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자동차종합보험 가입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안전띠 미착용’을 이유로 보험금을 감액하도록 한 보험사의 ‘감액약관’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보험자인 운전자가 고의로 교통사고를 발생시킨 것이 아니라면, 비록 안전띠를 매지 않았더라도 보험금을 감액할 수는 없고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에 따르면 40대 A씨는 2009년 9월 새벽에 음주상태에서 안전벨트(안전띠)를 매지 않고 충남 당진군의 도로에서 운전해 가다가 중앙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2차로에 정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승용차에 의해 추돌사고가 났고, 이 사고로 A씨는 두개골 함몰, 빗장뼈 골절 등의 중상해를 입었다.
흥국화재해상보험과 자동차종합보험계약 맺은 A씨는 자기신체사고 보험금 4500만원의 지급을 청구했다.
이에 흥국화재는 “A씨가 사고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으므로, 보험계약의 감액약관에 따라 20%를 감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국화재의 보험약관은 “피보험자가 사고 당시 탑승 중 안전벨트(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자기신체사고 보상액에서 운전석과 옆좌석은 20%, 뒷좌석은 10%를 자기신체사고 보험금에서 감액한다”는 ‘감액약관’을 뒀다.
이에 A씨는 “감액약관으로 과실에 해당하는 안전띠 미착용을 이유로 자기신체사고 보험금의 20% 감액을 규정한 것은 상법 제739조에 의해 준용되는 상법 제732조의 2와 제63조에 위반돼 무효”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청구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보험금 3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감액약관에 따라 20%를 빼고 지급하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감액약관의 취지는 보험사고인 상해가 발생했더라도 보험사고 외의 원인, 즉 안전띠 미착용이라는 피보험자 측의 사정이 부가됨에 따라 본래의 보험사고에 해당하는 상해 이상으로 그 정도가 증가한 경우 보험사고 외의 원인에 의해 생긴 부분을 감액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자동차 사고에서 안전벨트 미착용의 경우 손해가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보험자가 약관을 통해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인한 위험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경우에 해당해 약관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하는 운전자는 사고발생 내지 상해에 대한 고의는 없더라도 최소한 ‘교통사고가 발생해 손해가 확대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손해확대에 대한 미필적 고의는 가지고 있다”고 봤다.
또 “감액약관은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함으로써 손해확대에 대한 고의를 가지고 있는 운전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험금을 지급하되 다만 일정비율(운전석 및 옆좌석은 20%, 뒷좌석은 10%)을 감액해 지급한다는 것에 불과해, 보험수익자 보호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감액비율도 적정해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감액약관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지난 4일 A씨가 ㈜흥국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상고심(2012다204808)에서 보험사의 감액약관을 인정해 보험금 20%를 감액해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감액약관은 무효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상법 제732조의2, 제739조, 제663조의 규정에 의하면 사망이나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인(人)보험에 관해서는 보험사고가 고의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비록 중대한 과실에 의해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망이나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는 보험사고 발생의 원인에 피보험자에게 과실이 존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보험사고 발생 시의 상황에 있어 피보험자에게 안전띠 미착용 등 법령위반의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약관에 정한 경우에도,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으로써 고의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상법 규정들에 반해 무효”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가 체결한 보험계약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사고 당시 탑승 중 안전띠를 착용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자기신체사고보상액에서 운전석 또는 그 옆좌석은 20%, 뒷좌석은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공제한다’고 규정한 안전띠 미착용 감액조항이 포함돼 있는데, 원고는 술에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해 가다가 도로 오른쪽 옹벽과 중앙선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도로에 정차해있던 중 뒤따라오던 승용차에 의해 추돌당해 상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고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으로서 고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감액약관은 상법 규정들에 반해 무효”라며 “그럼에도 원심은 감액약관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은 감액약관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단을 그르친 것”이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