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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난소암 사망 근로자 첫 업무상재해

임자운 변호사 “반올림이 9년간 집회 구호처럼 외쳐왔던 내용, 판결문 등장은 정말 감동”

2016-02-01 10:28:13

[로이슈=신종철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난소암 등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이번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임자운 변호사(반올림)는 “반올림이 지난 9년간 (삼성 반도체) 집회 구호처럼 외쳐왔던 내용들이 판결문에 등장한 것은 정말 감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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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자운변호사페이스북


법원에 따르면 이은주씨는 당시 고3인 1993년 4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사업부 온양사업장 생산라인 공정에서 6년 2개월 동안 근무하다가 1999년 6월 구토와 복부팽만 등 건강 이상의 사유로 퇴사했다.

이씨는 2000년 5월 대학병원에서 좌측 난소의 경계성종양 진단을 받고 그해 11월 절제 수술을 받았다. 이후 2004년 8월 난소의 악성종양 및 직장 전이 진단을 받고 난소 종양절제술을 받았다.

하지만 2011년 11월경 난소암의 직장, 방광, 뼈 전이 진단을 받았고, 2012년 1월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결국 사망했다.
이은주씨의 부친은 “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2012년 4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대전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2013년 2월 판정 회신을 근거로 거부했다.

이 위원회는 “망인이 근무한 공정에서는 난소암과 관련된 유해물질들이 취급되지 않아 난소암 발생위험에 업무관련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되고,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망인의 질병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이은주씨의 아버지는 “망인은 작업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중 접착제, 세척제 등 유해 화학물질에 상시 노출됐고, 인근 공정에서 배출되는 유해 화학물질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특히 접착제가 가열될 때 배출되는 휘발성 물질에는 발암물질, 생식독성물질이 포함돼 있었으며, 그 중에는 난소암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물질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망인은 6년 넘게 교대근무를 했는데, 오랜 기간 교대근무를 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난소암 발병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망인의 경우, 이러한 유해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난소암이 발병했다고 봐야 하므로, 난소암으로 인해 결국 사망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난소암 사망 근로자 첫 업무상재해이미지 확대보기
서울행정법원 제2부(재판장 박연욱 부장판사)는 지난 1월 28일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난소암 판정을 받고 숨진 이은주씨의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소송(2013구합53677)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에게 난소암이 발병한 원인 및 발생기전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작업장 금선연결 공정에서 근무하면서 유해 화학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이고, 상당한 기간 주야간 교대근무를 했으며, 그 기간 동안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것으로 보여, 이러한 유해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망인에게 난소의 경계성 종양이 발병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이후 난소암 질병이 재발ㆍ악화돼 악성 종양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라서 망인의 질병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된다”며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고, 이와 결론을 달리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정했다.

재판부는 “난소암, 특히 망인에게 발병한 점액성 난소암은 발병률이 낮은 질병이고, 발병원인이나 발생기전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므로, 발병률이 높은 질병, 발병원인 및 발생기전에 대해 의학적으로 연구가 다수 이루어진 질병에 비해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의 정도가 완화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은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만 17세의 나이로 입사해 만 6년 2개월간 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만 23세에 건강 이상을 느껴 퇴사했고, 만 24세에 난소의 경계성 종양 진단을 받았으며, 만 28세에 난소의 악성 종양이 재발했다”며 “통계자료에 비추어 보더라도, 망인의 경우 이른 나이에 다소 이례적으로 난소암이 발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망인이 이 사업장에 입사할 당시 건강상태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직업 환경적 요인을 제외하고는, 병력, 가족력, 기질, 생활습관, 환경 등 달리 개인적 위험인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망인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발암물질과 생식독성물질 등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특히 칩 접착 공정 이후 경화(고온으로 가열, 냉각) 작업이 이루어지는 오븐의 경우, 오븐에 직접 연결된 배기장치만 있었고, 오븐의 문을 열었을 때 공기 중으로 확산되는 유기화합물 등 가스를 배기시키는 국소배기장치는 별도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오븐에서 경화된 리드프레임에서 고약한 에폭시 냄새가 났다는 근로자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더구나 역학조사 당시 공기 중 유해인자에 대한 작업환경측정도 실시되지 않았고, 공기 중 유해인자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도 실시되지 않았다”며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 등에 비추어 보면,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는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근무한 공정에서 난소암의 원인물질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석면, 탈크 등의 물질이나 방사선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공기 중 유해인자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도 실시하지 않은 채 난소암과 관계있는 물질에 노출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경우 취침시간의 불규칙, 수면부족, 생활리듬 및 생체 리듬의 혼란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거나, 암 성장 억제 효과를 가진 멜라토닌 등 호르몬이 교란될 가능성도 있는바, 그 자체로 질병을 촉발하거나 또는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신체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질병의 발병ㆍ악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6년 2개월의 근무기간 내내 2교대 또는 3교대로 주야간 교대근무를 함으로써 상당기간에 걸쳐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원고의 근무형태가 이 질병의 직접적인 발병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망인들의 면역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다른 요인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난소암 질병을 발병 내지 악화시키는 작용했을 것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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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자운변호사페이스북


◆ 임자운 변호사 “반올림이 9년간 집회 구호처럼 외쳐왔던 내용이 판결문에 등장한 것은 정말 감동”

한편, 이번 사건 소송의 법률대리인 임자운 변호사는 1월 31일 페이스북에 “농성장에 와서 판결문을 다시 읽습니다. 내용도 참 좋습니다”라며 이번 판결에 흡족함을 나타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임자운 변호사는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사옥 앞에 설치한 반올림 비닐 천막 농성장에서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 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임자운 변호사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인이 반도체 공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해요인들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사정을 강조했더군요. ‘개별’ 요인과의 ‘명확한’ 관련성에 집착하는 공단의 논리와 다르다”고 근로복지공단을 겨냥했다.

임 변호사는 또 “기업의 자료 미비, 자료 은폐가 명확한 상황에서 업무환경의 유해성에 대한 엄격한 입증책임을 원고 측에 지우는 게 얼마나 부당한가도 (재판부가) 많이 생각한 것 같다”며 “심지어 재해노동자의 입증 부담을 대신 짊어지고 있다고(그러니 입증책임 전환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공단의 그 ‘재해조사’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도 꼼꼼하게 짚어 냈다”고 말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판결문의 두 문장을 적시하며 “반올림이 지난 9년간 (삼성 반도체) 집회 구호처럼 외쳐왔던 내용들이 판결문에 등장한 것은 정말 감동입니다”라며 “특히 ‘유병율 낮은 질환에 대한 입증 정도 완화‘가 판결문에 언급된 경우는 처음 봅니다”라고 감동을 나타냈다.

임 변호사가 감동이라는 판결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난소암, 특히 망인에게 발병한 점액성 난소암은 그 발병률이 낮은 질병이고, 그 발병원인이나 발생기전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한 질병이므로, 발병률이 높은 질병, 발병원인 및 발생기전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연구가 다수 이루어진 질병에 비하여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의 정도가 완화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 등에 비추어 보면,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는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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