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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한달 휴일 없이 일하다 뇌출혈 사망…“업무상재해 아냐”

1심 “업무상재해 아냐”→항소심 “업무상재해”→대법원 “파기환송”

2015-12-28 14:33:54

[로이슈=신종철 기자] 건축설계기사로 일하던 20대 여성이 한 달가량 휴무일 없이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사건에서 원심법원은 업무상재해를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업무상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대 후반인 A(여)씨는 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해 8년 간 건축설계기사로 근무하며 건축설계 보조업무, 전화응대업무 및 손님접대업무 등을 담당했다. 그런데 A씨는 2012년 9월 출근해 업무를 보다가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증세가 더욱 심해지자 대학병원 응급실에 CT를 촬영한 결과 경미한 뇌출혈이 발견됐다.

A씨는 입원을 위해 대기하던 중 다시 구토 증세를 보여 화장실에 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이에 다시 CT를 촬영한 결과 고도, 다량의 뇌실내출혈이 발생해 전체 뇌실에 피가 가득 차 있고, 심한 뇌부종이 확인됐다.

A씨는 5일 뒤에 사망했다. 이에 A씨의 유족 남편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부지급 처분을 했다.

재심사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망인 A씨의 유족은 “망인은 회사 실장 L씨와 2인 1조로 설계업무를 많이 했는데, L씨가 2012년 1월부터 건축사 자격시험 준비로 토요일 근무를 하지 않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망인의 업무가 가중됐다”고 말했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에는 회사 업무로 시어머니와의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밤 10시까지 일하다 퇴근했다고 한다.

또한 “2012년 6월에 3일, 7월에 2일 쉬었고, 8월부터 재해일(9월 6일)까지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연속적으로 근무했음에도 업무의 가중으로 인해 계획된 업무를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 소장으로부터 질책을 듣기도 해 업무상 스트레스가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망인에게는 뇌실내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고혈압 등의 기왕증이나 가족력이 없어 업무상 요인 외에 뇌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개인적인 소인이 없는 상태였다”며 “따라서 망인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실내출혈이 발생해 사망에 이른 것이어서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해,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면서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12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퇴근기록을 보면 사망 무렵 망인에게 통상의 업무보다 과중한 업무가 부과됨에 따라 망인의 작업환경이나 업무형태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망인이 담당한 건축설계 보조업무, 전화응대업무, 손님접대업무 등은 특성상 다른 업무에 비해 격심한 육체적 노동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업무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망인이 토요일에 실장 없이 혼자 근무하고, 재해일 전날 소장의 지시로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밤 10시까지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다소의 육체적인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 고통과 스트레스가 망인의 박리성 뇌동맥류를 유발하거나 뇌동맥류의 파열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게 하기에 상당한 정도라고 추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실장이 건축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기는 하나 설계업무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회사 사무실에 찾아오는 손님은 매일 4~5명 정도로 건축설계를 주로 하는 회사의 특성상 손님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망인은 늦어도 저녁 8시 이전에는 퇴근했던 사정 등을 고려할 때, 망인이 업무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뇌실내출혈이 발병해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8행정부(재판장 장석조 부장판사)는 지난 7월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과 2인 1조로 일하던 실장이 2012년 1월부터 건축사 시험 준비를 하게 돼 망인은 업무량 증가로 토요일 근무를 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휴무일 중 2012년 6월에 3일, 7월에 2일만을 쉬고 나머지 휴무일에는 출근했으며 2012년 8월부터 재해일(9월 6일)까지는 휴무 없이 계속 출근하고, 근무시간도 점차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 내용도 실장은 건축설계업무, 망인은 보조업무를 수행하다가 실장의 시험준비로 망인이 실장이 하던 업무를 일정부분 대신하게 되면서 망인은 설계의 정확성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재해일 전날 소장의 지시로 망인은 시어머니와의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밤 10시까지 다음날 오전 완성을 목표로 공장용지인 토지의 용도변경을 전제로 그 위에 다세대주택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상당한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망인에게 재해일에 가까울수록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양적, 질적으로 증가했다면 망인에게 뇌동맥류라는 기존 질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 질환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됐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한달 휴일 없이 일하다 뇌출혈 사망…“업무상재해 아냐”이미지 확대보기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망인 A씨의 남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2015두49122)에서 업무상재해를 인정하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망인이 담당한 업무는 주로 설계업무로서 업무의 강도나 밀도에 비추어 신체적ㆍ정신적 부담이 중한 업무라고 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록 재해일 4주 전부터는 휴무일 없이 근무하기는 했으나 보통 20시 이전에는 퇴근해 어느 정도 규칙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망인은 실장이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 종래 담당하던 설계보조업무를 넘어 주된 설계업무까지도 일부 담당하기는 했으나, 망인은 이 회사에서 7년 정도 도면작성 등 설계업무를 수행했으므로 설계업무의 범위가 다소 넓어졌다고 하더라도 변화된 업무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망인이 할 수 없는 업무는 여전히 실장이 담당하고 실장의 조언과 검토 아래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업무의 변화로 인해 특별히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업주인 소장의 지시로 시어머니와의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밤 10시경까지 근무한 것이 뇌동맥류의 파열을 유발할 정도의 급격한 정신적 충격이 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뇌동맥류는 특별한 원인이 없이도 자연발생적으로 파열될 수도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망인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과로 및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존 질환인 뇌동맥류를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켜 파열에 이르게 할 정도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망인의 사망과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업무상 재해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증명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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