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전여송 기자] 1986년 11월 26일, 정부는 담화문을 통해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은 당시 북한이 계획하고 있던 금강산 댐 건설과 관련한 조치였다. 금강산 댐이 북한강을 통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들어가는 연간 18억t의 물 공급을 차단하게 되고, 이를 붕괴시켜 200억t의 물이 하류로 내려갈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북한의 금강산 댐 착공 시기가 아웅산 폭파사건이나 KAL기 격추사건과 같은 적대적 도발이 감행되던 시기였던 점도 맞아떨어졌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위기감 조성은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평화의 댐 건설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상당수가 날조된 정보로서, 대북공세와 국민경각심 고취에 이용한 산물이었다. 실제 금강산 댐의 규모는 많아도 59.4억 t 으로 그 위협은 3배 이상 과장된 것이었던 것.
이후 금강산 댐이 최대치인 59.4억 t의 상태에서 물을 방류해도 서울 한강변의 일부 저지대만을 침수시키는 정도의 위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평화의 댐의 총 공사비는 1700억원으로, 이 중 약 600억원이 국민 성금으로 충당됐다. 이 밖에도 기업 규모에 따라 건설비용을 강제로 할당해 공사비를 마련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후 평화의 댐은 1987년 2월 28일 착공해 1989년에 1단계 댐이 완공됐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
로이슈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반론·추후 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평화의 댐 건설 계획은 당시 북한이 계획하고 있던 금강산 댐 건설과 관련한 조치였다. 금강산 댐이 북한강을 통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들어가는 연간 18억t의 물 공급을 차단하게 되고, 이를 붕괴시켜 200억t의 물이 하류로 내려갈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위기감 조성은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평화의 댐 건설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상당수가 날조된 정보로서, 대북공세와 국민경각심 고취에 이용한 산물이었다. 실제 금강산 댐의 규모는 많아도 59.4억 t 으로 그 위협은 3배 이상 과장된 것이었던 것.
이후 금강산 댐이 최대치인 59.4억 t의 상태에서 물을 방류해도 서울 한강변의 일부 저지대만을 침수시키는 정도의 위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평화의 댐은 1987년 2월 28일 착공해 1989년에 1단계 댐이 완공됐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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