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큰 관심을 모은 린지 클랜시(Lindsay Clancy) 재판이 지난 9월 4일 결론 없이 끝났다.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 고등법원 배심원단은 5주에 걸친 증언과 7일간의 평의를 거치고도 만장일치 평결에 이르지 못했다. 재판부는 결국 무효심리(mistrial)를 선언했다.
배심원 12명 가운데 11명은 클랜시가 범행 당시 산후정신증(postpartum psychosis)을 앓고 있었고, 자신의 행동에 형사책임을 질 수 없는 상태였다는 변호인 측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한 명은 달랐다. 유일하게 유죄 의견을 고수한 배심원은 클랜시가 범행 당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클랜시를 다시 재판에 세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클랜시는 여전히 살인 혐의를 받고 있으며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정신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배심원단을 11대 1로 갈라놓은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린지 클랜시는 세 아이를 살해할 당시 정신증 상태였는가."
크라임렌즈는 클랜시 사건을 임상·법정심리학자의 시각에서 들여다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임상·법정심리학자 스티븐 A. 다이아몬드(Stephen A. Diamond) 박사는 40년 넘게 성인 심리치료를 해왔다. 과거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산타클라라 카운티 고등법원 형사부의 정신과의사·심리학자 패널로 활동하며 10년 넘게 법원이 명령한 법정심리평가를 수행하고 전문가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최근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클랜시 사건을 세 차례에 걸쳐 분석한 글을 실었다. 크라임렌즈는 다이아몬드의 글을 토대로 클랜시 재판의 첫 번째 쟁점인 산후우울증과 산후정신증의 차이, 그리고 범행 당시 정신상태를 살펴본다.
이미지 확대보기<사이콜로지 투데이>에 실린 임상·법정심리학자 스티븐 A. 다이아몬드 박사의 분석(2026)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은 출산 여성 5명 중 1명꼴로 겪는 비교적 흔한 상태인 반면 산후정신증은 1000명 중 2명 정도에서만 나타나며 환각과 망상, 현실검증력 손상을 동반한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2023년 세 자녀를 살해한 미국 간호사 린지 클랜시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11대 1로 갈린 것은 클랜시가 얼마나 고통받았느냐가 아니라 범행 순간 현실 판단이 어디까지 무너졌느냐를 두고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이라며, 정신질환의 존재와 형사책임 면제 사이의 문턱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린지 클랜시(Lindsay Clancy)/ 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 셋째 출산 뒤 정신건강 악화, 세 자녀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2층서 투신
2023년 1월 24일 사건 당시 32세였던 클랜시는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분만·출산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클랜시는 셋째 아이를 낳은 뒤 정신건강이 악화되면서 여러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았고, 여러 종류의 정신과 약물도 처방받았다. 사건 발생 19일 전에는 정신과 입원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상태였다.
사건 당일 클랜시는 매사추세츠주 덕스베리 자택에서 다섯 살 딸, 세 살 아들, 생후 8개월 아들을 목 졸랐다. 첫째와 둘째는 그날 병원에서 숨졌고 셋째는 사흘 뒤 사망했다. 클랜시는 범행 뒤 자신의 손목과 목을 그은 다음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클랜시는 추락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클랜시는 아이들을 살해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세 건의 1급 살인 혐의에는 무죄를 주장했다. 범행 당시 심각한 정신질환 탓에 자신의 행동에 형사책임을 질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 측이 내세운 근거는 산후정신증과 양극성장애였다. 검찰은 반대로 클랜시가 범행을 계획했고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맞섰다.
■ 산후우울증은 5명 중 1명, 산후정신증은 1000명 중 2명
클랜시 사건을 이해하려면 우선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과 산후정신증을 구분해야 한다.
다이아몬드 박사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은 비교적 흔하다. 출산 여성의 최대 20% 안팎, 즉 5명 중 1명꼴로 어느 정도 겪을 수 있다.
반면 산후정신증은 훨씬 드물다. 다이아몬드는 출산 여성의 약 0.2%, 1000명당 2명 정도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두 상태는 중증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산후우울증은 대체로 산후정신증보다 기능 손상이 덜하고 지속 기간도 짧으며 증상의 심각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일부 사례에서는 산후우울증으로 시작한 증상이 점차 심해져 산후정신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다이아몬드는 설명한다.
산후정신증에서는 심한 불면과 극심한 불안, 과민성, 기분 불안정, 이인증(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현실감을 잃는 증상), 자살사고에 더해 환각과 망상 같은 정신증적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아이를 해치거나 죽이는 내용의 생각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침투적 사고'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다이아몬드는 덧붙였다.
■ 정신증이란, 자기 경험과 객관적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
정신증(psychosis)은 정신과적 장애 가운데 일상 기능을 가장 심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상태 중 하나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정신증을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과 병식(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자각), 판단력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는 정신상태로 설명한다. 환각이나 망상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현실검증력이 손상되면 자신의 경험과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정신증 여부가 형사재판에서 중요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는지를 따지기 때문이다.
정신증의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전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서 한 사람이 조현병 같은 정신증적 장애를 앓을 때 다른 한 사람도 같은 장애를 보이는 일치율은 연구에 따라 약 35~70%다. 일치율이 100%가 아니라는 사실은 유전 외에 환경과 심리적 요인도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해석이다.
심리적 스트레스와 약물남용, 정서적 외상도 정신증과 관련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오랫동안 정신증 환자를 치료해 온 경험을 근거로 극심한 생물·심리·사회적 스트레스에 놓이면 유전적 병력이 없는 사람도 정신증적 증상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정신증을 누구나 잠재적으로 겪을 수 있는 '원형적 인간 경험'으로 보는 관점은 다이아몬드 개인의 임상적·이론적 견해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기도 하다.
■ 범행 당시 정신증 상태였나, '명령환청'과 '사고전파' 진술이 쟁점
클랜시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은 산후정신증이라는 진단명 자체가 아니다. 범행 당시 실제로 정신증적 증상이 있었는지가 문제다.
다이아몬드 박사에 따르면, 범행 전에 클랜시를 평가하거나 치료한 정신건강 전문가 상당수는 정신증적 증상을 기록하지 않았다. 반면 범행 이후 클랜시를 병원에서 치료한 한 법정심리학자는 클랜시에게 산후정신증과 양극성장애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클랜시가 보고한 증상 가운데 재판에서 특히 다퉈진 것은 '사고전파(thought broadcasting)'와 '명령환청(command hallucination)'이었다. 사고전파는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새어 나가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고 믿는 증상이다.
클랜시는 또 범행 전 자신의 아이들과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정체불명의 남성 목소리를 계속 들었다고 법정평가자와 병원 목회자,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특정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증상을 임상에서는 명령환청이라고 부른다.
클랜시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범행 당시 정신증 상태였다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게 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다른 가능성도 제기했다.
클랜시는 경험 많은 분만·출산 간호사였다. 다이아몬드는 클랜시가 직업 경험을 통해 산후정신증이나 정신증적 증상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범행 이후 보고한 증상이 실제 경험이었는지 법정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역시 클랜시가 범행 당시 정신증 상태가 아니었고 자신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입장을 폈다.
다만 클랜시가 증상을 꾸며냈을 가능성은 다이아몬드가 제기한 추론일 뿐, 실제로 증상을 가장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 '우울했다'와 '현실을 잃었다' 사이, 배심원단이 갈린 지점
공개된 자료를 보면 클랜시가 범행 전 심각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다. 클랜시는 심한 불면과 불안, 우울증상을 호소하며 여러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사, 정신과 전문간호사의 진료를 받았다.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았고 여러 종류의 약물도 처방받았다.
하지만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증은 같은 것이 아니다. 다이아몬드가 클랜시 사건에서 던지는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다.
클랜시는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환각과 망상, 현실검증력 손상을 동반한 산후정신증 상태였던 것인가.
배심원 12명 중 11명은 클랜시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론에 가까이 갔다. 그러나 한 명이 반대하면서 평결은 성립하지 않았다. 결국 배심원단을 갈라놓은 것은 '클랜시가 얼마나 고통받았느냐'가 아니라 '범행 순간의 정신상태가 현실 판단을 어디까지 무너뜨렸느냐'였다.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사실과 범죄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 사이에는 또 하나의 문턱이 있다. 형사책임을 가르는 문턱이 무엇인지는 다음 기사에서 살펴본다.
▶ 원문 기사 출처
"Lindsay Clancy's attorney asks judge to investigate the lone juror who wanted to convict her." Michael Casey, Associated Press. 2026.09.21. <PBS NEWS>
"Postpartum Psychosis and Legal Accountability." Stephen A. Diamond, Ph.D. 2026.09.05. <Psychology Today>
"Evil Deeds and Dangerous States of Mind." Stephen A. Diamond, Ph.D. 2026.09.06. <Psychology Today>
"The Key to the Lindsay Clancy Case: Defining Psychosis." Stephen A. Diamond, Ph.D. 2026.09.12. <Psychology Today>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