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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 전에 교수 직위해제처분은 위법”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곧바로 직위해제한 울산대 패소

2012-10-17 15:56:00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검찰이 대학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확정 판결도 나기 전에 곧바로 대학 측이 교수에 대해 직위해제처분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당연퇴직 사유에 해당하는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을 고도의 개연성이나 직무를 계속 수행함으로 인해 공정한 직무집행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는 이상 직위해제처분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L(55)교수는 2005년부터 2010년 6월까지 자신의 강의에서 수강생들에게 감상문 제출 과제를 부과하면서 그 대상 중 ‘김일성 회고록’ 등 북한 원전을 일부 포함했다.

검찰은 올해 7월23일 L교수가 북한 원전을 대상으로 한 감상문 제출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한 점, 동료 교수에게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의 이적표현물을 반포하고, 북한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했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자 울산대 총장은 열흘 만인 8월2일 L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음을 이유로 직위해제처분을 내렸다.

이에 L교수는 “관련 형사재판에서도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될 개연성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위해제 처분한 것은 교수로서의 학문의 자유, 강의의 자유 등을 부당하게 침해함으로써 징계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해 위법하다”며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울산대 측은 “L교수는 북한 또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의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들에게 자의적으로 높은 학점을 주는 등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또한 관련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개연성이 상당해 직위해제처분은 적법하다”고 맞섰다.

울산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손현찬 부장판사)는 L교수가 울산대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직위해제처분 효력정지가처분 신청(2012카합644)에 대해 “대학 측이 지난 8월2일 신청인에 대해 발령한 직위해제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며 L교수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헌법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자유와 그 내용의 하나로서 대학교수에게는 학생들에게 강의하거나 교수하는 자유가 당연히 보장된다”며 “따라서 헌법상 보장되는 대학교수의 위와 같은 신분과 권리를 제한하는 직위해제처분의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어 “형사사건으로 기소됐다는 이유로 대학교수에 대한 직위해제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형사사건에서 국가공무원법의 당연퇴직 사유에 해당하는 유죄판결을 받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 당사자가 계속 직무를 수행함으로 인해 공정한 공무집행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처분기관으로서는 직위해제처분에 앞서 각 요건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하며, 만약 직위해제처분이 위와 같은 요건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했다면 그 직위해제처분은 위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판부는 “대학이 제출한 소명자료를 종합하면 신청인이 북한의 체제 또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의 감상문에 더 높은 점수를 줬음을 소명할 자료가 부족한 반면, 오히려 신청인은 당시 과제물을 제출한 학생 대부분에게 배점 10점 만점을 줬고,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은 학생이라도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경우 A+학점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신청인이 형사사건에서 당연퇴직 사유에 해당하는 유죄판결을 받을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신청인은 자신의 의도와 행동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인식 하에 2010년 6월 이후에는 감상문 과제를 낼 때 북한 원전 등을 포함시키기 않아 형사사건이 확정될 때까지 같은 행위를 반복할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따라서 신청인 계속 직무를 수행함으로 인해 공정한 공무집행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대학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직위해제처분에 앞서 과연 처분기관인 대학 측이 신중한 검토 의무를 다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문제되는 신청인의 행위는 2005년부터 2010년 6월까지인데, 검찰이 올해 7월23일 기소하자, 대학은 불과 10일 만에 전격적으로 직위해제처분을 했다”며 “대학이 제출한 소명자료의 내용에 비춰 볼 때 과연 신청인의 혐의내용 및 수사결과, 유죄 판결의 개연성 등을 신중하게 검토했다고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혐의의 특수성, 언론의 공개로 인한 부담 등이 상당부분 작용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직위해제처분으로 신청인의 인격권 실현의 본질적 부분인 학문의 자유 및 강의의 자유가 상당부분 제한될 뿐만 아니라 반사적으로 학생들의 수강권도 제한될 수밖에 없고, 그 이외에 각종 교내 회의 참여 권한, 의사결정 권한 등 교원으로서의 각종 권한이 제한되며, 아울러 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학문적 자부심마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유ㆍ무형적 피해는 금전적으로 쉽사리 회복될 수 있는 손해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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