 ‘당시나 현재의 헌법에 의해서도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을 뒤엎고 유신헌법 및 긴급조치를 부활시키려는 몸부림”이라고 규정했다.
민변은 “우리는 일련의 퇴행적인 과거사 판결을 통해, 과거 유신 긴급조치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사법부에 남아있음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과거 독재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이제는 돌아와 국민 앞에서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하지 않는가. 사법부는 스스로의 판결로써 과거를 반성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