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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성폭행 피해자에 모욕…국가 배상책임

대법, 밀양 성폭행 피해 가족에 총 5000만원 배상 판결

2008-06-17 12:41:47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사건 수사과정에서 경찰관이 피해자 자매에게 모욕을 주고, 또한 공개된 장소에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한 행위 등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양은 중학교 재학 중이던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남 밀양지역 고교생 박OO군 등 41명으로부터 수 차례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양의 이모는 경찰에 신고하면서 A양의 신원이 알려지지 않도록 수사할 것을 거듭 약속 받았다.

그런데 2004년 12월 7일 울산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A양을 불러 성폭행사건 가해자들을 상대로 대질수사를 하면서 A양에게 범인들을 지목하게 했다.

이때 범인식별실 근무자인 K경찰관이 A양 자매에게 “너희들 밀양에는 뭐하러 갔노. 밀양물 다 흐려놨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 후 새벽 무렵 A양 자매와 이모는 성폭행 가해자 가족들로부터 “눈깔을 확 파버린다. 내가 밀양 조폭이다. 신고해 놀고 잘 사나 봐라. 밤길 조심해라” 등의 협박을 받았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 온 A양의 이모는 K경찰관의 위 발언에 대해 항의하자, K경찰관은 “가해자들을 상대로 한 말이지 A양 자매에게 한 말이 아니다”고 변명하면서 사과했으나, 이후 정직 1월의 징계를 받았다.

한편 수사를 담담한 경찰관 4명은 이날 새벽 노래방에서 A양 자매의 성폭행사건 피해사실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노래방에는 도우미 4명이 있었다. 도우미 중 1명은 A양의 이모를 잘 알고 있어, 그 도우미가 인터넷 게시판에 노래방에서 있었던 사건을 게시했고, 또 이모에게도 알렸다.

이와 관련, 경찰관 4명은 감봉 1월과 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또 A양 자매는 이틀 뒤 진술녹화실에서 피해자조사를 받았는데 경찰서 형사과장은 성폭행사건에 대한 검거보고서를 울산지방검찰청에 보고하는 한편 부하직원을 통해 경찰서 출입기자들에게 성폭행 사건의 보도문건을 배포했다.

보도자료가 배포되자 인터넷 뉴스 등에서 성폭행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A양 자매의 신원이 일부 보도됐다.

A양의 담당교사가 인터넷 기사를 보고 A양의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넷에 A양의 기사가 실린 것 같다고 말해 줄 정도로 기사내용만으로도 주변사람들은 피해자가 A양 자매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에 A양 자매는 “경찰이 비하발언을 하고, 언론에 보도되도록 신원을 노출시켜 불안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제24민사부(재판장 김경배 부장판사)는 2006년 11월 A양 자매와 이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A양에게 위자료 700만원, 그 이모에게 500만원, B양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26민사부(재판장 강영호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원고 A양에게 3000만원, A양의 이모와 B양에게 각각 10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액을 높였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1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은 범죄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보호할 의무가 있고, 특히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나이 어린 학생인 경우 수사과정에서 또 다른 심리적․신체적 고통으로 인한 가중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범죄 담당 경찰관이 범인식별실을 사용하지 않은 채 공개된 장소인 형사과 사무실에서 피의자 41명을 한꺼번에 세워 놓고 범인을 지목하게 한 것은 원고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과 심리적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행위로 수사상 편의라는 동기나 목적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성폭력범죄의 수사를 담당하거나 수사에 관여하는 경찰관이 직무상 의무에 반해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을 공개 또는 누설했다면 국가는 그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경찰서 감식실의 근무 경찰관이 그곳에서 대기하던 A양 자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국가가 배상토록 한 원심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경찰관이 과실로 출입기자들에게 A양의 피해사실 및 인적사항이 기재된 서류를 유출해 언론에 보도되도록 한 사실, 성폭력범죄 담당 경찰관이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이 동석한 가운데 원고의 신원 및 피해사실을 누설한 사실 등을 종합할 때 이로 인해 원고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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