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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성추행…헉! 피해자 여성이 선처?

대부분 기소 전이나 재판진행 중에 가해자와 합의해 처벌 못해

2008-03-28 11:36:29

지하철 성범죄에 따른 ‘여성 전용칸’ 설치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찬성하는 쪽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변태들로부터 안전한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논리다. 반대하는 쪽은 바쁜 출퇴근 시간에 선량한 다수의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모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팽팽하다.

그렇다면 지하철 성범죄자들은 어떻게 처벌받고 있을까. 로이슈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처벌 수위를 진단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사건 발생 건수에 비해 실제로 기소되거나 재판을 통해 단죄되는 경우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인 지하철 성추행 범죄에서 피해 여성들이 기소 전이나 재판진행 중에 합의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피해 여성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의 재범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 범죄자 중 절반만 처벌

먼저 지하철 성범죄에 대한 통계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로이슈가 전국의 지하철 성범죄 사건 중 올 1월부터 3월20일까지 1심 판결이 내려진 사건만을 집계한 결과 총 12건으로 나타났다.

가해자의 직업을 보면 회사원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무직이 2명, 자영업자, 전문직, 노동이 각각 1명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30대가 6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와 50대가 각 2명, 40대가 1명, 심지어 60대도 있었다.

지하철 성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 이하 지하철 성범죄) 혐의로 처벌받는데, 특히 주목할 대목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12명의 피고인 중 절반인 6명이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는 점이다.

지하철 성범죄는 친고죄인데, 공소제기 후 재판진행 중 고소인이 고소를 취소하면 처벌할 수 없어 공소기각 된다. 6명이 공소 기각된 것도 재판진행 중에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를 통해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1분기 동안 전국 법원에서 판결이 난 사건이 12건에 불과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찰청이 2005년부터 2007년 6월까지 서울지역 지하철에서 발생한 성범죄 1,454건으로 집계한 것에 비춰보면 놀랍다. 물론 1분기 동안에 모든 재판이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판 건수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건이 법원까지 가는 경우와 실제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사건 발생 후 검사가 기소하기 전이나 재판진행 중에 합의를 통해 사건이 마무리되는 사건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조금 비틀어 해석하면 여성이 성추행을 당할 때에는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꼈지만 나중에 합의를 해 줌으로써 지하철 성범죄에 대한 처벌 의지가 약하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굳이 경찰청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하철 성범죄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지만 사건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쉬쉬하며 신고하지 않고 그냥 마음으로 삭힌 경우까지 합하면 성범죄를 당한 사건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1분기 동안 지하철 성범죄자에 처벌 숫자가 6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피해 여성 스스로 성범죄자를 단죄할 기회를 포기한 셈이어서 지하철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한 요인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 충정로에서 근무하는 김OO(여·31)씨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하철에서 한번쯤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거나, 혹은 신고를 하면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해 그냥 변태에게 걸렸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겨버리기 쉽다”고 말했다.

한편 ‘대중교통수단, 공연·집회 장소, 기타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사람을 추행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상습범과 재범 우려 높아

그렇다면 사건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공소기각 사례를 먼저 보면 회사원 박OO(51)씨는 지난해 11월9일 아침 출근길에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방배역 부근에서 황OO(여·24)씨의 뒤에 붙어 서서 자신의 발기된 성기를 황씨의 엉덩이에 비벼댔다.

이로 인해 박씨는 지하철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고,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김민기 판사는 2월27일 박씨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친고죄인 이 사건에서 황씨가 재판진행 중에 박씨에 대한 고소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원 이OO(39)씨의 경우 상습범임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해 10월5일 오전 8시경 사당역으로 진행하는 지하철 2호선 전동차를 타고 출근하던 중 강OO(여·24)씨의 뒤에 몸을 바짝 붙이고 서서 손으로 강씨의 중요부위를 만져 추행했다.

또 11월20일에도 신OO(여·29)씨의 옆에 바짝 붙어서 5분 동안 신씨의 중요부위 등을 만지며 추행했다. 이씨는 지하철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으나, 서울중앙지법 이정권 판사는 3월4일 이씨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피해자 강씨와 신씨가 고소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해자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밀집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여성들의 뒤에 바짝 다가서서 엉덩이를 만지고 성기를 비벼대며 심지어 중요부위까지 서슴지 않고 만지며 추행했으나 피해자들의 고소 취소로 처벌받지 않았다.

문제는 합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피해 여성들이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합의해 줌으로써 가해자들이 지하철 성추행 범죄에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아쉬운 대목이다. 상습범과 재범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법원은 엄격히 처벌

하지만 피해자들이 고소를 취소하지 않으면 법원도 죄에 상응하는 단죄를 내린다. 회사원 이OO(49)씨는 지난해 8월28일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중 박OO(여·38)씨의 뒤에 서서 신문을 읽는 척하며 손으로 박씨의 엉덩이를 쿡쿡 누르더니 성기를 엉덩이에 밀착시켰다.

이씨는 지하철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고,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신용호 판사는 1월25일 이씨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또 지난해 8월13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중 여대생 이OO(여·20)씨의 허벅지를 만진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박OO(23)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동식 판사도 2월13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성추행 정도가 심하면 법원의 형량은 더욱 엄격해 진다. 회사원 이OO(36)씨는 지난해 5월7일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중 밀집한 승객들 틈에 서있던 박OO(여·24)씨의 뒤에서 무려 10분 동안이나 발기된 성기를 박씨의 엉덩이에 밀착시키고 손으로 엉덩이를 만졌다.

김OO(37)씨도 지난해 1월26일 아침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중 김OO(여·22)씨의 뒤에 바짝 붙어 서서 자신의 성기를 김씨의 엉덩이에 밀착시킨 뒤 15분이나 비벼댔다.

이씨와 김씨는 지하철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고, 서울중앙지법 신재환 판사는 1월17일 이씨와 김씨에게 “피해자들에게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게 성추행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각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불량하면 징역형도 선고된다. 신OO(66)씨는 지난해 7월27일 퇴근 무렵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줄을 수 있던 남OO(여)씨의 뒤에 다가가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발기된 성기를 남씨의 엉덩이에 비벼댄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최병률 판사는 1월29일 신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선고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이 지하철 성추행 범행을 반복하고 있는데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반성하지 않아 중한 형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신씨의 경우 사실상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다. 신씨는 구속돼 112일 동안 구금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하철 성추행 범죄의 법정 최고형이 징역 1년인 점을 고려해, 최 판사가 이미 112일이나 구금됐고, 고령인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

이들 사건에서 보듯이 단죄하지 않을 경우 상습적이거나 재범의 우려가 있다. 더구나 지하철 성추행 범죄의 형량은 유사 성폭행 범죄의 형량에 비해 가벼워 범죄 예방적 측면도 낮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상황에서, 피해 여성들이 합의만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말 경우 지하철 성추행 범죄는 쉽게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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