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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사상 최초로 법원서 사법부 규탄 촛불시위

법원노조간부 홍일점 삭발투쟁…대법원 성토 쏟아져

2006-05-10 02:26:38

판사가 법원 직원을 감금했다는 논란으로 촉발된 법원일반직공무원들과 사법부 수뇌부와의 갈등이 법원행정처가 법원내부게시판을 장악하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법부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법원공무원들이9일촛불시위를하기위해서울법원종합청사앞에모여사법개혁구호를외치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법원공무원들이9일촛불시위를하기위해서울법원종합청사앞에모여사법개혁구호를외치고있다.
법원공무원들이 이들 문제에 대해 대법원에 공개사과와 함께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며,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청사에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개최한데 이어 서울법원종합청사 중앙로비에서 삭발식을 거행했고, 급기야 촛불시위로 이어지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전국 법원공무원들은 왼쪽 가슴에 “쟁취, 사법민주화…표현의 자유”라는 리본을 부착하는가 하면, 대법원이 공개사과하지 않을 경우 향후에는 전국의 법원공무원들이 대법원으로 집결해 대법원을 둘러싸는 촛불시위를 개최한다는 방침이어서 대법원에 상당한 압박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 “대법원장은 법원직원들에게 친절하라”

▲법원공무원들이촛불을들고삭발투쟁을벌이고있는노조간부를격려하기위해민중가요를부르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법원공무원들이촛불을들고삭발투쟁을벌이고있는노조간부를격려하기위해민중가요를부르고있다.
9일 오후 6시부터 업무를 끝낸 서울중앙지법 등 법원공무원들은 ‘법원공무원의 언론자유수호와 권익증진을 위한 촛불문화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하나둘씩 서울법원종합청사 동문입구 야외마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법원에서 촛불시위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 자리에는 200여명의 법원직원들이 운집해 행사 진행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송립 서울지부장은 기자에게 “오늘 행사에 50명 정도 많아야 100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200명 가량이 모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도 “오늘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참석해 줘 큰 힘이 된다”며 “그동안 사법부 수뇌부들은 노조간부 몇 명이 떠들어대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으나 오늘 이 모습을 보면 법원직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을 것”이라며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촛불시위는 6시 15분부터 시작됐고, 양윤석 서울지역본부장은 인사말을 통해 먼저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한 마디 하겠다”며 “대법원장은 법원직원들에게 친절하라”는 멘트를 날려 참석자들을 웃음 바다로 만들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양 본부장은 이어 “곽승주 위원장을 중심으로 대법원의 오만과 독선에 맞서 끝까지 싸워 이번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단결하자”고 호소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법원노조 이상원 대변인은 “우리에겐 아무 힘이 없어 이렇게 일반직들이 단결할 수밖에 없다”며 “법원노조 똘똘 뭉쳐 사법개혁 쟁취하자, 법원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꿔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합원들을 이끌었다.

최송립 서울중앙지부장은 “하나로부터 열이 뭉치면 더욱 밝게 빛나는 촛불처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하니 전국 법원을 밝힐 수 있는 강한 자신감이 생긴다”며 “오늘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지부장은 특히 “오늘의 촛불은 사법부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전국공무원노조법원본부김동영본부장(좌)과법원노조곽승주위원장(우)이미지 확대보기
▲전국공무원노조법원본부김동영본부장(좌)과법원노조곽승주위원장(우)
곽승주 위원장은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법관이 법원조직원을 지시의 대상으로 보고, 7시간이나 감금한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법원장이 법원직원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김도영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은 “이 좋은 날에 동지들이 좋은 일도 아니고 썩어빠진 사법부를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법원본부는 처음 판사의 감금 사실을 알고도 가능하면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판사와 법원장이 사과를 하지 않아 투쟁에 나서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대열 서울가정지부장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격려해 주는 조합원들을 보며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이영렬 경기·강원지역본부장은 “오늘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원에서 간담회를 가졌다”며 “사실은 간담회가 아니라 서울법대 동창회를 한 것이고, 이것이 우리 법원의 현실”고 비난했다.

◈ 노조간부 홍일점 삭발…“법원행정처 판사들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

▲법원공무원들이촛불을치겨들며민중가요를부르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법원공무원들이촛불을치겨들며민중가요를부르고있다.
이날 저녁 7시 무렵부터는 촛불시위에 참석한 법원공무원들이 술렁이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유일한 법원노조 여성간부인 백연옥 여성위원장이 삭발 투쟁의 전면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직원들은 노조 집행부에 “백 위원장은 제외해 달라”는 만류의 부탁이 쏟아지기도 했다.

백연옥 위원장은 이런 분위기가 흐르자 마이크 잡아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백 위원장은 “법원생활 22년을 하는 동안 지금까지 이 곳이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코트넷(법원내부게시판)에 글 하나 올리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백연옥여성위원장이삭발하자동료여직원들이안타까워하고있다.
▲백연옥여성위원장이삭발하자동료여직원들이안타까워하고있다.
백 위원장은 “어제 저녁에는 삭발에 대한 마음이 흔들릴까봐 ‘바위처럼’ 노래를 1시간이나 따라 부르며 마음을 굳게 먹었고, 오늘 오후 남편이 삭발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며 “삭발할 때 여러분들이 ‘바위처럼’ 노래를 계속 불러달라”고 삭발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 여성직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내던진 한 마디는 “여러분 힘 실어 주실 거죠”. 이에 참석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따뜻한 격려의 박수로 화답했다. 삭발이 시작되자 백 위원장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이를 지켜보던 여성직원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삭발현장 가까이로 나와 눈물을 쏟아냈고, 참석자들은 백 위원장의 부탁대로 ‘바위처럼’을 경건하게 불렀다.

삭발이 끝나고 동료들이 백 위원장을 껴안자 백 위원장도 입술을 굳게 깨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삭발을 지켜본 여성동료들은 특히 “법원행정처가 사태를 왜 이 지경으로 내 모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개하면서 “법원행정처는 제발 법원직원들의 입과 귀를 막지 말고, 법원직원들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중가요 ‘바위처럼’ 노래에는 “모진 비바람이 몰아 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라는 가사가 있는데, 나중에 백 위원장은 기자에게 “가사그대로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살고 싶어 삭발 의지가 흔들리지 않게 어젯밤에 이 노래를 계속 들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윤석서울지역본부장
▲양윤석서울지역본부장
삭발에 동참한 양윤석 서울지역본부장은 “법원행정처에는 70∼80명의 판사들이 있는데 모두가 1등만 했고, 또한 사법시험 동기 중에서도 1∼2등만이 법원행정처에 갈 수 있어 자신들만이 똑똑한 줄만 알지 보통사람들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며 “이를 깨지 않는 한 법원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기 위해 삭발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김성환 대전지부장은 “법원행정처에서 내놓은 사과문이 만족스럽지 못해 삭발로 보여주겠다”고 말했고, 김대열 서울가정지부장은 “법원행정처는 법원직원들이 왜 머리를 자르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며 “삭발은 투쟁의 시작일 뿐”이라고 향후 전개될 법원노조의 강도 높은 투쟁을 시사했다.

이날 삭발투쟁에는 최송립 서울지부장도 참여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1일 곽승주 위원장과 이성철 사무총장이 삭발을 단행했다.

◈ “민둥 머리를 한 여성위원장은 어디로 눈물을 쏟을 꼬”

이날 법원노조는 법원직원들이 바라는 바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게시판 발언대도 마련했다.

▲법원여직원들이촛불을들고삭발식을안타깝게쳐다보고있다.
▲법원여직원들이촛불을들고삭발식을안타깝게쳐다보고있다.
백연옥 여성위원장의 삭발을 지켜보며 함께 눈물을 쏟아냈던 한 여성직원은 게시판 발언대에 “속에서 나온 천불을 어찌할꼬...나는 눈으로만 우는 줄 알았지 가슴으로 울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민둥 머리를 한 우리 여성위원장은 어디로 눈물을 쏟을 꼬...”라는 글로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게시판에는 이 외에도 “우리는 사랑과 화합을 원했는데 결국은 투쟁으로 내 몰고 있습니다”와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 우리의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또한 “이용훈 대법원장님 그리고 고위직분들, 우리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제발 사과하고 대화하십시오”라는 글들이 쏟아졌다.

한편 이날 행사는 8시 30분 정도에 끝났고, 대법원청사에서 대법원장 규탄대회와 서울법원종합청사 로비에서 삭발식 거행 때와는 달리 법원경비대가 시위를 막지 않아 충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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