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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검사는 상사가 아닌 국민에게 충성해야”…징계 취소 항소심도 승소

‘백지구형’ 지시 따르지 않고 ‘무죄구형’ 이유로 정직 4개월 중징계 받은 임은정 검사, 법무부장관 상대로 1심과 항소심도 승소

2014-11-06 21:55:54

[로이슈=신종철 기자] 임은정 검사가 결국 옳았다. 법정에서 “검사는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검사는 검찰과 국가의 권력의지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를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던 임은정 검사가 자신을 징계한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소송에서 또 이겼다.

과거사 사건 재심에서 ‘백지 구형’하라는 검찰 지휘부의 지시가 잘못이라고 판단해 ‘무죄 구형’을 했다는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던 임은정 검사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백지 구형’은 적법한 상급자의 지시로 볼 수 없어, ‘무죄 구형’은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임은정 검사가 대법원까지 올라가 백지구형은 위법한 것이라는 판단을 받고자 한 바로 그 판결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임은정 검사는 “백지구형 지시에 대해 복종의무가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1심보다 진일보한 판결을 받고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며 반겼다. 임 검사는 또 이번 사건은 법무부가 상고해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더욱 씩씩하게 가겠다”고 말했다.

공판검사로서 공판활동 실적우수 등으로 검찰총장 표창을 받고, 게다가 법무부에서 우수 여성검사로 선정해 발표하며 서울중앙지검 공판검사에 배치됐던 임은정 검사가 ‘무죄 구형’으로 중징계를 받고 법무부와 힘겹지만 당찬 싸움을 하고 있는 사건을 들여다봤다.

▲임은정검사(사진=페이스북)이미지 확대보기
▲임은정검사(사진=페이스북)

◆ 2012년 12월 28일 임은정 검사는 왜 무죄구형 했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발단부터 본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임은정 검사는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962년 징역 7년의 옥고를 치른 윤길중씨에 대한 재심 사건을 맡게 됐다.

이 사건은 1961년 5ㆍ16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조작된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당사자인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는 당시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서 7년의 옥고를 치르고 1968년 4월 출감했다. 윤길중씨는 2001년 사망했다.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받아들인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임은정 공판검사는 2012년 12월 17일 윤길중씨 재심사건에 대해 공안1부 담당검사에게 법리상으로도 유죄 입증이 부족한 경우이고, 또한 이미 같은 공범들에 대해 재심서 무죄판결이 확정돼 윤씨도 무죄 판결이 예상된다며 ‘무죄구형’을 주장했다.

그러나 공안1부는 ‘백지구형’ 의견을 제시해 합의가 되지 않았다. ‘백지구형’은 공판검사가 재판부에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 달라”며 구형 자체를 하지 않고 재판부에 일임하는 것이다.

이에 임은정 공판검사는 첫 공판에 들어가기 전에 ‘무죄구형’ 결재를 받기 위해 공판2부 부장검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부장검사도 “법과 원칙에 따른 구형”을 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임은정 검사는 즉석에서 ‘이의제기권’을 행사했다.
검찰청법 제7조 이의제기권은 검사들이 무조건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관해 지휘ㆍ감독을 받지만 그에 대해 이의제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근거조항을 말한다. 이는 상명하복을 중심으로 한 검사동일체 원칙의 폐단을 막기 위한 것으로, 검사동일체 원칙은 2004년 폐지됐다.

그러자 공판2부 부장검사는 서면으로 이의제기권을 행사하라고 했고, 이를 준비하던 임 검사는 공소심의위원회에서 무죄구형이 적절한지 결정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임 검사는 무죄구형안을 설득하기 위해 공소심의위원회 자료를 보완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장검사는 공판부 다른 검사에게 재심사건을 담당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임은정 공판검사는 더 이상 사건에 관여할 수 없게 됐다.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도 듣지 못한 상황에서 무죄구형도 아니고, 또한 수사검사도 아닌 기획검사가 법정에 들어가 사실상 ‘백지구형’ 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지자 임은정 검사는 황망했다.

공소심의위원회를 거치지도 않은 채 갑자기 행해진 직무이전명령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임 검사는 ‘백지구형’을 지시받은 기획검사는 그때까지 사건기록도 전혀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공판검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구형을 그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다른 검사가 되뇌이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임 검사는 백지구형이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구형”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직무이전을 지시한 부장검사나, 지시에 따라 이행할 기획검사도 위법한 행위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의제기를 한 상황에서 어떤 답변도 없이 공소심의위원회를 거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직무이전명령을 한 것은 위법ㆍ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임은정 검사는 결단을 내렸다. 2012년 12월 28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509호실 윤길중씨 재심사건 공판에 참석해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잠근 채 부장검사로부터 백지구형을 지시받은 다른 기획검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후 재판부에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을 받아들여, 이날 곧바로 무죄를 선고했다.

윤길중씨 재심사건 변호인이었던 이덕우 변호사는 법정에서 검사의 무죄구형에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이덕우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제일 기쁜 날이다. 법률과 교과서대로 법정에서 무죄구형을 하는 검사를 보았으니 정말 기쁘다”, “변호사 생활 20여 년 동안 무죄 논고를 처음 본다. 검사가 공익의 대변자임을 이제 알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 임은정 검사에게 내린 징계사유 4가지는?

▲서울서초동대검찰청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서초동대검찰청


그런데 이후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임은정 검사에 대한 감찰조사를 벌여 법무부에 ‘정직’ 처분을 권고했다. 결국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2013년 2월 임은정 검사에게 정직 4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징계 이유는 4가지였다. 첫째, 공판2부 부장검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무단으로 공판에 참석해 무죄구형을 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둘째, 법정 검사 출입문을 닫아 부장검사의 지시를 받은 다른 검사의 법정 출입을 막고 구형을 하지 못하도록 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셋째, 검찰 내부게시판에 무죄구형에 관한 글을 올려 외부 언론에 전파되도록 해 검찰조직 내부의 혼란을 초래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게 하는 등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이유였다. 넷째, 반일휴가를 이유로 법원에서 바로 퇴근해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한편, 임은정 검사는 2007년 ‘공판업무 유공’으로 검찰총장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수사와 공판업무의 전문성 그리고 소신과 열정을 인정받아 법무부에서 ‘우수여성검사’로 선정해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에 배치했었다. 하지만 정직 징계처분을 받은 이후 창원지검으로 전보 발령됐다.

▣ 임은정 검사 “무죄구형은 적법…징계가 위법 부당해”

이에 임은정 검사는 2013년 5월 “징계가 위법ㆍ부당하니 취소해 달라”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냈다.

▲임은정검사(사진=페이스북)
▲임은정검사(사진=페이스북)
임 검사는 “검찰청법에 의한 ‘직무이전명령’은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의 권한이므로, 공판2부 부장검사가 공판부 다른 검사로 하여금 무죄구형을 하도록 한 것은 위법하고, 또한 이의제기권 행사에 대한 답변 없이 행해진 직무이전명령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객관의무를 부담하므로 죄에 상응하는 형을 구형해야 하고, ‘법과 원칙에 의한 판단’(백지구형)을 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따라서 무죄구형 거부를 이유로 공판2부장의 직무이전명령은 위법하고, 무죄구형은 적법하므로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 검사는 또 “검찰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을 뿐 외부에 표명하지 않았고, 그 내용도 백지구형의 문제점과 검찰에 대한 우려 등에 불과하다”며 “이를 징계사유로 삼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봉쇄할 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의 자유로운 의견표명을 막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반박했다.

임은정 검사는 그러면서 “법무부장관은 검찰의 신뢰를 명백히 떨어뜨리는 비리, 추문, 폭력행사에 대해 징계처분을 해 온 점, 특히 정직, 면직, 해임의 중징계처분은 비위의 정도가 극심한 경우에만 이루어진 점, 원고가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 온 점 등을 고려할 때, 정직 4월은 징계사유로 삼은 비위행위의 정도에 비해 균형을 잃은 과중한 징계처분이므로, 비례원칙과 형평성에 반해 재량권 일탈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서울행정법원 “임은정 검사 정직 4개월 징계처분 취소하라”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문준필 부장판사)는 지난 2월 “피고(법무부장관)가 2013년 2월 15일 원고에 대해 한 정직 4월의 징계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직무이전명령과 관련, 재판부는 “직무이전명령은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청의 장이 하는데, 위임규정이나 사전ㆍ사후 승인이 없는 공판2부장에 의한 직무이전명령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직무이전명령은 권한 없는 자에 의한 것이므로, 원고는 재심사건 공판검사로서 직무수행을 할 권한이 있다”며 “따라서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잠그고 구형을 할 수 있으므로, 직무이전명령을 전제로 한 징계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재판부,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은 왜 잘못으로 판단했나?

재판부는 그러나 무죄구형은 상급자의 지휘ㆍ감독에 따르지 않은 행위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백지구형은 사실상 무죄구형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과거의 유죄 확정판결이 현재의 관점의 변화에 따라 무죄가 됨에 따른 검찰의 곤혹스런 입장이 반영된 것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백지구형이 구형권 행사에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더라도 적법한 구형에 해당하고, 정당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또 “상급자인 공판2부장에게 알리지 않고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잠근 후 무죄 구형하는 행위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평가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무죄구형만이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할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은 “검사, 표현의 자유”

검찰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재판부는 “검사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헌법에 따른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고, 의견 공표로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했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며 “원고가 글을 게시한 행위가 검찰조직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해 검사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종합적으로 재판부는 “원고가 상급자의 지휘ㆍ감독에 따르지 않고 무죄구형을 하거나, 근무시간을 위반한 징계사유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 처분은 검사 직무의 특수성이 징계를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을 감안하더라도 비위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과중해 재량권 일탈ㆍ남용에 해당한다”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무죄구형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얻지 않았고, 원고는 광주지검에 근무할 당시 2007년도 공판 활동 실적우수 등으로 검찰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또한 우수 여성검사로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되는 등 검사로서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 왔다”는 점 등을 종합해 징계가 재량권을 일탈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임은정검사(사진=페이스북)이미지 확대보기
▲임은정검사(사진=페이스북)


◆ 임은정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씩씩하게 가겠다. 제가 대한민국 검사니까요”

이번 판결에 대해 당시 임은정 검사는 지난 2월 21일 페이스북에 “부장검사에게 직무이전지시 권한이 없어, 고 윤길중 재심사건은 (공판검사인) 제 사건이고, 검사게시판 글 게시가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제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라 감사한 마음”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 검사는 “백지구형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법원의 판단이 제 생각과 달라 속이 좀 상합니다만, 쉽지 않은 길이라고...각오 단단히 한 것에 비하면..이 정도면 편하게 출발하는 것이겠지요”라며 “(이번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씩씩하게 가겠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검사니까요^^”라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3월 4일 항소했다.

이에 임은정 검사는 페이스북에 “기왕 (재판) 하는 것. (백지구형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이끌어낸다면 법조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겠지요. (1심) 재판부에서 징계사유가 아닌 백지구형 지시 위반이 징계사유가 된다는 사족을 덧붙이며 백지구형에 대해 오히려 적법성을 인정한...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사족부분이 이대로 확정되는가, 답답해하던 차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항소심에 임하겠다”며 항소를 환영했다.

◆ 임은정 “검사는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항소심은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장 민중기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됐다.

임은정 검사는 지난 8월 18일 항소심 결심 기일에 법정에서 최후 진술에서 “검사는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며 “검사는 검찰과 국가의 권력의지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를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검사의 소신과 기개가 묻어있는 대목이다.

임 검사는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한다”고 밝혔다.

임 검사는 그러면서 “제가 배운 ‘검사’는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국가기관으로, 정의에 대한 국가의지의 상징”이라며 “저는 검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징계를 받아 이 자리에 선 현실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준사법기관으로, 단독관청으로서 검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임은정 “검사는 상사가 아닌 국민에게 충성해야”…징계 취소 항소심도 승소이미지 확대보기
◆ 서울고법 “백지구형 지시는 상급자의 적법한 지시로 볼 수 없다”

서울고법 제7행정부는 6일 임은정 검사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계를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게다가 ‘백지구형 지시’는 위법하다는 판단까지 내렸다. 임은정 검사가 바랐던 바로 그것이다.

재판부는 “임 검사는 형사소송법상 검사의 의견진술의무와 검찰 조직원으로서 절차에 따라야 할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사의 의무를 우선해 무죄의견을 진술했다”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죄의견을 진술했다는 사실만으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검사는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 따라 공소사실에 관한 유무죄 여부, 무죄일 경우에는 무죄를 선고해 달라는 의견, 유죄일 경우 그 죄에 상응하는 형에 관한 의견 등을 진술할 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법과 원칙에 의한 판단’을 구하는 백지구형은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 의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해 적법한 의견 진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에게 백지구형을 지시한 것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적법한 상급자의 지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공판부 검사가 법정에 출석해 구형하는 업무는 검사의 고유권한으로 공판검사에게도 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이루어지도록 구형에 관한 재량권이 존재한다”며 “원고(임은정 검사)가 공판2부 부장검사의 백지구형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의견을 진술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징계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임 검사가 무죄구형 후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고 법원에 머무르다 퇴근한 부분에 대해서는 근무시간 위반으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사유로 정직 4개월 징계 처분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 다음은 임은정 검사가 지난 8월 28일 항소심 결심 기일에 법정에서 한 최후의견 전문

임은정 검사는 항소심 승소 판결 후 페이스북에 “8월 28일 항소심 결심 기일에 법정에서 한 최후의견을 동봉합니다. 좀 길지만.. 그래도 제 고민이 담겨 있어 공유하고 싶네요^^”라고 올렸다.

최후 진술

제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면, 저는 무죄사건을 무죄라고 논고하여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무죄구형 때문이 아니라 상사의 직무이전지시 위반으로 징계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그 지시는 무죄를 무죄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어서 결국 무죄를 무죄라고 하여 징계한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대학에서, 사법연수원에서, 선배들로부터, 제가 배운 ‘검사’는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국가기관으로, 정의에 대한 국가의지의 상징입니다.

검사는, 의원들처럼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행정부 공무원처럼 국가이익을 위해 저울질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준사법기관으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사의 권한 행사 적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저는 배웠습니다.

윤길중 재심사건은 관련 검사들 모두 검사의 논고 직후 무죄선고가 되리란 것을 잘 알고 있던 사건입니다. 그런 뻔한 사건에서조차 무죄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참담한 현실에서, ‘임 검사, 자네가 그 시절의 검사였다면 어떻게 했겠나? 달리 할 수 있나? 검찰은 판단기관이 아니야. 법원이 판단하는 거야. 법원보고 판단하라고 해’ 등의 말이 떠도는 악몽같은 현실에서, 저는 배운대로 ‘무엇이 저에게, 검찰에게 이익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혹자는 어차피 무죄 날 사건이고, 검사의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의 표출로서, 재판부에 대하여 정의와 법에 가장 부합하는 선고를 촉구해야 하는 검사의 의무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 것입니다.

무죄구형을 강행하기로 작심한 후 1주일. 정말 할까봐 무섭고, 결국 하지 않을까봐 두려워 숨쉬기도 버거웠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공판검사석에 앉아 몸이 하도 떨려서 표내지 않으려고 혼이 났었습니다.

백범일지에 제가 참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기이한 것이 아니나, 벼랑 끝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장부의 기상이로다! 내가 비록 여자지만 검사인데, 대장부의 기상이 없으랴. 지금 이 벼랑 끝에서 손을 놓겠다. 놓아야 한다. 놓아라. 그렇게 주문을 외우며 무죄 논고를 하였습니다.

그때 변호인이 무죄 논고에 당황하여 ‘변호사 생활 20여 년 동안 무죄 논고를 처음 본다. 검사가 공익의 대변자임을 이제 알겠다.’고 말할 때, 떨림이 딱 멈추데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무서워서 사무실로 돌아가지도, 휴대폰을 켜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선서에서 요구하는 검사의 자세는, 헌신은, 용기는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가 매 순간순간 요구받는 것입니다.

검사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법과 정의에 따라야 합니다. 법률적인 불법(gesetzliches Unrecht)에는 복종의무가 없습니다.

검사는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검사는 검찰과 국가의 권력의지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저는 배운대로 검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징계를 받아 이 자리에 선 현실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준사법기관으로, 단독관청으로서 검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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