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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더라인] ‘최저임금 만원’ 구호는 어디에서 왔을까?

사회운동 일각의 구호가 민주당 대선공약이 되기까지

기사입력 : 2017.08.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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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18년 최저임금이 올해 6,470원에서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극적 타결되었다. 정부 여당과 지지층은 ‘소득주도 성장’의 일환이라 자평하는 반면, 보수언론과 경제신문 등은 기업이 받을 타격과 일자리 감소 우려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먼저 흔히 ‘역대 최고 인상률’로 불리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는 않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16.6% 인상된 사례가 있다. 역대 정부별 평균 인상률을 살피면 김대중 정부가 9.0%, 노무현 정부가 10.8%, 이명박 정부가 5.2%, 박근혜 정부가 7.4%였다. ‘기업 프랜들리’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의 인상률이 가장 낮았다. 이번 인상률은 대략 박근혜 정부의 2년치, 이명박 정부의 3년치 인상에 해당한다.

최저임금 이슈는 민생과 직결된다.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도 이슈의 파급력이 보인다. 글로벌경제신문과 데이터앤리서치에서 공동조사해서 지난 21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살펴보자(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ARS 무선 100% RDD 방식 여론조사, 표본 1000명 응답률 2.75%, 신뢰도 95%±3.1%p).


일반적인 정부 지지층과 반대층의 결집과는 다른 흐름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40세대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적절한 인상이다’고 응답한 이는 20대에서 83.4%로 30대(78.0%)나 40대(72.1%)보다 높았다. 또한 60세 이상 연령층은 다른 많은 정책이슈에서 50대보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집단이지만 이 문제에 관해선 찬반의견 모두 50대보다 낮았고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이가 18.0%로 특히 높았다(50대 해당 응답 5.6%, 전체 평균 8.4%). 또한 ‘무리한 인상이다’이란 응답을 성별로 쪼개면 남성이 28.2%일 때 여성이 22.7%로 다소 이례적인 성별격차가 드러났다.

이러한 응답은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 이슈에 민감한 이가 20대, 60세 이상, 그리고 여성임을 드러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대는 그야말로 자기 문제로 여겼고, 60세 이상은 정책 결과가 ‘소득 증대’로 나타날지 ‘일자리 감소’로 나타날지 헷갈려 했기에 ‘잘 모르겠다’를 선택한 이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남성보다는 여성이 본인이 최저임금 받는 일자리로 갈 가능성을 크게 느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이렇게 생활에 직결된 문제이기에 여당 지지층이라도 정책 결과가 자신의 삶에 나쁘게 나타난다 판단하면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사안이란 얘기도 된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30%에 육박하다가 지난 십여 년간 점진적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20%는 넘는다. 이들 중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선택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 직후 정부가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을 위해 4조원 규모의 재정지원책을 발표하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가맹점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이유가 보인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의 우려들을 살피면 너무 나간 것들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인상치는 박근혜 정부의 2년치 인상수준이다. 중견기업들이 이걸로 문 닫아야 한다고 아우성치면 거칠게 말하면 스스로 내후년에는 망할 기업들이었다고 자백하는 격이다. 올해의 인상률이 그 자체로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의 민주당 공약, 2020년까지 ‘최저임금 만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언론이나 식자들의 비판도 주로 올해와 같은 인상폭을 몇 년 지속하여 ‘최저임금 만원’을 달성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인사들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16년 총선 때부터 민주당의 경제정책에 관여해온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최저임금 인상은 부모없는 자식>이란 글을 통해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이 정책에 대해 ‘누가 이것을 주창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취지도 모호하다’, ‘근거가 없다’, ‘예상 시나리오조차도 없다’라는 취지로 비판했으며 “최저임금 만원은 소득주도성장론의 몸통인가, 아니면 예시인가? 김상조처럼 마중물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퍼 올릴 지하수는 어디서 나오나?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오나?”라며 김상조 공정위원장까지 비판했다.

주진형 전 사장에게 최저임금 만원 공약이 ‘누가 이것을 주창한 것인지 불분명’한 ‘부모없는 자식’으로 보일 것도 당연하다. 이 공약은 박근혜 정부 초기 사회운동 일각에서 외쳐지던 것이 점점 확산되어 민주당에게까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 공약의 기원을 보려면 2013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3년에 ‘최저임금 1만원’이란 구호를 처음으로 사회운동에 들고 나온 것은 ‘알바연대’를 주축으로 한 몇 개 단체였다. 그들은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란 것을 결성했고 6월엔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회관 정문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 ‘최저임금 1만원’이란 구호는 현실과 너무 멀었다. 2013년의 최저임금은 5천원에도 못 미치는 4,860원이었다. 그리고 2013년 협상에서 노동계가 요구한 최저임금은 5,920원이었다. 이 금액을 달성하려고 해도 20% 이상의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5,920원에는 산출 근거가 있었다. 2012년 5인 이상 사업장 전체노동자 정액급여의 50%란 것이었다. 이 ‘정액 평균 임금의 50% 요구안’은 2천년대 이후 십여 년 넘게 노동계의 일관된 요구였다. '중위임금의 50% 법제화'라고도 불렸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내년부터 한국은 최저임금이 ‘정액 평균 임금의 50%’를 능가하는 나라가 되었다. 놀랍게도 2013년의 노동계 요구를 추월해버린 것이다. 페이스북 비판 글에서 주진형 전 사장이 국제적으로 중위임금 기준 50%를 놓고 최저임금이 낮고 높음을 따진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를 질의한 것도 이 맥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에 등장한 ‘최저임금 1만원’이란 구호는 당시에도 “산출 근거가 뭐냐”란 질의를 받았다. 놀랍게도, 없었다. 사실상의 주창자였던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협상에서 흔히 활용하는 미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 통계를 활용한 논리를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 논리에서조차 ‘1만원’이 정확한 값일리는 없었다. ‘1만원’은 다만 사람의 지갑 속에서 바로 만져지는 단위이며 직관적으로 잘 와 닿는다는 이유로 운동의 구호로 선택되었다. 아마도 알바연대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 단체에 별로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미조직노동자에게 급격하게 어필해야 했던 단체라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운동 사회에서조차 미심쩍은 시선으로 평가받던 이 구호는 점점 더 확산되었다. 원외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받아들였고,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받아들였다. 결국엔 민주당의 대선구호가 되었다. 도식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알바노조→노동당→정의당→민주당’의 흐름이 되었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매년 조금씩은 인상되면서 ‘1만원’이 점점 덜 멀어 보이게 된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흔히 사회운동의 구호를 평가할 때 영향력의 크기도 고려된다. 이를테면 2013년에 알바노조의 구호를 누군가 비판했다면 “운동사회에서도 소수파인 조그만 단체에서 내건 구호에 대해 지나치게 경제논리나 현실성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을 것이다. 이어서 “저런 구호도 있어야 최저임금 협상에서 노동자 측의 협상력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라고 품평했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만원’ 구호의 확산 과정을 펼쳐보면 그렇게 상대적으로 헐거운 검증을 받은 일각의 구호라도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라 좀 더 책임 있는 정치세력에게 받아들여지고, 결국엔 수권정당의 공약이 되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불과 몇 년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최초에 생략된 검증은, 구호가 확산되는 과정에서도 실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의 인상안으로 실현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 인상속도 그대로 2020년까지 달려서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집권 일 년차에 사회운동세력의 구호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내년 경제상황에서 정책효과를 판단하면서 인상속도를 조정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본다. 그러면 운동세력은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이미 이번 인상안에 대해서조차 원외 진보정당인 노동당은 “1만원이 실현되지 않아서 실망이다”란 식의 어이없는 논평을 냈다.

백 번 양보해 사회운동 진영의 무리한 구호 남발의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그 가치를 정책에서 실현하는 과정은 달라야 한다. 물론 민주당이 정책을 실시한다면 당연히 그 행위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민주당이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애초 실현가능성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구호를 내밀어 그걸 민주당까지 수용하게 만든 이들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답변이 쉽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각자의 책임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안에서만 이런 것이 아니다. 가령 신재생에너지로 한국 전력수요의 10%나 20%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노동당이나 녹색당에서 민주당으로 떠넘겨졌다. 이를 민주당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젠 군소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차원의 문제다.

적어도 정책담당자라면 사회운동 일각의 구호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반드시 진보적인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운동가들에게 일정한 사인을 주는 만큼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 대해 생활인들에게 사인을 줄 수 있다면, 정부에 대한 일각의 불안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지금 엄청난 걸 하려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따지면 소득주도 성장을 하겠다고, 에너지 수급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도 그 정도 일을 하려는데, 구호가 ‘최저임금 1만원’에 ‘탈원전’이면 사람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

민주당은 급진적 구호를 내세우면서 세상에 영향을 주는 집단을 의도해선 안 된다.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정책행동을 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사람들에게 표시했으면 한다. 그래야 개혁을 원하는 다수파가 좀 더 마음 편하게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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