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모범택시 3>가 최고 시청률 15.6%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 사적 제재의 '대리만족'을 안기고 있다. 범죄 가해자에 대한 사적 제재, 이른바 '비질란테(vigilantism)' 사례가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일부 사건에서는 사적 제재가 정의 실현의 도구로 인식되며 높은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적 제재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49%였고, 강력범죄에 한해 찬성한다는 의견도 44%에 달했다.
시민들이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배경에는 국가의 법 집행 기능과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자리한다. 범죄에 비해 처벌이 미흡하거나 대응이 지연된다는 인식 속에서, 일부 시민은 사적 차원의 제재를 '대안적 법 집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사적 제재가 긍정적 기능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무관한 제3자의 개인정보가 유포되거나, 집단적 공격으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사적 제재는 사적 복수의 한 유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사적 제재 행위가 만연할 경우 사법체계 전반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유빈(엔젤로주립대)·박은서(동국대) 연구진은 '잠재계층분석을 통한 시민의 사적제재 인식 유형 분류(<한국치안행정논집>)' 연구에서 시민들의 사적 제재 인식을 유형화해 탐색하고, 향후 대응 논의에 필요한 근거를 제시했다.
이미지 확대보기김유빈(엔젤로주립대)·박은서(동국대) 연구진(2025)의 연구에 따르면 시민 62.7%가 사적 제재를 '개인적 복수를 통한 쾌락 추구' 수단으로 인식하고, 37.3%는 '정의 실현'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사적 제재를 정의 실현으로 인식할수록 폭력을 용인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형사사법 기관의 처벌 공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SBS드라마 '모범택시3' 포스터 일부
■ '비질란테'란 무엇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사적 제재(vigilantism)는 국가나 공적 권력, 법률에 의하지 않고 개인이나 사적 집단이 범죄자에게 벌을 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정당한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개인 또는 집단이 범죄 혐의자에게 처벌·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사적 제재는 '자경주의'라는 이름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전통적인 사적 제재는 공권력의 사건 처리 속도나 판결 결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돼, 분노와 공분이 곧바로 폭력적 행동으로 표출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충분한 조사나 변론 없이 '현장 단죄'가 이뤄질 수 있어 오판이나 과도한 물리력 행사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반면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사적 제재, 이른바 '사이버 비질란테'가 두드러지고 있다. 온라인 사적 제재는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지만,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공개하거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집단적 망신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학계에서는 온라인 사적 제재를 '이름과 수치심 드러내기(naming and shaming)'라고 지칭한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사적 제재 역시 국가의 법 집행 권한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로 규정한다. 법 집행은 국가의 고유 권한이며, 개인이 국가의 법 집행 권한을 대체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때문이다.
■ '사이버 렉카'가 보여준 사적제재의 폐해
국내에서는 이른바 '사이버 렉카(cyber wrecker)' 유튜버들이 온라인 사적 제재를 주도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사이버 렉카는 'cyber(가상)'와 'wrecker(견인차)'를 결합한 용어로, 사건·사고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며 여론의 분노를 '견인'하듯 끌어모으는 콘텐츠 제작자를 가리킨다.
사이버 렉카는 조회수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보도의 정확성이나 윤리성보다 자극성을 우선하는 경향을 보인다.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는 배제되거나, 무고한 제3자가 추가 피해를 입는 사례도 발생한다. 사이버 렉카 주도의 사적 제재는 온라인 비질란테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 시민들은 왜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가
연구진은 시민들이 사적 제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유형화해 분석했다. 연구는 사적 제재 지지의 원인을 탐색하고, 시민들이 사적 제재의 기능과 참여 동기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는지를 검증하는 데 목적을 뒀다.
연구진은 사적제재의 기능을 (1) 사회 정의 실현, (2) 현행 법률 체계 보완, (3) 법원보다 높은 수준의 공정성, (4) 공공 일탈의 효과적 억제, (5) 공공 감시 역할 수행, (6) 피해자 비난의 정당성 등 여섯 가지로 측정했다. 참여 동기는 정의 실현, 개인적 복수, 사회적 인정, 사법 시스템 불신, 쾌락 추구 등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 '개인적 복수' vs. '정의 실현'... 두 개의 인식 계층
분석 결과, 시민들의 사적 제재 인식은 크게 두 계층으로 나뉘었다. 전체 응답자의 62.7%를 차지한 계층은 개인적 복수, 사법 시스템 불신, 쾌락 추구에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연구진은 전체 응답자의 62.7%를 '개인적 복수를 통한 쾌락 추구' 계층으로 명명했다.
반면 37.3%를 차지한 두 번째 계층은 정의 실현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응답이 높았고, 개인적 복수나 쾌락 추구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반응을 보였다. 연구진은 전체 응답자의 37.3%를 사적 제재를 정의 실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정의 실현' 계층으로 분류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계층 간 인구통계학적 특성, 형사사법 기관에 대한 신뢰, 처벌 공정성 인식, 법 위반 합리화 수준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사적 제재의 효과성과 폭력 정당화 수준에서는 차이가 확인됐다. 특히 '정의 실현' 계층이 사적 제재를 더 효과적이고 정당한 수단으로 평가했으며, 폭력 정당화 수준도 더 높게 나타났다.
■ "정의 실현"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위험
연구진은 분석 결과에 대해 사적 제재를 정의 실현의 수단으로 인식할수록 도덕적 정당화를 통해 폭력을 용인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적 제재가 강화될 경우, 오히려 더 극단적인 폭력이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연구는 사적 제재 인식과 무관하게 시민 전반에서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시민들이 '범죄자는 공정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기대를 충족받지 못할 때, 사적 제재를 공정성 회복의 수단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시민 인식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형사사법 기관 역시 처벌의 공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적 보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특정 범죄 유형이나 상황적 맥락을 설정하지 않고 일반적 사적 제재 동기만을 분석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사적 제재에 대한 인식은 범죄의 심각성이나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논문
김유빈·박은서(2025). 잠재계층분석을 통한 시민의 사적제재 인식 유형 분류: 사적제재 동기와 효과성을 중심으로. 한국치안행정논집, 22(1), 65-79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