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채권양도담보에 관한 대향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담보 목적 채권을 타에 이중으로 양도하고 제3채무자(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그 채권양도통지를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이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내과의원 운영 의사)이 2009년 9월 25일경 피해자로부터 금전(1억원)을 차용하면서 피고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해 가지는 요양급여채권을 피해자에게 포괄근담보로 제공하는 채권양도담보계약을 체결했다. 위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담보로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피고인은 계약에 따로 양도담보권자인 피해자를 위해 채권을 성실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에 위배해 위 채권을 친형의 채권자에게 이중으로 양도하고 2011년 5월 31일경부터 2013년 2월 20일경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6억9697만8160원을 친형의 채권자(타인)가 지급받게 함으로써 피고인의 친형에게 같은 금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 이로써 피해자에게 위 금액 또는 피고인의 피담보채무액인 5억9360만 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및 변호인은 "피고인은 타인의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피고인이 타인에게 요양급여채권을 양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 자신의 요양급여채권을 이중으로 양도한다는 명시적 인식이 없어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2013고합235)인 의정부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한정훈 부장판사)는 2014년 4월 2일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피해금액이 큰 점,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초범인 점, 업무상배임이 아닌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피해자를 채권양수인으로 하는 채권양도통지를 다시 하여 원상회복이 이루어졌고, 2013. 3. 22.경 이후로 3억 원을 넘는 금액이 변제됐으며, 향후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가 피해자에게 매월 2,000만 원 이상씩 입금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피해금액 중 상당부분에 대한 변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피고인이 범죄수익을 소비하거나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 양형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다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이중채권양도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재산상 손해액이 5억 원 이상이라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단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은 무죄로 봤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것이나 이와 일죄의 관계에 있는 배임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았다.
피고인(배임죄부분)과 검사(무죄부분)는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양형부당으로 쌍방 항소했다.
원심(2심 2014노1134)인 서울고법 제10형사부(재판장 허부열 부장판사)는 2015년 4월 2일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채권양도담보에 관한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담보목적 채권을 타에 이중으로 양도하고 제3채무자(공단)에게 그 채권양도통지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가 위 채권을 원만하게 추심할 수 있도록 피해자 재산의 보호 또는 관리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인정해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액수 미상의 재산상 이익 및 손해로 인한 배임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1심 유지).
피해자가 2009년 11월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하여 위 채권양도통지를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위 채권양도담보계약이 해지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후에도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하여 여전히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같은 취지로 판단한 1심판결에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했다.
피고인의 이 사건 배임행위로 인한 손해액이 5억 원 이상이 됨을 전제로 하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을 적용한 이 사건 주위적, 예비적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로 인정하여야 한다.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결론 면에서 정당하고, 검사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도 했다.
원심은 이중 양도의 대상이 된 피고인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요양급여채권은 발생이 불확실한 장래의 채권이어서 피고인의 배임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액을 확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피해자를 채권양수인으로 하는 채권양도통지를 다시 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2013. 3. 22.경 이후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함으로써 피해금액 중 상당 부분이 변제된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범행이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기죄(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와 형법 제37조 후단 경합범 관계에 있어 형법 제39조 제1항에 따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피고인과 검사는 쌍방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권양도담보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담보 목적 채권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고,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해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채권양도담보에 관한 대향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담보 목적 채권을 타에 이중으로 양도하고 제3채무자에게 그 채권양도통지를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금전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의 급부이행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금전을 대여하고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채권의 만족이라는 이익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신임을 기초로 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고 할 수 없고,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의무의 이행으로서 행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금전채권채무의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1도3247 판결 등 참조).
채무자가 기존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다른 금전채권을 채권자에게 양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채권양도담보계약에 따라 채무자가 부담하는 ‘담보 목적 채권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등은 담보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채권양도담보계약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피담보채권인 금전채권의 실현에 있다(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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