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천정배 의원과 조국 교수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어 이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천정배 의원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 맡은 사건 중 하나가 조국 교수였다. 천정배 변호사는 1993년 조국 울산대 법과대학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을 때 그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인연이 있다.
조국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먼저 민감한 얘기임을 감안해 “이 공간에서 천정배 의원(신당) 좋아하는 분, 싫어하는 분 다 계시리라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조 교수는 “저는 전국적 인물이었던 천정배 의원이 수도권에서의 도약이 여의치 않고, 대선에서의 선택(김두관 지지)도 불발이 되자, 광주로 내려가 ‘호남정치 부활’을 주창하는 새로운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천정배의원이지난4.29재보궐선거에서광주서구을에무소속을출마했던모습(사진=페이스북)
그는 “제가 김문수가 고향 대구로 내려가는 것을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은 제15대 국회에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된 이후 16대와 17대 국회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이후 2006년 7월 제32대 경기도지사와 2010년 7월 제33대 경기도지사를 연임한 거물로 새누리당 대선 후보군이다.
그런데 경북 영천 출신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내년 제20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최근 대구 수성갑 조직위원장에 응모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작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빙이 예상되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를 권유했으나 김문수 전 지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 느닷없이 깃발을 꽂으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다시 천정배 의원의 얘기로 돌아와 조국 교수는 “‘중원’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촉’(삼국지의 촉나라)으로 가서 세를 키워 다시 ‘중원’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리라 추측한다”고 천정배 의원의 ‘호남정치 부활’과 정치적 행보를 진단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활동 중인 조 교수는 “그러나 천정배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데는, 새정치연합의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국 교수는 “모든 이유와 배경을 다 떠나, 지금은 새정치연합과 천정배 (신당)가 경쟁하는 것이 야권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단, 그 경쟁은 노선과 인물에서 ‘혁신경쟁’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는 과거, 제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명한 천 의원께서 세 불리기를 위해 구시대 인물 ‘이삭줍기’를 하진 않으리라 믿는다”는 전제를 깔았다.
조국 교수는 끝으로 “천 선배님, 건강 건승하십시오”라며 선배라고 호칭하며 “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선의의 경쟁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천정배 의원은 SNS(트위터, 페이스북)에 “조국 후배님! 애정 보여주셔서 고맙지만, 광주는 중원에서 벗어난 파촉 땅이 아닙니다. 중원 중의 중원이죠”라고 반박하며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 새정치연합과 경쟁해야 한다는 제 주장(경쟁입찰론)에 늦게나마 공감하신 것은 반갑습니다. 건승을 빕니다”라고 화답했다.
천정배 의원은 1954년 전남 신안 출신으로 목포중학교를 다닐 때 전라남도 학술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고, 목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특히 그해 대학 예비고사에서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했으며, 당연히 서울대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신안이 낳은 천재’, ‘목포 3대 천재’라는 평을 들었다.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천정배 의원은 1978년 사법연수원을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해 판사나 검사로서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중 5.18광주항쟁을 목도한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 ‘라이프 스토리’에서 밝혔듯이 반독재 민주화와 인권으로 관심을 돌렸고, 1981년 군사쿠데타를 통해 부당하게 권좌에 오른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판사 검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하며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국내 최대의 법률사무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1981년 입사한 천정배 변호사는 1985년 김앤장에서의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로 참여해 국제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당선된 이후 16대ㆍ17대ㆍ18대까지 내리 4선을 한 중진이며, 2005년에는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제57대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에서 낙선한 천정배 의원은 2014년 7월 광주 광산을에 출마하려 했으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권은희 후보를 전략공천하자 깨끗하게 후배 권 후보를 도왔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감수하며 ‘호남정치 부활’을 내걸고 4.29 재보궐선거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한편, 천정배 의원이 1981년 사법연수원을 3등으로 졸업하면서도 판사나 검사의 길을 걷지 않고 변호사의 길을 걸어 당시 서울대 후배들에게 놀라움을 줬다고 한다.
실제로 천정배 의원이 2012년 4월 총선에서 자신을 네 번이나 국회를 보내준 텃밭인 안산 단원구를 떠나 새누리당의 우세지역인 격전지인 서울 송파을에 출사표를 던져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됐을 때인 그해 3월 조국 교수는 서울법대 선배인 천정배 의원에 대해 ‘행동하는 정의’라며 극찬했다.
조 교수는 트위터에 “천정배, 송파을 도전한다”며 “서울대 인문계 전체 수석입학, 사법연수원 최우수 졸업 후, 전두환에게 임명장 받지 않겠다며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여 후배들을 놀라게 한 선배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천정배, 서울법대의 모토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를 몸으로 실천했다”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가리는 우상을 깨뜨리려고 몸을 던졌다”고 호평했다.
조 교수는 “천정배,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정의’와 ‘법치’를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고 찬사를 보내며 “디케(Dike, 정의의 여신상)의 부름에 언제나 충실한 그는 ‘행동하는 정의’이다. 건투와 건승을 빈다”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