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유치원 교사가 아동을 학대했다고 보도한 KBS와 기자에 대해 법원이 방송보도로 인한 유치원 원장의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해 위자료 3000만원과 급여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KBS는 2012년 7월 25일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4회에 걸쳐 서울 노원구에 있는 A유치원에 대해 “유치원 교사가 아동을 학대했다”는 내용의 방송 뉴스를 보도했다.
보도는 유치원에서 촬영된 CCTV 중 교사가 아동을 학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4가지 화면 및 이에 대한 인터뷰 등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보도에 포함된 CCTV 영상은 원본을 편집한 것으로, 일부 영상의 경우 원본보다 속도가 2배 정도 더 빨리 재생하고, 교사의 행동 중 일부가 반복적으로 재생되도록 편집해 방송했다.
이에 A유치원 원장은 “교사가 아동들을 학대했다고 단정한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KBS가 교사의 아동 학대 여부가 문제되는 장면만 일부러 빠르게 재생시키는 등 자료화면을 조작했다”며 “허위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유치원의 명예를 훼손함과 동시에 원생 감소 등 재산상 손해를 가했으므로,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반면 KBS와 기자들은 “보도에 있어서 유치원 명칭을 표시하지 않았고, CCTV 장면에서는 교사와 아이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으며, 음성을 변조하는 등 익명보도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므로, 피해자가 유치원으로 특정됐다고 할 수 없다”고 맞섰다.
또 “보도에서 사용한 ‘학대’라는 표현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에 불과하므로 정정보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사실을 적시해 유치원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KBS는 아울러 “보도가 사실을 적시해 유치원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실한 사항 또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보도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맞섰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유승룡 부장판사)는 유치원 원장 C씨가 KBS와 기자들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손해배상 청구소송(2012가합20247)에서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KBS는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되는 KBS 1TV ‘KBS 뉴스 9’ 등 첫머리에 통상의 프로그램 자막과 같은 글자 크기로 화면 상단에 ‘정정보도문’이라는 제목을 표시하고, 그 아래 화면에 정정보도문을 시청자들이 내용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자막으로 표시하면서 진행자로 하여금 낭독하게 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KBS가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정정보도 기한 다음날부터 이행완료일까지 1일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재판부는 또 “방송보도로 인해 유치원의 원생이 급격히 감소해 받지 못한 원장 급여와 위자료 3000만원 등 총 4049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해자 특정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명예훼손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돼 있어야 하는데, 사람의 성명 등이 명시되지 않고 기사나 영상 자체만으로는 피해자를 인식하기 어렵게 돼 있더라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하면 기사나 영상이 나타내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는 경우 피해자는 특정됐다고 볼 것”이라며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이어 “보도에서 유치원이 서울 노원구에 있다고 소개하고, 유치원의 특유한 간판 모습이 포함돼 있으며, 유치원 입구와 내부 모습도 여러 차례에 걸쳐 영상을 통해 보도됐고, 보도 이후 인근 주민과 아동을 둔 부모들 사이에서 A유치원이라는 점이 회자된 사실 등을 종합할 때, 결국 보도의 피해자는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고로 특정됐다”고 밝혔다.
‘학대’ 보도와 관련, 재판부는 “보도에서 앵커 및 기자가 ‘학대하였다’라고 언급한 것은 CCTV 영상으로 보여주는 사실을 전달하고 평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는 없다”며 “따라서 ‘학대하였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 적시임을 전제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구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그러나 “CCTV 화면을 편집해 보도한 것이 허위 사실의 적시”라는 주장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KBS보도가 문제 삼는 것은 교사가 아동의 신체에 순간적으로 물리력을 가하는 것(가슴을 밀치거나 머리를 때리는 행동 등)인데, 이러한 행위를 재생 속도를 빠르게 편집하는 것은 단지 해당 행위의 속도 증가에만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력의 강도를 더 크게 보이도록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편집 이전 영상과 편집 이후 영상을 비교해 볼 때, 편집 이전 영상은 교사가 아동을 때리거나 폭행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훈계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신체접촉을 하는 행동으로 보이는 반면, 편집 이후 영상은 교사가 아동에게 다소 강하게 폭행을 행사하고 아동들은 폭행으로 갑자기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며 “보도의 영상편집 전후 변화가 이런 정도라면 이는 다소간의 과장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영상을 편집한 것은 방송 시간의 분량 문제로 인한 일상적인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나, 피고는 보도에서 일부 영상은 반복해 보여 주는 편집 방식을 취했으면서도 일부 영상은 시간의 제약으로 속도를 빨리 재생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모순되는 주장일 뿐 아니라, 설령 방송 시간의 제약이 있다고 해서 편집을 통한 사실의 왜곡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KBS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피고가 보도에서 CCTV 영상을 임의로 편집해 보도함으로써 교사가 아동들에 대하는 행동을 왜곡한 것은 허위 사실을 보도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피고는 정정보도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나아가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단기간 내에 정정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개연성이 있고 원고의 조속한 명예회복의 필요성이 인정되므로, 피고가 정정보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피고는 원고에게 정정보도 기간 만료일 다음날부터 이행 완료일까지 1일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보도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부적절한 교사의 행동을 고발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공익성 요건은 충족한다”면서도 “그러나 KBS와 기자들의 보도로 허위사실을 적시하게 된 것은 CCTV에 정확하게 담겨져 있는 사실을 편집하는 행위로써 발생한 것이므로 보도가 진실하다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피고들의 위법성 조각사유 항변은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손해배상 범위와 관련, “피고가 언론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며 일반인들에 대한 공신력이 높은 점, 보도 과정에서 방송사업자 내지 언론인으로서 요청되는 공정성과 중립성, 객관성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특히 불법행위가 보도에 삽입된 CCTV 영상의 편집과정에서 이루어진 점,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고에게는 보도로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명예의 손상을 입었음이 경험칙상 명백하고 이를 회복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점, 보도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기는 했으나 공익적 측면도 있는 점 등을 종합해 위자료 액수를 3000만원으로 정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