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1심은 ‘타살’이라고 판정했으나, 2심(항소심)은 ‘자살’이라고 판정한 것에 대해 대법원은 ‘자살’ 또는 ‘타살’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군의문사로 남게됐다
대법원은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허원근의 사망원인 및 경위에 관한 조사를 함에 있어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직무상 의무위반행위로 인해 현재까지도 허원근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 부분에 한정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 허원근 일병 당시 무슨 일 있었나?
법원에 따르면 허원근(22)씨는 1983년 9월 육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군 제7사단 3연대에 배치돼 탄약수로 근무하다가, 1984년 2월부터 최전방 GOP부대의 중대본부에서 중대장 김OO의 전령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허원근 일병은 1984년 4월 2일 오전 11시경 중대본부 내무반에서 남쪽으로 약 50m 떨어진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육군 제2군단 헌병대, 제7사단 헌병대, 1군사령부 헌병대는 허원근 일병이 자살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 후로도 육군 범죄수사단이 1990년 2월, 육군본부 법무감실이 1995년 3월 다시 조사했으나 모두 자살이라고 판단했다.
군수사기관은 “망인은 평소 중대장의 가혹행위와 폭력, 괴팍한 성격 등으로 괴롭힘을 당해 몇 차례 보직을 변경해 소대로 배치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당하고 군 복무에 대한 심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중 사고 당일 중대장으로부터 전투복 상의가 잘못 다려졌다는 이유로 심한 꾸중을 들었고, 철모가 잘못 관리됐다는 이유로 고참병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심한 강박감으로 복무 의욕을 상실하고 자살을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자살방법으로는 “망인은 M16 소총에 실탄 1발을 장전한 후 조정간을 반자동에 놓고 오른손으로 소총의 윗덮개 부분을 잡고 총구를 오른쪽 가슴에 밀착시키고 구부린 자세에서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겨 자살을 시도했으나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이에 망인은 다시 왼손으로 총구를 잡아 왼쪽 가슴에 밀착시키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 다시 한 발을 발사했으나 역시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망인은 마지막으로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누운 자세에서 총구를 오른쪽 눈썹 위에 밀착시키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결국 두개골 파열에 의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는 2000년 12월 망인의 아버지로부터 이 사고의 진상규명에 관한 진정을 접수하고 조사를 개시해, 2002년 8월 “망인이 타살된 것이라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해 9월 다시 사고가 타살”이라는 최종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의문사위는 망인이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한 것은 인정되나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망인 아버지의 진정은 기각했다. 아울러 군의문사 사건에 대한 수사를 전담할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구를 설치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의문사위의 조사결과는 이랬다.
1984년 4월 2일 새벽 중사 노OO은 중대본부 내무반 술자리에서 중대장과 격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화가 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중대장실 문을 박차고 내무반으로 뛰쳐나와 대기 중이던 사병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을 해대며 화풀이를 하다가 급기야 탄창이 삽탄돼 있었던 자신의 M16 소총을 들었다.
노OO은 중대장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허원근 일병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는데 허 일병이 팔을 들어 막자 노OO은 총을 쏘는 자세를 취했는데 그 과정에서 탄환 1발이 발사됐고 허원근 일병이 오른쪽 가슴을 맞아 쓰러졌다.
의문사위는 허원근 일병이 첫발을 맞은 후 중대장은 대대 상황실로 허원근 일병이 자살했다고 허위로 보고하는 등 사건을 은폐했으며,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보안대 담당 하사와 함께 아침에 중대본부로 왔고, 대대장이 돌아간 뒤 중대장은 하사에게 사건 수습을 도와줄 것을 요구해 하사가 승낙했다.
중대장이 철책 순찰을 나간 사이 중대본부 요원들은 내무반에 흘려져 있던 망인의 피를 닦는 등 물청소를 했고, 이날 오전 10시~11시경 폐유류고 뒤에서 누군가 망인에게 차례로 왼쪽 가슴 및 오른쪽 머리에 M16 소총으로 2발을 더 쏘아 망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국방부는 의문사위의 중간조사 결과를 접하고 2002년 8월 육군 중장을 단장으로 특별조사단(특조단)을 구성하고 재조사에 착수했다. 특조단은 2002년 11월 중대본부 내무반에서 총기오발 사고는 없었고, 망인이 자살했다는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특조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이 사건의 진상을 놓고 의문사위와 특조단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고, 감사원이 이에 대한 확인 조사를 벌이는 등 사건의 진상을 놓고 다툼이 계속됐다.
이에 의문사위는 망인의 아버지가 2003년 9월 1기 의문사위 결정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자 2003년 10월 조사를 재개하기로 결정하고, 새롭게 조사팀을 구성해 사건을 재조사했다.
의문사위는 2004년 6월 다시 망인이 제1기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와 같은 경위로 타살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망인의 사망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되었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이에 허원근 일병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2007년 4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 1심 서울중앙지법 ‘타살’ 인정해 유족에 9억 2000만원 위자료 판결
서울중앙지법 제36민사부(재판장 김흥준 부장판사)는 2010년 2월 “국가는 망인의 부모에게 8억원, 형제자매 3명에게 1억 2000만원 등 총 9억 2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대장 등은 처음에는 (중대장으로부터) 자살 사고로 보고를 받았다 할지라도 추후에 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됐다면 정확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으면서도 이에 위배해 소속 부대원들을 시켜 적극적으로 사건을 은폐ㆍ조작하도록 지시했고, 수사를 담당한 헌병대는 사건의 진상을 수사과정에서 알게 됐음에도 사건의 진상을 은폐ㆍ조작하는 등 수사기관으로서의 의무에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이러한 군수사기관과 소속 부대원들의 행위는 피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인격적 법익의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므로, 피고는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위자료와 관련, 재판부는 “망인은 22세의 젊은 나이에 헌법에서 부과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징집돼 군복무를 하게 됐고, 국가로서는 장병이 건강한 상태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기울려야 할 의무를 부담할 것인데도, 군복무 중에 망인이 타인에 의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망인의 소속 부대에서는 망인이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두 발을 추가로 발사하고 사체를 이동시키는 등 사건을 은폐ㆍ조작한 점, 망인의 가족인 원고들은 망인이 입대한 후 처음으로 정기휴가를 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망인이 세 발의 총을 직접 쏘아 자살했다는 통보를 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또 “원고들은 그때부터 망인의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망인의 죽음에 상당한 의문점이 있음을 알아냈으나, 이 사고는 군대 내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개인이 진상을 밝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모든 자료를 국가가 소지하고 있음에도 수차례에 걸쳐 형식적인 재조사만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망인의 소속부대원, 군 수사기관에 의해 망인의 사망이 자살로 위장ㆍ은폐됨으로써 진상을 밝히기까지 원고들이 받았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하기 힘들 것으로 짐작되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재판장 강민구 부장판사)는 2013년 8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다만 “망인의 유족뿐만 아니라 병역의무의 이행을 위해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와 보호자들도 불안과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 허원근 일병의 부모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탄피가 2발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하나, 망인의 사체를 옮기기 전의 탄피 수색 작업에서는 탄피를 2발밖에 발견하지 못하고, 망인의 사체를 옮긴 후에야 탄피를 추가로 1개 발견했으나 헌병대 수사기록을 작성한 수사관은 이러한 사정을 몰라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만약 헌병대가 이 사건을 자살로 은폐ㆍ조작하고자 했다면 누가 봐도 명백히 의심할 만한 사항을 수사기록에 남겨 놓지 않았을 것이며, 탄피와 같은 중요한 사항은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조작해 놓았을 것인 점 등을 종합할 때, 탄피가 2발밖에 발견되지 않은 사정만으로 망인의 사인을 타살이나 사고사로 추단하기 부족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핵심은 M16 소총으로 흉부에 2발, 두부에 1발을 발사해 자살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다.
재판부는 “망인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 및 두부에 총상을 가하는 발사 자세를 취했을 때 전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점, M16 소총을 여러 발 발사해 자살한 예는 드물기는 하지만 없지는 않다”며 몇 가지 실제 사례를 들었다.
또 “법의학자들은 대부분 흉부에 있는 2군데의 총상은 폐를 관통했지만 모두 심장을 관통하지는 않아 치명상이 아니며, 폐 손상 자체로는 의식을 잃거나 심장이 멎어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으므로 총상 후에도 다시 두부(머리)에 총을 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소견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법의학자들은 망인 스스로 M16 소총으로 흉부와 두부에 3회에 걸쳐 총을 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하며, 발사 자세도 어렵지 않게 취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망인의 사망 원인은 자살로 봄이 상당하고, 구체적 경위는, ‘스스로 M16 소총으로 좌측 및 우측 흉부에 각 1발씩 발사했으나 바로 사망하지 않자 비탈진 곳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에서 왼손으로 M16 소총의 총구를 지지한 채 망인의 두부 오른쪽 눈썹 위에 1발을 발사해 사망했다’라고 봄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판정했다.
아울러 “망인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본 이상, 자살이 아님을 전제로 한 부대원 및 군수사기관 등의 은폐ㆍ조작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며 일축했다.
◆ 대법원 최종 판단은, 타살인지 자살인지 결론 내리지 못해
사건은 망인의 유족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망인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3다7357)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의 사망과 관련해 ‘자살’ 또는 ‘타살’이라고 판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망인이 타살됐다는 점에 부합하는 듯한 증거들과 이를 의심케 하는 정황들만으로는 망인이 소속 부대원 등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하여 망인이 폐유류고에서 스스로 소총 3발을 발사해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사고 당시에만 수집할 수 있는 현장단서에 대한 조사와 부검 등이 철저하고 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망인의 사망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소속 부대원 등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국가에 대해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들에게 있으므로, 원심이 원고들의 청구 중 망인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 부분을 기각한 조치는 결론에 있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허원근의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정황사실이 분명히 존재하는 이 사건에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허원근의 사망원인 및 경위에 관한 조사를 함에 있어서 헌병대가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 사건에 관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직무상 의무위반행위로 인해 현재까지도 허원근의 사망이 타살에 의한 것인지 또는 자살에 의한 것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이 군수사기관의 현저히 부실한 조사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군의문사 사건으로서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고, 국가기관의 조사결과도 일치하지 않았던 허원근 일병 사건에 관해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를 판단했다”며 “군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해 허원근의 사망원인을 밝힐 수 없게 됐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을 인정한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