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에서 동료 의원들과의 사적인 대화를 몰래 촬영해 YTN의‘돌발영상’에 게재한 것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며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주)YTN 등을 상대로 낸 영상물게재금지가처분 신청사건(2006라1020)에서 법원이 임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임종인열린우리당의원
서울고법 제30민사부(재판장 김경종 부장판사)는 16일 “피신청인들은 YTN 홈페이지 ‘돌발영상’ 코너에 ‘불만 엿듣기’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동영상 중 신청인이 본회의장 좌석에 앉아 타인과 대화하는 부분을 삭제하지 않은 채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7월 “이 사건 동영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가처분신청을 기각하자, 임 의원은 “피신청인들은 문제의 동영상 부분을 삭제하지 않은 채 사이트를 운영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해 운영할 경우 하루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항고했다.
◈ “소신 없는 인물로 보이게 해 명예가 훼손되고, 사생활도 침해”
법원에 따르면 변호사 출신인 신청인은 지난 6월20일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상임위원장 선거를 위한 투표가 이뤄지는 동안 자신의 좌석에 앉아 동료 의원들과 함께 자신이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정된 것에 대한 불만 표출을 포함한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법사위는 법안을 심사하는 힘있는 상임위로 통상 의원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나 변호사 출신의원들에게 겸직 금지가 내려져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어 최근 인기가 시들해진 상임위다.
그런데 당시 본회의장 2층 방청석에 있던 피신청인 YTN 촬영기자는 신청인의 이 같은 대화 모습을 발견하고, 약 7분 동안 몰래 촬영하고 내화내용을 녹음했다. 이후 피신청인들은 YTN 인터넷 사이트 ‘돌발영상’ 부분에 ‘불만 엿듣기’라는 제목으로 3분 45초 분량의 동영상을 게재했다.
동영상에는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 의외로 환하게 웃고 있는데…과연 그의 속내도 환한지 말을 엿들어본다”라는 자막 다음에 신청인이 동료의원들에게 “김한길 대표에 대해 증오의 감정이 있다. 오늘 아주 불쾌합니다. 김한길 운영위원장 찍어주지 마세요. 지지자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문제점이다”라고 말하는 등 자신을 법사위에 배정한 김한길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동영상에는 신청인이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온 다음 본회의장 좌석에 앉아서 주변 동료 의원들에게 다시 “요새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신이 헷갈리잖아요. 나한테 법안에 대해서 얘기만 해봐. 죽여버릴 테니까”라고 말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 동영상으로 파문이 확산되자 신청인은 “변호사 휴업신고를 한 상태인데도 마치 변호사 수입 감소 때문에 법사위 배정을 기피한 것처럼 왜곡해 보도하고, 박근혜 의원과 악수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편집·보도하고, ‘열 받아서 나도 한나라당으로 갈까’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등 평소 반 한나라당 성향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신청인이 소신 없고 시류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보이게 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신청인이 국회의원으로서 공식적인 발언을 하거나 의정활동을 하는 내용을 촬영한 것이 아니고, 동료 의원들과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녹음한 것으로서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피신청인들은 “동영상은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공인인 신청인이 본회의장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상임위원회 배정이라는 국회의 공적 사안에 관해 직무와 관련된 불만을 표출하는 내용을 촬영해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서 보도 내용이 진실한 것이고, 사회적·공공적 영역에 해당돼 위법성이 없다”고 맞섰다.
◈ “동영상은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해 허용될 수 없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동영상은 신청인이 동료의원들과 사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을 YTN 기자가 몰래 촬영하고 녹음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녹음 및 보도가 정당한 법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 할 수 없으므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행위는 신청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피신청인들은 촬영·녹음한 장소가 공개된 국회 본회의장이고, 별도의 비밀 촬영·녹음 장치를 사용한 것도 아니며, 국회에서의 중계방송 등에 관한 규칙을 어가 바 없으므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공개된 장소라거나 비밀 촬영·녹음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고 촬영장소 규칙 등을 준수했다고 해서 타인간의 사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 또는 청취하는 위법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신청인들은 보도내용은 당시 관심대상이었던 국회의원들의 비인기 상임위원회 기피현상을 보도하기 위한 공적 관심사안으로 공익성이 있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보도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위법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보도내용도 국가안전보장이나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생활 침해가 불가피할 정도로 필수불가결한 내용을 포함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동영상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어 신청인으로서는 본안 판결 확정 전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동영상 가운데 대화부분의 삭제를 요구할 필요성이 있다”며 임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 신청인의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아
그러나 재판부는 임 의원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동영상에 의한 명예훼손 주장과 관련, 재판부는 “이 사건 동영상의 보도내용에 의하면 신청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이 일부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나, 보도내용은 당시 관심대상이 됐던 국회의원들의 비인기 상임위원회 기피현상을 보도하기 위한 것으로서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 사안으로서 공익성이 소명돼 위법성이 없다”며 신청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초상권 침해와 관련, 재판부는 “동영상에는 신청인의 승낙 없이 신청인이 대화하는 모습, 박근혜 대표를 만나고 오는 모습 등이 나오고 있으나, 신청인은 국회의원으로서 행위 및 인격에 대해 공중의 관심을 갖는 위치에 있는 공적 인물이므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청인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는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