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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재벌총수 실형 면제 판결에 국민 분노”

서울고법, 정몽구 회장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

2008-06-09 09:47:13

700억원의 비자금을 횡령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회장에 대해 지난 3일 서울고법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은 성명을 통해 “재벌총수에 대한 실형 면제 판결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이 분노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서울고법 제20형사부(재판장 길기봉 수석부장판사)는 3일 정몽구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300시간의 자연·환경보호활동 내지 복지시설·단체봉사 활동 등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이에 대해 민변은 “재벌범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회 일반 인식을 불식시키기를 기대하였던 국민들의 기대는 다시 한번 여지없이 무너졌고, 재벌범죄에 대한 엄단의지를 보였던 대법원장의 발언은 무색해졌다”고 비판했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를 이렇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이 비자금 700억원을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횡령하고, 횡령액 중 일부는 불법정치자금이나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등 과거의 기업행태를 답습했고, 특히 재벌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비자금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회사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하루빨리 근절돼야 하므로 엄격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횡령액이 거액이고, 범행이 계획적촵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재벌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부실한 계열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법률상 엄연히 법인격을 달리하는 다른 계열회사의 자금을 동원하는 행위는 개별기업의 합리적인 의사결정기능과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하고 회사의 주주 등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또 “피고인이 자신의 아들인 정의선 개인 또는 정의선 관련 회사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다른 현대계열사에게 손실을 초래한 것이고, 그 피해규모가 적지 않으므로 역시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 “기회 한 번 더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에 부합”

재판부는 “비자금 관련 횡령액의 대부분이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임직원의 사기진작을 위한 경영성과금 등과 같이 회사업무와 관련해 지출된 비용, 2002년 대선과 관련해 제공된 불법정치자금과 같이 당시의 사회여건과 관행 하에서 회사경영에 따르는 다소 불가피한 용도에 사용됐다는 점에서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비자금 관련 횡령에 관해 사용처를 불문하고 횡령액으로 인정된 전액에 대해 피해회복 조치를 취했고, 배임과 관련해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의 범위가 확정되는 대로 즉시 피해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피고인은 2004년경부터는 비자금 조성규모를 현저히 줄이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었고, 이 사건 범행에 대한 반성과 부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8,4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사회공헌활동을 펼칠 것을 공표하고 이미 600억원 상당을 출연하는 등 반성의 빛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피고인은 현대자동차그룹을 직접 이끌어오면서, 다른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과정에서도, 짧은 기간 내에 IMF 이후의 혹독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6위의 자동차기업으로 성장시킴으로써 현대자동차그룹 전체는 물론 국가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을 일벌백계 차원에서 사회에서 격리해 더 이상의 경영활동을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과거의 잘못된 경영형태를 깨끗이 바로잡아 우리경제와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걸맞은 수준의 기업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고, 스스로 약속한 사회공헌방안을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건전한 기업활동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과 국가경제의 발전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의 이상에 보다 부합된다”고 밝혔다.

◈ 민변 “재벌들에 대해 실형 선고 포기하겠다는 것”

하지만 민변은 “피고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재판부에 대해 다른 일반 재산범죄에 대해서도 그처럼 피해회복 다짐만 하면 선처를 해줄 것인지 정말 묻고 싶고, 거액을 들여 사회공헌을 한다고만 하면 실형을 면제받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더 이상 재론하고 싶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가 언급한 ‘실형을 선고해 경영활동을 금지하는 것보다, 건전한 기업 활동을 통해 회사와 사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의 이상에 부합된다’는 판단은 더 이상의 할 말을 잃게 할 정도”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변은 “중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가 황제로서 재벌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국가경제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러한 법원의 판단은 앞으로 재벌들에 대해서는 실형 선고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진배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재판부의 주장은 재벌회장은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는 정의에 반하는 논리일 뿐이고, 다른 피고인들과의 형평성도 전혀 맞지 않을뿐더러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 판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민변은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로부터 국가기관이 행사하는 권한의 정당성이 부여되고 국민의 신뢰는 법원에 의한 공정한 재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누구나 알 수 있는 법 원칙을 어기고 거액을 횡령한 대기업 사주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법원은 스스로 권위와 정당성을 훼손하고 이로 인해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끝으로 “최근 ‘미친소’ 수입과 관련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의 의미에 대해 사법부는 반드시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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