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손동욱 기자] 옥외집회를 열려면 적어도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김OO씨와 이OO씨는 경찰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채 2010년 5월 10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12시10분부터 40분까지 서울 종로구에 있는 광화문광장에서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말하게 해 달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6~7m 간격으로 서 있는 방법으로 미신고 시위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이에 두 사람은 재판 계속 중에 서울중앙지법에 집시법 제6조(옥외집회 및 시위의 신고 등) 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지 2011년 8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 조항은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22조 2항은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전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한 집시법 조항은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21조 2항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5(합헌) 대 4(한정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헌재는 “집시법의 사전신고는 경찰관청 등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집회의 순조로운 개최와 공공의 안전보호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것으로서, 협력의무로서의 신고”라며 “집시법은 일정한 신고절차만 밟으면 일반적ㆍ원칙적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집회에 대한 사전신고제도는 헌법 제21조 제2항의 사전허가금지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신고사항은 여러 옥외집회ㆍ시위가 경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고, 질서유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정보”라며 “옥외집회ㆍ시위에 대한 사전신고 이후 기재사항의 보완, 금지통고 및 이의절차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 늦어도 집회가 개최되기 48시간 전까지 사전신고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또 “미리 계획됐고 주최자도 있지만 집시법이 요구하는 시간 내에 신고를 할 수 없는 옥외집회인 이른바 ‘긴급집회’를 개최한 경우에도 신고가능성이 존재하는 즉시 신고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48시간 이내에 신고를 할 수 없는 긴급한 사정이 있고, 옥외집회나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돼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바가 없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는 구체적 사안을 헌법상 보장되는 집회의 자유의 내용과 심판대상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을 비교형량해 법원이 판단해야 할 개별사건에서의 법률의 해석ㆍ적용에 관한 문제”라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미신고 옥외집회의 주최는 신고제의 행정목적을 침해하고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해 행정형벌을 과하도록 한 심판대상조항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고, 법정형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과중한 처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강일원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4명의 재판관은 “집시법은 사전신고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긴급집회의 경우에 신고를 유예하거나 즉시 신고로서 옥외집회를 가능하게 하는 조치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고 있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긴급집회에 대해 어떠한 예외도 규정하지 않고 모든 옥외집회에 대해 사전신고를 의무화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한편, 헌재는 이번 결정에 대해 “집시법이 요구하는 시간 내에 신고를 할 수 없는 ‘긴급집회’의 경우 신고가능성이 존재하는 즉시 신고해야 하고, 신고 가능한 즉시 신고한 긴급집회의 경우 심판대상조항을 적용해 처벌되지 않음을 밝혔다”고 말했다.
또 “신고조차 하지 않고 긴급집회를 한 경우에는 미신고 옥외집회ㆍ시위 개최행위에는 해당하나, 긴급한 사정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법원이 고려할 문제라고 설시함으로써 미신고 집회, 특히 긴급집회에 대한 헌법상 집회의 자유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