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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언론에 수갑 찬 피의자 얼굴 촬영 허용은 인격권 침해 위헌

헌법재판소 재판관 7(인용) 대 2(각하) 의견…‘보도자료 배포’ 헌법소원 청구는 각하

2014-03-31 17:33:22

[로이슈=신종철 기자] 경찰서에서 수갑을 찬 채로 조사받고 있는 피의자에 대해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 기자들에게 사진촬영ㆍ영상녹화를 허용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다만, 경찰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가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면, 수사기관을 상대로 고소해 행위자를 처벌받게 할 수 있는데, 이런 권리구제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제기한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사진=홈페이지)
▲헌법재판소(사진=홈페이지)


서울강동경찰서는 2012년 4월 형제 보험 사기 혐의로 구속된 A씨를 경찰서에서 조사하면서, A씨에 관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또한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 응해 A씨가 조사실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로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각 언론사는 A씨의 범죄사실에 관한 뉴스 및 기사를 보도했는데, A씨가 수갑을 차고 얼굴을 드러낸 상태에서 경찰로부터 조사받는 장면이 흐릿하게 처리돼 방송됐다. 당시 A씨의 성과 나이, 직업 등이 공개됐다.

이에 A씨가 “경찰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조사과정의 촬영을 허용한 행위는 인격권 등을 침해했다”며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85조(초상권 침해 금지)는 “경찰관은 경찰관서 안에서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7일 “경찰서 내에서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 행위는 인격권 침해”라며 재판관 7(인용) 대 2(각하) 의견으로 위헌확인 결정했다. (2012헌마652)

헌재는 결정문에서 “원칙적으로 ‘범죄사실’ 자체가 아닌 ‘피의자’ 개인에 관한 부분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할 공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예외는 피의자가 공인으로서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경우,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경우, 공개수배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피의자를 특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수사관서 내에서 수사 장면의 촬영은 보도과정에서 사건의 사실감과 구체성을 추구하고, 범죄정보를 좀 더 실감나게 제공하려는 목적 외에는 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은 기자들에게 청구인(A)이 경찰서 내에서 수갑을 차고 얼굴을 드러낸 상태에서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신원공개가 허용되는 예외사유가 없는 청구인에 대한 이러한 수사 장면의 공개 및 촬영은 이를 정당화할 만한 어떠한 공익 목적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촬영 허용행위는 목적의 정당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피의자의 얼굴은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로서 공개 시 어떠한 개인정보보다 각인효과가 크고,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신문이나 방송에 한 번 공개된 정보는 즉각 언제나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가 예전보다 훨씬 강력하다”며 “이후 피의자가 재판을 통해 무죄의 확정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방송에 공개됨으로써 찍힌 낙인 효과를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사 촬영 허용행위에 대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으로서는 피의자의 얼굴 공개가 가져올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해 모자, 마스크 등으로 피의자의 얼굴을 가리는 등 피의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경찰의 촬영 허용행위는 언론 보도를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목적 외에 어떠한 공익도 인정할 수 없는 반면 청구인은 사회윤리적 비난가능성이 높은 피의자로서 얼굴이 공개돼 초상권을 비롯한 인격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받았고, 수사기관에 의한 초상 공개가 언론 보도로까지 이어질 경우 범인으로서의 낙인 효과와 그 파급효는 매우 가혹하다”며 “따라서 법익의 균형성도 극단적으로 상실해, 결국 촬영 허용행위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돼 청구인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한편, 보도자료 배포행위와 관련, 헌재는 “만약 경찰의 행위가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면, 수사기관을 상대로 고소해 행위자를 처벌받게 하거나 처리결과에 따라 검찰청법에 따른 항고를 거쳐 재정신청을 할 수 있으므로, 위와 같은 권리구제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보충성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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