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한 혐의로 고발당했던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검찰이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 했다. 하지만 법원은 17일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며 정식재판에 넘겼다.
쉽게 말하자면 검찰이 약식기소 한 사건을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검찰의 약식기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재판을 통해 꼼꼼히 따져 보자는 의미다.
이와 관련, 법무법인 ‘정우’ 대표를 맡고 있는 심규명 변호사는 18일 “정문헌 의원에게 약식명령을 내린 것은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봐주기식 수사이자 아부에 불과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 변호사는 특히 “이번 정식재판 회부는 이런 검찰의 해바라기식 수사에 대해, 법원이 사건의 엄중함을 고려해 단호하게 잘못된 결론이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규명 변호사는 이날 SNS(트위터, 페이스북)에 <정문헌 의원에 대한 정식재판 회부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리며 이같이 진단해 눈길을 끌고 있다.
▲법무법인정우심규명대표변호사
심 변호사는 “약식명령은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대해 검찰이 벌금액을 정해 판사에게 처벌을 요구하면, 판사가 검사의 청구에 기록을 검토해 보고 재판을 열지 않고 벌금형을 확정하는 절차”라고 약식명령의 의미를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불복으로 통상적으로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죄의 유무를 따지게 된다”며 “이에 반해 정식재판 회부 절차는 피고인이 아닌 법원이 죄의 경중에 비춰 벌금형으로 확정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재판을 통해 적절한 형을 정하고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연하면 정문헌 의원 사건을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한 것은 그만큼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검찰이 약식기소한 벌금 500만원에 그칠 사안이 아니라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심 변호사는 “정문헌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김정일에게 NLL을 포기한 대화록이 있다고 최초로 폭로한 의원”이라며 “이후 이 발언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폭발력을 발휘하면서 지난 대선 정국을 요동치게 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결국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없던 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그 어디에도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며 “이후 정문헌 의원이 입수한 회의록 내용은 권영세, 김무성 의원과 공유하면서 대선에 악용하게 된다. 그것도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라고 지적했다.
심 변호사는 “이러한 위법성의 원초적 잘못을 저지른 정문헌 의원에게 약식명령을 내린 것은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봐주기식 수사이자 아부에 불과한 것”이라고 검찰을 질타하며 “그것도 세월호 참사와 월드컵으로 국민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 있는 것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것은, 비겁하단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식재판 회부는 이러한 검찰의 해바라기식 수사에 대해, 법원이 사건의 엄중함을 고려해 단호하게 잘못된 결론이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법한 이번 사건이, 법원을 통해 실체적 진실과 처분의 적정성이 제대로 평가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심 변호사는 “그리고 검찰은 ‘찌라시를 통해서 대화록을 알게 됐다’는 김무성 의원과 NLL의 포기를 확인했다는 권영세 전 의원(주중 대사)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정을 다시 되돌아 보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심규명 변호사는 끝으로 “무엇보다도 강자에게 늘 강하고 약자에게는 너그러운 검찰로 거듭 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검찰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 것은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제 그 염원에 부응해야 한다”고 검찰에 당부했다.
◆ 정문헌 의원 무슨 말 했길래?…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권영세 종합상황실장은?
한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2012년 10월 8일 국회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회의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구두 약속했다”고 발언했다.
이로 인해 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했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대화록(회의록) 유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는 지난 9일 정문헌 의원을 공공기록물관리법상 비밀누설금지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검찰 수사 결과 정문헌 의원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에 열람한 회의록 내용을 대선 직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권영세 종합상황실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김무성, 서상기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해서는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의원은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4일 박근혜 대선 후보의 부산 서면 천우장 앞 유세 당시 대화록 내용 중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일부를 인용했다. 이에 민주당이 고발했고, 검찰에 출석한 김 의원은 ‘찌라시를 본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주중 대사는 2012년 12월 10일쯤 서울 여의도의 모 식당에서 기자 등과 만나 회의록 내용 일부를 발설해 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했다.
정문헌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이상용 판사는 17일 “공판 절차에 의한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돼 약식 명령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정문헌 의원을 정식재판에 회부키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