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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웅 변호사 ‘화장품의 사용기한’

2016-08-11 15:56:32

<화장품의 사용기한>
임지웅 변호사(변호사시험 3회)

임지웅 변호사
임지웅 변호사
2010년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의 Joao Zilhao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스페인 남부의 무르시아 지방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에서 조개껍데기를 발굴했다. 연구팀은 그 조개껍데기에서 아주 특별한 것을 찾아냈다. 바로, 화장(化粧)의 흔적이었다. 연구팀은 조개껍데기가 화장품(색소)을 보관하기 위한 용기로 사용되기도, 서로 다른 화장품를 섞기 위한 팔레트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화장은 더 이상 현생인류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지난한 진화의 과정에서 DNA 안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아름다움을 두고 레바논 태생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아름다움은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빛이다(Beauty is not in the face; beauty is a light in the heart)”라고 말했다지만, 이미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더 이상 내면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런 외양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조금이나마 만족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화장품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고작 몇 가지의 색소를 화장품으로 이용했지만, 요즘은 멀티스틱, 컨실러, 하이라이터, 비비, 씨씨 등 다양한 종류의 시판 화장품이 존재한다. 심지어 개인이 직접 만들어 쓰는 경우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화장품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를 화장품으로 봐야 할까? 즉, 화장품의 정의는 무엇일까? 화장품법 제2조 제1호는 ‘인체를 청결·미화하여 매력을 더하고 용모를 밝게 변화시키거나 피부·모발의 건강을 유지 또는 증진하기 위하여 인체에 바르고 문지르거나 뿌리는 등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물품으로서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화장품하면 떠올릴 수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만, 화장품법 정의 조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인체에 대한 작용’이라는 부분이다. 그렇다. 화장품은 그 조성(組成)이나 성상(性狀)에 관계없이 인체에 대한 작용을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는 알레르기 반응이나 그 외의 부작용 등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때문에 안전성 담보를 위한 각종 법령과 행정청의 고시·가이드라인 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구입한 화장품을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일 것이다. 안전하게 말이다. 생산된 화장품은 운반·보관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환경에 따라 변질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아울러 제품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 사용과정 중에 공기와 접촉하여 산화가 진행될 수도 각종 오염물질-특히 미세먼지-이 유입될 수도 있다. 또한, 신체와 직접 닿는 제품의 경우 미세한 각질이나 표피의 세균 등에 오염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즉, 화장품은 생산 이후 유통 내지 사용 과정에서 얼마든지 안전성 내지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화장품법 역시 화장품의 사용기한을 제품에 표시1)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화장품법은 이러한 사용기한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사용기한의 설정 기준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같은 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찾아보아도, 소관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수많은 고시나 가이드를 살펴보아도 그러한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물론 화장품법 상의 사용기한의 정의2)와 그 외의 규정들, 식약처의 각종 고시 내지 가이드 등을 참고하면 ‘소비자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도출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체에 직접 작용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규정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식품 등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식약처는 ‘식품, 식품첨가물, 축산물 및 건강기능식품의 유통기한 설정기준(식품의약품안전처고시 제2014-206호, 이하 ‘유통기한 기준’)’을 정해두고 이화학적, 미생물학적, 관능적 지표들을 실험을 통해 도출한 후 그 결과보고서를 제출3)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 유통기한 기준에는 유통기한의 적정한 설정을 위한 실험조건과 실험방법 등이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이에 반해 화장품법은 사용기한 또는 개봉 후 사용기간을 위·변조한 경우에만 처벌4)을 예정하고 있을 뿐, 사용기한을 적절하게 설정할 수 있는 기준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화장품의 적정한 사용기한의 설정은 온전히 화장품 제조업자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물론 적정한 사용기한을 설정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이미지가 중요한 화장품 업계에서 생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제조업자 내지 제조판매업자 등이 적정한 사용기한 설정을 위해 노력하리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다. 또한, 화장품의 사용기한을 적정하게 설정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피해 등에 대해서는 제조물책임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세 제조업체의 경우 적정 사용기한 설정을 위한 실험의 방법 등을 두고 고민할 수 있으며, 사후약방문식의 규정만으로는 피해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화장품 관련 법령은 성분 등에 관해서 수많은 규제들을 두고 있다. 이는 인체에 직접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화장품의 성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를 언제까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덧대는 일은 지양해야 하지만, 필요한 규제를 미루는 일도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한류(韓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Beauty가 끊임없이 파도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적 기준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지웅 변호사(변호사시험 3회)
㈜미미박스 법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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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장품법 제10조 제1항 제6호, 제2항 제4호
2) “사용기한”이란 화장품이 제조된 날부터 적절한 보관 상태에서 제품이 고유의 특성을 간직한 채 소비자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말한다.(화장품법 제2조 제5호)
3) 식품, 식품첨가물, 축산물 및 건강기능식품의 유통기한 설정기준 Ⅱ. 3. 실험 결과보고서 제출
4) 화장품법 제15조 제9호, 제36조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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