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은 2020. 10. 11. 오후 3시 45분경 트랙터를 운전해 농로에서 왕복 2차선 도로로 진입해 좌회전하면서, 그 직전에 일시정지하지 않고 도로반사경을 통해 다른 차량이 오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
피고인은 이러한 업무상 과실로 피고인 진행방향 왼쪽 편에서 직진하여 운행 중이던 피해자 B(50대·남) 운전의 이륜차량(할리데이비슨)을 피고인 운전의 트랙터 좌측 뒷바퀴 부분으로 들이받아 피해자가 그 무렵 두부 외상으로 인한 출혈 등으로 사망하게 했다(‘이 사건 사고’).
1심(제주지방법원 2022. 9. 21. 선고 2021고단1157 판결, 오창훈 부장판사)은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진입지점 앞에서 일시정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진행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피고인이 도로상에 접근 중인 차량의 확인과 관련하여 도로 건너편에 설치된 반사경까지 살피지는 않았음은 인정하고 있으나, 피고인이 진입 직전에 위 반사경을 살폈더라면 사고지점을 향해 다가오는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이 사건 사고를 회피할수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검사는 피고인이 진입 전에 일시정지 하지 않은 과실이 있고, 피고인이 반사경을 살폈더라면 이 사건 사고를 회피할 수 있었다며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원심(제주지방법원 2023. 5. 16. 선고 2022노921 판결, 오창훈 부장판사)은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증거조사를 거쳐 변론을 종결한 후, 같은 날 공소장변경을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하고, 피고인의 원심 법정진술 등을 증거로 들어 변경된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면서 피고인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 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해 피고인의 죄책이 중하다. 다만 피고인이 1심에서 부인하다가 당심에 이르러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당심에서 피해자의 유족과 원만히 합의해 유족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이 사건 트랙터는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피고인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원심은 2023. 3. 16. 제1회 공판기일에 검사의 항소이유 진술, 피고인 및 변호인의 항소이유 부인 답변 진술 및 상당한 방법에 의한 증거의 조사를 거친 다음 검사의 C에 대한 증인신청을 채택하고 증인신문을 위하여 기일을 속행했다.
원심은 2023. 4. 18. 제2회 공판기일에 C가 아버지와 아내의 투병 등을 사유로 불출석하자 검사의 D에 대한 증인신청을 채택한 후 다시 증인신문을 위하여 기일을 2023. 5. 23.로 속행했다.
곧이어 원심은 피고인에 대하여 범죄사실의 요지,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준 다음, 구속영장에 의하여 피고인을 법정에서 구속(이하 ‘이 사건 구속’)했다. 위 구속영장에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 및 도망할 염려가 구속사유로 기재되어 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2023. 4. 27. 원심에 '피고인은 교차로 진입의 우선권이 없다'는 재판장의 지적을 듣고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어 피고인에게 과실이 있음을 모두 인정하게 됐고, '증인들에 대한 소환은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의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사는 2023. 5. 12. 원심에, 교통정리가 없는 교차로에서 양보운전 방법을 위반한 과실을 추가해 공소사실의 변경을 구하는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원심은 당초 예정된 2023. 5. 23.을 앞당겨 변경한 2023. 5. 16. 제3회 공판기일에 검사의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허가했고, 피고인과 변호인은 ‘변경된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2023. 4. 27. 자 변호인의견서를 진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의 원심 제3회 공판기일 진술을 주된 증거로 삼아 변경된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자백의 신빙성이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으로서는 피고인이 원심 제3회 공판기일에서 한 진술이 자백으로서 유력한 증거가치를 갖는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석명권을 행사하는 등으로 그 취지를 정확하게 밝혀보고, 당시 채택되어 있던 목격 증인들에 대한 신문절차를 거쳐 그 신빙성을 진지하게 살펴보았어야 한다.
(피고인이 원심 제3회 공판기일에서 한 진술의 임의성 인정 여부) 형사소송법 제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임의성 없는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취지는, 허위진술을 유발하거나 강요할 위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진술은 그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오판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위를 떠나 진술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ㆍ부당한 압박이 가하여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데 있다(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0도3029 판결, 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4도517 판결 등 참조).
피고인이 불구속인 상태에서 형사공판절차를 진행하는 법원은 기초가 되는 증거나 사실관계의 변경이 객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면, 피고인을 구속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피고인이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어느때나 갑작스럽게 일상생활로부터 격리되어 구속될 수 있다면,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의 지위를 과도하게 불안정하게 하고 방어권의 현실적인 행사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원심 제2회 공판기일이 종료될 때까지 검사는 제1심에서와 동일한 주장을 반복했을 뿐이고, 피고인이 사고 지점에서 좌회전이 가능했는지 여부에 관한 서귀포경찰서장의 2023. 4. 14.자 사실조회회신 외에는 원심이 추가로 조사한 증거는 없었다.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제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공판기일에 모두 출석했고, C가 원심 제2회 공판기일에 불출석했으나 여기에 피고인이 관여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이 사건 구속은, 객관적ㆍ외부적 사정변경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의 지위나 처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공소제기 후 원심 제2회 공판기일에 이르기까지의 심리 경과와 증거관계, 이 사건 구속은 형사소송법 제72조가 정한 사전 청문절차를 거쳐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구속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이 매우 불합리하여 그 재량의 한계를 현저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원심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공소사실을 자백하고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하도록 할 의도에서 이 사건 구속을 했다는 취지의 상고이유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이 사건 구속이 위법ㆍ부당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으므로, 설령 피고인의 원심 제3회 공판기일 진술이 이 사건 구속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그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피고인이 원심 제3회 공판기일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 또는 증명력 인정 여부) 피고인의 자백이 임의성이 있어 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하여 자백의 진실성과 신빙성까지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백이 증명력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자백의 진술 내용 자체가 객관적인 합리성을 띠고 있는가, 그 자백의 동기나 이유 및 자백에 이르게 된 경위가 어떠한가, 자백 외의 정황증거 중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없는가 하는 점을 합리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7도4959 판결, 대법원 1983. 9. 13. 선고 83도712 판결 등 참조).
특히,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구속된 사람은 허위자백을 하고라도 자유를 얻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있으므로, 부인하던 피고인이 법원의 구속 이후 갑자기 자백한 사건에서 단순히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한 진술의 신빙성이나 증명력을 평가할 때는 위와 같은 사정을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앞서 본 사실관계에 따라 알 수 있는 다음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원심 제3회 공판기일 진술은 그 신빙성이나 증명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로 입건된 후 원심 제2회 공판기일에 이르기까지 ‘교차로진입 전 일시정지하여 좌우를 살폈지만 피해자가 운전하는 이륜차량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업무상 과실의 존재를 다투어왔다.
뿐만 아니라, 제1심은 이러한 피고인의 변소를 배척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변경 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 구속 직후인 원심 제3회 공판기일에서 피고인은 위와 같이 일관되게 유지하던 입장을 번복하여 갑자기 변경된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했다.
더구나 원심 제3회 공판기일에 진술된 2023. 4. 27. 자 변호인의견서에는, 피고인이 교차로 진입 전에 일시정지하여 좌우를 살폈는지 여부와 같은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시인하는 내용은 없고, 단지 피고인에게 교차로 진입의 우선권이 없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다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피고인은 사실관계에 대하여 종전과 같은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업무상 과실이 있음을 시인한다는 취지에서 변경된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변경된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듯한 피고인의 원심 제3회 공판기일 진술은 그 자체로 모순되거나 합리성이 없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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