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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옳다고 믿었던 게 무너질 때"... PTSD와 다른 '도덕적 손상'

[크라임 렌즈] 도덕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목격하면 죄책감·수치심·무가치감 느껴..."곧바로 제복 다시 입히는 게 최선 아닐 수도"

2026-10-17 16:15:26

경찰관은 일반인이 평생 좀처럼 마주하지 않을 사건을 업무 중에 반복해서 겪는다. 경찰관에게 상처를 남기는 사건은 생명을 위협받거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행동을 직접 하거나 눈앞에서 지켜보고, 막아야 할 일을 막지 못했다고 느끼는 경험 역시 깊은 심리적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신념과 충돌하는 행동이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를 경험한 뒤 나타나는 심리적 고통을 '도덕적 손상(Moral Injury·MI)'이라고 부른다. 옳다고 믿어온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죄책감과 수치심, 분노, 무가치감이 뒤따를 수 있다.

도덕적 손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일부 증상이 겹치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 PTSD에서는 공포와 침습적 기억(원치 않는데도 불쑥 떠오르는 기억), 과각성(늘 긴장하고 쉽게 놀라는 상태)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반면 도덕적 손상에서는 죄책감과 수치심,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의심이 전면에 드러난다.

도덕적 손상을 겪은 경찰관에게 필요한 회복 과정도 충격적인 사건을 잊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경찰관이라는 직업적 정체성과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가치를 분리하고, 사건으로 흔들린 자기 가치감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 검사이자 행동분석가인 웬디 패트릭(Wendy L. Patrick) 박사는 지난 8월 <싸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기고한 ‘Surviving Moral Injury in Law Enforcement(경찰관의 도덕적 손상에서 살아남기)’에서 경찰관의 도덕적 손상과 회복 문제를 다뤘다. 패트릭 박사는 미국 럿거스대 사회복지대학원의 케일라 R. 핸리(Kayla R. Hanley)가 2025년 <Journal of Police and Criminal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를 토대로 경찰 조직 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짚었다.

핸리의 연구는 두 명의 중년 히스패닉 남성 경찰관이 치료 과정에서 보인 경험을 한 명의 가상 인물로 합쳐 구성한 '합성 사례'를 분석했다. 도덕적 손상과 PTSD가 함께 나타날 때 트라우마 초점 인지행동치료(TF-CBT·충격적 사건의 기억과 그에 얽힌 생각을 단계적으로 다루는 심리치료)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가 연구의 초점이었다.

미국 럿거스대 사회복지대학원 케일라 R. 핸리(2025) 연구에 따르면, 경찰관이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목격한 뒤 가족·동료와 나누지 못하면 죄책감과 수치심이 쌓이는 '도덕적 손상'으로 이어지고, 방치될 경우 PTSD와 함께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경찰관의 도덕적 손상만을 겨냥해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이 아직 없다며, 경찰 조직이 도덕적 갈등을 남기는 사건을 직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경찰관이 가족·동료·전문가와 경험을 나눌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럿거스대 사회복지대학원 케일라 R. 핸리(2025) 연구에 따르면, 경찰관이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목격한 뒤 가족·동료와 나누지 못하면 죄책감과 수치심이 쌓이는 '도덕적 손상'으로 이어지고, 방치될 경우 PTSD와 함께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경찰관의 도덕적 손상만을 겨냥해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이 아직 없다며, 경찰 조직이 도덕적 갈등을 남기는 사건을 직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경찰관이 가족·동료·전문가와 경험을 나눌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 총격·참혹한 현장만 트라우마 아냐, 신념에 어긋난 행동도 깊은 상처로

핸리는 경찰관의 도덕적 손상을 자신의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에 직접 관여하거나 다른 사람의 그런 행동을 목격할 때 생길 수 있는 심리적 손상으로 설명한다.

도덕적 손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잠재적으로 도덕적 손상을 유발하는 사건(Potentially Morally Injurious Event·PMIE)'으로 불린다. PMIE를 겪었다고 해서 곧바로 도덕적 손상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건을 자신의 도덕적 신념체계 안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도덕적 갈등이 이어질 때 손상으로 굳어질 수 있다. 특히 가족이나 동료 같은 지지체계(기대고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와 사건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소화할 기회를 갖지 못하면 도덕적 손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경찰관이 직접 어떤 행동을 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하지 못한 경험 역시 도덕적 갈등을 남길 수 있다.

■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도덕적 손상은 죄책감·수치심으로 내면화

도덕적 손상은 불쾌하거나 힘든 기억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한 행동이나 하지 못한 행동을 도덕적 판단과 연결하면서 분노와 죄책감, 수치심, 무가치감, 무력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

특히 경찰관이라는 직업적 정체성이 강할수록 직무 중 벌어진 사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자기 자신 전체에 대한 평가로 번지기 쉽다. '업무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자기평가와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는 자기평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패트릭 박사가 도덕적 손상에서 회복하려면 직업과 자기 가치를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무상 실수나 사고로 흔들린 직업적 정체성이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덕적 손상과 PTSD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핸리는 도덕적 손상을 제때 다루지 않으면 PTSD를 비롯한 다른 정신건강 문제와 함께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관의 도덕적 손상만을 겨냥해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은 아직 없다. 다만 도덕적 손상과 PTSD는 임상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고 동시에 나타나는 일이 잦은 만큼, 기존 트라우마 초점 개입을 조정해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핸리의 사례연구도 수정된 TF-CBT로 도덕적 손상을 다룰 수 있는지를 탐색했다.

■ 패트릭 박사, "상처 입은 경찰관에게 곧바로 제복 입히는 게 최선은 아냐"

도덕적 손상을 겪었다고 해서 모든 경찰관이 반드시 원래 상태로 '회복'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찰관은 경험을 완전히 극복하기보다 그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직무 복귀도 마찬가지다. 도덕적 손상을 겪은 경찰관 가운데 일부는 빠르게 현장으로 돌아가지만, 다른 경찰관은 제복을 벗고 새로운 길을 택하기도 한다.

패트릭 박사는 도덕적 손상을 겪은 경찰관에게 곧바로 제복을 다시 입도록 요구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잠시 직무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업무에 돌아갈 것인지, 돌아간다면 언제가 적절한지를 판단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회복의 목표를 '빨리 극복하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만 잡아서도 안 된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생각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 자체가 또 다른 압박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찰관에게는 하루하루 일상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회복 과정이다.

■ 가족·동료에게 털어놓기, 도덕적 손상 막는 보호요인으로

핸리는 도덕적 손상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보호요인(피해를 덜어주는 조건)에도 주목했다.

대표적인 보호요인은 사회적 지지다. 핸리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PMIE 경험을 자신의 지지체계와 공유한 경찰관은 도덕적 손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한다.

영적·종교적 연결감과 자기용서(self-forgiveness)도 보호요인으로 제시됐다. 특히 자신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여기는 행동을 직접 한 경우 자기용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핸리는 설명했다.

주변 사람들의 역할도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종교 지도자, 동료가 직업적 역할과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 여전히 가치 있다는 점을 확인해주는 일도 회복에 힘이 된다.

경찰관이 직무에서 겪은 사건을 '경찰관으로서 실패한 경험'에서 '나라는 사람 전체의 실패'로 키우지 않도록 곁에서 돕는 과정이다.

■ "강한 경찰은 혼자 버틴다"는 문화, 조직 차원의 지원 가로막는 벽

도덕적 손상을 개인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문제로만 바라보면 조직 차원의 대응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핸리는 경찰관이 업무 과정에서 PMIE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직과 구성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덕적으로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를 개인의 나약함이나 직무 부적응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사건 이후 가족과 동료, 전문적인 지원체계를 통해 경험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소화할 기회를 보장하는 일도 중요하다. 정신건강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직무 수행 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치료 자체를 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핸리는 정신건강 지원을 꺼리게 만드는 경찰 조직의 문화 역시 치료 접근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결국 경찰관의 회복을 판단하는 기준을 '얼마나 빨리 다시 제복을 입었는가'에만 둘 수는 없다. 사건을 충분히 소화하고, 직업적 역할과 개인의 가치를 분리한 뒤 현장에 복귀할지, 복귀한다면 언제가 적절할지를 스스로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찰관에게 다시 제복을 입히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제복을 벗은 상태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 원문 기사 출처
- Wendy L. Patrick, “Surviving Moral Injury in Law Enforcement”, Psychology Today, 2026년 8월.
- Hanley, K. R. (2025). The Toll of Protecting and Serving: Treating Concurrent Moral Injury an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in Male Police Officers. Journal of Police and Criminal Psychology, 40(3), 616-624.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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