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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탈북자 위장 북한 보위부 간첩 무죄…“증거 없다”

김용민 변호사 “법원서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부인은 매우 이례적, 형사법상 큰 의미”

2014-09-06 14:10:10

[로이슈=신종철 기자]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대한민국에 침입해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홍OO씨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상 홍씨의 자백이 거의 유일한 증거였는데, 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이 증거로 쓸 자격을 갖추지 못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김용민 변호사는 “이번 간첩 혐의 사건은 피고인의 자백이 거의 유일한 증거였는데, 법원이 피고인의 자백이 기재된 검사가 제출한 피의자신문조서 등 서류들이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법원에서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형사법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김우수 부장판사)는 5일 국가보안법 위반(목적수행, 간첩, 특수잠입ㆍ탈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홍OO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이번 사건에는 검사 7명이 기소와 공판에 참여하고, 홍씨의 변호인으로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장경욱ㆍ천낙붕ㆍ박주민 변호사 등 14명이 변호인단으로 참여하며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2013년 8월 중국, 라오스, 태국 등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홍OO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의 탈북자 신문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지시대로 동거녀의 도강을 지원하다 체포돼 7년형을 선고받자 이에 앙심을 품고 탈북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홍씨의 진술에 설득력이 없고 모순점이 있어 집중 신문 끝에 “북한 ‘보위사령부’ 소속 공작원이며, 지령에 따라 탈북자와 탈북자 단체 동향 파악 및 국가정보원 등 간첩임무 등을 수행하기 위해 국내 침투했고, 북한 내부정보를 수집해 온 탈북브로커를 유OO을 유인ㆍ납치하려다 실패했다”고 실토하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에 검찰은 “홍씨가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으로 잠입하고,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지령에 따라 국가기밀인 탈북자 및 탈북자 단체 동향, 국가정보원 정보원의 신원 파악 등의 공작임무를 수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며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홍씨는 2012년 5월 북한 보위사령부 정식 공작원이 돼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이후 2013년 2월에는 탈북자로 위장해 단독으로 대한민국에 침투하라는 지시를 받고, 국내 중앙합동신문센터ㆍ탈북자 신문 타개방법 및 변절에 대비한 정신자세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반면 변호인단은 “피고인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위장 탈북해 국내에 침투한 ‘보위사 공작원’이 아니라, 단순한 북한이탈주민에 불과하고, 또한 탈북브로커 유○○을 약취ㆍ유인하려고 한 사실이 없다”며 간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피고인의 자백진술을 제외하면, 공소사실을 증명할 만한 증명력을 가진 증거는 없다”며 “따라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과서울중앙지법(우)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중앙지검과서울중앙지법(우)


◆ 서울중앙지법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모두 증거능력 없다” 왜?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김우수 부장판사)는 이날 구속 기소된 홍OO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검찰이 제시한 홍씨의 진술서 등 각 증거들은 모두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작성한 피고인의 진술서의 증거능력과 관련, 변호인단은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관 A씨가 2013년 5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파견근무 중인 K씨에게 홍씨의 간첩 혐의를 제보했고, K씨는 2013년 8월 19일 합동신문센터에 근무 중인 국정원 수사관에게 간첩 제보 사실을 알렸다”며 “따라서 최소한 그 이후부터 합동신문센터에서 피고인의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것이므로, 합동신문센터에서의 조사는 범죄수사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인이 합동신문센터에서 작성한 진술서 내용을 부인한 이상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또 “피고인의 진술서는 진술거부권, 변호인조력권이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취득된 것일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신이 언제 석방될 수 있는지, 언제 독방에서 다인실로 옮겨질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독방에 총 135일간 수용돼 있었다. 이는 그 자체로 고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장기간 1인실 구금상태에서 조사관들의 기망ㆍ회유ㆍ강압에 의해 혐의사실을 자백했다”며 “따라서 임의성 없는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이 각 진술서 작성 당시 즉 2차 조사 개시 시점인 2013년 10월 15일부터는 합동신문센터 조사관들이 피고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혐의가 있다고 봐 수사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피고인은 사실상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는 피의자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각 진술서는 피의자가 작성한 진술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런데 합동신문센터 조사관은 당시 피고인에게 ‘합동신문센터 조사에서는 진술거부권, 변호인조력권을 고지하지 않는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각 진술서 등에 진술거부권, 변호인조력권을 고지했다는 취지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다”며 “결국 진술서 작성 당시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 변호인조력권이 고지됐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진술서 등은 위법수집증거에도 해당하는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제1회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의사실과 관련해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조력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검사의 피의자신문에 응하게 됐고, 특히 피고인이 탈북자로서 대한민국의 형사 실체법과 절차법을 잘 알지 못하는데다가, 상당기간 사실상 신체의 자유가 제약된 상태에 있었으며, 장기간 계속된 합동신문센터 조사에서 부인과 자백을 수회 반복했던 사정 등을 감안하면, ‘적법한 절차와 방식’의 준수를 통해 실질적으로 위 권리들을 보장받을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밝혔다.

홍씨는 2013년 8월 16일 입국해 합동신문센터에 입소한 후 변호인의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관들로부터 1차로 2013년 9월 3일부터 17일까지 15일간, 2차로 2013년 10월 15일부터 2014년 1월 6일까지 84일간 조사받았고, 이후 1월 22일부터는 국정원 수사관들로부터 12회의 피의자신문을, 2월 20일부터는 검사로부터 8회의 피의자신문을 각 받은 후 지난 3월 10일 기소됐다.

재판부는 특히 변호인조력권을 강조하며 중점을 뒀다.

재판부는 “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중에서도 조언과 상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호인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며 “그런데 피고인과 같은 탈북자의 경우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형사 실체법과 절차법을 거의 알지 못하므로, 그 누구보다 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절실하고 이를 실효적으로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피고인의 혐의는 법정형의 하한이 살인죄보다도 높은 중범죄인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죄라는 점에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실효적 보장은 더욱 요청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2013년 8월 16일 입국 이후 2014년 3월 27일 변호사와 접견하기 전까지 약 7개월 이상 신체의 자유가 사실상 제약된 상태에서, 2014년 2월 11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당시 짧은 시간 동안 국선변호인과 면담하고 국선변호인의 동석 하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것 이외에는, 사실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은 공소제기 후 자신에 관한 언론보도를 접하고 두 차례 검사와 면담한 결과,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어머니의 국내 입국에 관해 국정원이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공소사실의 인정 여부에 관해 갈등하면서 국선변호인으로부터 상담과 조언을 받기를 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국선변호인과의 접견이 이루어지기 전에 의견서 제출 시한이 임박하자, 우선 의견서와 반성문도 작성해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014년 3월 27일 사실상 처음으로 형사 공판과 관련해 (민변 변호인단으로부터) 실질적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기 시작했고, 그 직후부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다”며 “이처럼 피고인이 실질적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은 직후부터 공소사실을 부인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위 의견서, 반성문의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관한 판단에 특히 참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첩 혐의를 받는 홍OO씨에 대한 제2회부터 8회까지의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도 재판부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피고인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음이 영상녹화물 등에 의해 증명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조서 작성시 참여한 검찰수사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각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형사소송법에서 ‘기타 객관적 방법’은 영상녹화물에 필적할 만큼 강력한 증명력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데, 각 조서와 관련된 영상녹화물이 존재하지 않는데다가, 수사기관의 조사자 증언은 이에 필적할 만큼 강력한 증명력을 갖춘 것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합동신문센터 조사관들 및 국정원 수사관들이 법정에서 “홍씨가 자백했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이 합동신문센터 조사관들 또는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한 자백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해졌다는 점이 확실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피고인의 자백진술을 내용으로 한 각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이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고, 피고인의 증거능력 있는 자백 진술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 검사가 제출한 부수적이고 간접적인 증거들이나 정황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그렇다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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