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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왜 시신까지 훼손했나...판결문 213건이 내놓은 답

[형사정책 연구브리핑] 은폐 목적 '방어적 훼손' 68.4%...비면식 관계서 훼손율·다중훼손 모두 높아

2026-08-11 15:26:26

2012년 경기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오원춘 사건, 2019년 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고유정 사건, 2020년 인천 경인아라뱃길 일대에서 훼손된 시신이 잇따라 발견된 사건까지. 국내에서는 시신을 훼손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2024년에는 직장 동료이자 내연관계였던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북한강에 유기한 사건도 있었다. 시체훼손 범죄는 잔혹한 범행 방식 때문에 강한 사회적 충격을 주지만, 범죄학에서는 단순히 '얼마나 잔혹했는가'보다 가해자가 왜 사망한 뒤에도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했는지를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본다.

시체훼손은 흔히 떠올리는 '토막 살인'보다 범위가 넓다. 범죄학과 법의학에서는 사망한 사람의 신체에 의도적으로 비정상적인 손상을 가해 원래의 구조나 형태를 변형하는 행위를 폭넓게 시체훼손으로 본다. 사지를 절단하거나 주요 신체 부위를 제거하는 행위는 물론 장기 적출, 지문 제거, 화학물질을 이용한 신체 변형 등도 포함된다. 현행 형법 제161조는 시체나 유골 등을 손괴·유기·은닉 또는 영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그렇다면 시신을 훼손하는 범인은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까. 기존 해외 연구는 대체로 가족이나 배우자, 연인처럼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이 시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이지원(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연구팀은 학술지 〈보호관찰〉에 게재한 논문 〈한국 시체훼손 범죄 특성 분석: 가해자-피해자 관계유형과 훼손 정도를 중심으로〉에서 200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선고된 관련 형사판결문 213건(피해자 255명 사례 포함)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시체훼손의 발생 여부와 방식, 훼손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봤다.

이지원(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연구팀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선고된 형사판결문 213건(피해자 255명)을 분석한 결과 서로 모르는 비면식 관계에서 시체훼손 비율이 84.4%로 면식 관계(69.7%)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 범위를 지인으로 좁히는 접근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며, 비면식 범죄 가능성까지 열어둔 수사 초기 판단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이미지 확대보기
이지원(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연구팀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선고된 형사판결문 213건(피해자 255명)을 분석한 결과 서로 모르는 비면식 관계에서 시체훼손 비율이 84.4%로 면식 관계(69.7%)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 범위를 지인으로 좁히는 접근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며, 비면식 범죄 가능성까지 열어둔 수사 초기 판단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 해외에선 가족·연인 등 '아는 사이' 범행이 다수

기존 해외 연구에서는 시체훼손이 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알고 지내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1989~2019년 시체훼손 살인 108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친구·연인 등 지인이 44%, 직장 동료가 20%, 가족이 24%를 차지한 반면 비면식 관계는 6%에 그쳤다. 스웨덴에서는 분석 사건의 82.5%가 면식 관계였고, 핀란드 연구에서는 분석 대상 전체가 면식 관계였다. 독일에서도 배우자·파트너와 가족, 지인 등 면식 관계가 69%를 차지했다.

국내의 과거 연구도 비슷했다. 2000~2012년 발생한 사건 42건을 분석한 결과 86%가 면식 관계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시체훼손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관계 갈등과 원한, 분노 등 강한 감정이 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시체훼손을 모두 격분이나 가학성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시신의 신원을 숨기거나 운반과 유기를 쉽게 하고, 범행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시신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시체훼손을 감정적 행동뿐 아니라 범죄를 은폐하고 검거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도 분석한다.

범죄학 연구에서는 시체훼손의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시신의 이동이나 신원 은폐, 증거 인멸 등을 목적으로 하는 '방어적 훼손(defensive mutilation)'과 분노·가학성·성적 욕구 등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특정 신체 부위를 훼손하는 '공격적 훼손(offensive mutilation)'이다. 공격적 훼손에서는 사망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 반복적으로 신체를 손상시키는 '과잉훼손(overkill)'이 나타나기도 한다.

■ 23년간 판결문 분석...가해자 84%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 비중 높아

연구팀은 200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국내 형사판결문 213건에서 확인된 피해자 255명의 사례를 분석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1) 가족 등 가정 관계, (2) 현재 또는 과거의 교제 관계, (3) 친구·직장동료·이웃 등 기타 면식 관계, (4) 서로 알지 못했거나 일회성 만남에 그친 비면식 관계 등 네 유형으로 나눴다. 시체훼손의 동기도 (1) 범행 은폐를 위한 유기·은닉, (2) 가학·쾌락, (3) 망상·병리, (4) 목적 미상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가해자의 성별이 확인된 247명 가운데 남성은 207명으로 83.8%를 차지했다. 연령이 확인된 가해자 91명 가운데서는 30대가 47.3%로 가장 많았고, 40대 18.7%, 20대 13.2% 순이었다.

피해자는 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성별이 확인된 피해자 236명 가운데 여성은 149명으로 63.1%, 남성은 87명으로 36.9%였다.

연령별로는 50대가 21.4%로 가장 많았고 60대 16.5%, 30대 15.7% 순이었다. 10세 미만 피해자 12명은 모두 영아 살해 후 훼손 사례였다. 70대 이상 고령층 피해자도 44명으로 17.7%를 차지했다.

연구팀은 여성과 중장년층, 영아·고령층 등 범죄 취약계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점에 주목하며, 신체적 저항력이 낮은 피해자를 상대로 한 범죄에서 사후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훼손이 선택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 한국은 달랐다...비면식 관계 시체훼손 84.4%

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모르는 관계에서 오히려 시신을 훼손한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피해자 255명 가운데 시신을 유기하거나 은닉하는 데 그친 경우는 25.1%였다. 반면 절단이나 소훼(불에 태워 없애는 것) 등 실제 물리적 훼손까지 이뤄진 사례는 74.9%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아는 면식 관계에서는 69.7%가 시체훼손으로 이어졌다. 반면 비면식 관계에서는 시체훼손 비율이 84.4%까지 올라갔다.

단순히 비율만 비교한 결과도 아니었다. 다른 조건을 함께 고려한 통계분석에서도 비면식 관계에서 시체훼손이 나타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특히 교제 관계와 기타 면식 관계에서는 비면식 관계에 비해 시체훼손이 나타날 가능성이 뚜렷하게 낮았다.

연구팀은 국내 시체훼손 범죄가 가족이나 연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한 기존 해외 연구와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시체훼손 사건을 분석할 때 피해자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타인 간 범죄' 가능성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 모르는 피해자일수록 '여러 방식으로' 훼손

비면식 관계에서는 시신을 훼손하는 방법도 더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실제 시체훼손이 확인된 191명 가운데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한 '단일훼손'은 72.3%,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이 함께 사용된 '다중훼손'은 27.7%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알고 지낸 사건에서는 다중훼손 비율이 20.9%였다. 반면 서로 알지 못했던 사건에서는 38.2%로 높아졌다. 비면식 관계에서 여러 방식으로 시신을 훼손한 사례의 비중이 면식 관계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던 셈이다. 다른 요인의 영향을 함께 고려한 통계분석에서도 비면식 관계에서 다중훼손이 나타나는 경향은 우연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뚜렷했다.

연구팀은 시체훼손을 반드시 '피해자에 대한 강한 감정'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가족이나 연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쌓인 감정이나 관계의 맥락이 훼손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서로 모르는 관계에서는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고 범행 흔적을 없애거나 시신을 유기하기 위해 여러 훼손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 훼손 심하다고 모두 '격분' 아냐...10건 중 7건은 은폐 목적

시체훼손의 구체적인 동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범행 은폐 목적이 두드러졌다.

훼손 양상을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던 79건 가운데 시신의 이동이나 은닉, 증거 인멸 등을 목적으로 한 '방어적 훼손'은 68.4%를 차지했다. 분노나 가학성 등 감정 표출 성격이 강한 '공격적 훼손'은 31.6%였다.

특히 시신의 유기·은닉이 목적이었던 사건 가운데 75%는 방어적 훼손으로 분류됐다. 반면 가학이나 쾌락이 범행 동기로 확인된 사건은 모두 공격적 훼손으로 나타났다.

공격적 훼손에서는 시신을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손상시키는 경향도 더 강했다. 다른 조건을 함께 고려한 분석 결과 공격적 훼손에서 다중훼손이 나타나는 경향 역시 통계적으로 뚜렷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범행 동기를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유형과 관계없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유기·은닉'이었다.

국내 시체훼손 사건의 상당수가 단순히 격분하거나 피해자를 증오해서 시신을 손상시킨 것이 아니라 범죄 흔적을 없애고 신원 확인과 검거를 어렵게 만들려는 목적과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 "시신 훼손됐다고 면식범부터 찾는 접근 재검토해야"

순천향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는 시체훼손 사건의 수사 초기 용의자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도 시사점을 준다.

기존 해외 연구에서는 배우자와 연인,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시체훼손이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연구 결과가 근거가 되면서 훼손된 시신이 발견되면 피해자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접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판결문 분석에서는 서로 모르는 관계에서 시체훼손 비율이 더 높았고, 여러 방식으로 시신을 손상시키는 다중훼손도 더 많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시체훼손이 확인됐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 범위를 피해자의 지인이나 친밀한 관계로 좁히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절단과 소훼 등 여러 방식의 훼손이 동시에 확인된 사건에서는 피해자와 별다른 관계가 없던 사람에 의한 범죄 가능성도 수사 초기부터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신의 훼손 정도만 보고 가해자의 감정 상태를 곧바로 추론해서도 안 된다. 훼손 정도가 심하다고 해서 반드시 피해자에 대한 극도의 분노나 원한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시신의 신원 확인을 늦추거나 증거를 없애고, 운반과 유기를 쉽게 하기 위해 복합적인 훼손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연구팀은 한국의 시체훼손 범죄가 해외 연구에서 강조돼 온 '친밀한 관계에서의 감정적 훼손'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비면식 관계에서 범행 은폐와 검거 회피를 위한 도구적·전략적 시체훼손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결국 훼손된 시신은 범죄의 잔혹성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가'와 함께 '왜 시신을 그렇게 처리했는가'를 읽어내는 것이 가해자의 관계와 범행 목적을 추적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연구논문
이지원·정그린·김성희(2025). 한국 시체훼손 범죄 특성 분석: 가해자-피해자 관계유형과 훼손 정도를 중심으로. 보호관찰, 25(2), 123-151.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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