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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태안·서산 통합론, ‘규모의 경제’라는 환상

2026-02-03 06:15:00

[로이슈 정숙희 기자] 이완섭 서산시장이 올초 제안한 서산·태안 행정통합론이 지역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산업 도시 서산의 자본력과 관광 도시 태안의 자원을 결합해 이른바 ‘메가시티 시너지’를 내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파트너인 태안군의 반응은 냉담하다. 가세로 태안군수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가 군수의 반론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자치 경영의 효율성’에 근거한 합리적 비판이다.



우선, 행정 구역의 물리적 결합이 반드시 ‘1+1=2’ 이상의 생산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태안은 1989년 서산군에서 분리된 이후 40년 가까이 해양 관광 특화 도시로서 독자적인 브랜드 가치를 구축해 왔다. 산업 중심의 서산과 결합하는 순간, 태안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과 ‘청정 환경’이라는 무형 자산은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 자칫 거대 제조 인프라를 뒷받침하는 외곽 배후지로 전락할 경우, 태안이 누려온 로컬 프리미엄은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다.




둘째로 우려되는 대목은 ‘행정의 빨대 효과(Straw Effect)’다. 인구와 자본이 집중된 거대 지자체로 통합될 경우,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 투자는 효율성을 명분으로 중심부인 서산에 쏠리기 마련이다. 이는 지방자치 본연의 목적인 ‘밀착 행정’의 약화를 초래한다. 태안 군민 입장에서는 행정 접근성이 떨어지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홀대’를 경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 군수가 “인구 감소만을 이유로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수사와 경제적 실익의 혼동을 경계해야 한다. 최근 광역 단위 메가시티 논의가 활발해지자 이를 기초 지자체 간 통합에 무분별하게 대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광역 경제권 형성과 기초 단위 행정 통합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실질적인 협력은 통합이라는 물리적 결합 없이도 ‘경제 협의체’나 ‘특화 사업 공동 추진’을 통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지방 소멸의 시대, 통합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지금 태안에 필요한 것은 거대 도시에 흡수되는 ‘덩치 키우기’가 아니라, 작지만 강한 ‘강소(强小) 도시’로서의 생존 전략이다. 실익 없는 통합 논의로 지역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각자의 특성을 극대화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시장 원리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준비되지 않은 통합은 결국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적대적 합병’에 불과하다.


정숙희 기자 / 지방자치 정책팀 jsh@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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