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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20대 국민참여재판 무죄

2024-04-25 18: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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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방법원/대구고등법원
[로이슈 전용모 기자] 대구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어재원 부장판사, 민경준·윤규원 판사)는 2024년 4월 23일, 자신이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려놓은 구직 광고를 보고 연락해온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조직에 속아 '현금수거책'역할을 해 사기 혐의로 기소돼 피고인(20대·여)의 희망에 따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의 다수 의견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도 전화금융사기 범죄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배상신청인들의 배상신청은 모두 이유 없다며 이를 모두 각하했다.

배심원 7명 중 3명은 유죄, 4명은 무죄 평결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배심원들은 긴 시간 동안 계속된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충분히 경청하고 평의 등을 통해 숙고한 뒤 위와 같이 판단했다.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은 2022. 6. 30. 오후경 장소불상지에서 피해자 C에게 전화하여 ‘케이뱅크 안재민 팀장’을 사칭하며 ‘대출금의 30% 금액을 신용보증보험으로 납입해야 대출이 진행된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했다. 그러나 사실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들은 금융기관 소속이 아니었고 위 피

해자로부터 대출금 상환 명목으로 현금을 교부받더라도 이를 대출금 상황에 충당하여 위 피해자에게 저금리 대출을 실행하여 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은 위와 같이 위 피해자를 기망했다.
피고인은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같은 날 오후 5시 2분경 대구 북구 한 원룸 건물 입구 앞으로 이동해 위 피해자로부터 현금 1,360만 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해 2022. 7. 13.경까지 총 5회에 걸쳐 4명의 피해자들로부터 합계 1억 5110만 원을 교부받았다.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은 2022. 6. 20.경 불상의 장소에서 피해자 E에게 전화하여 신한은행 직원을 사칭하며 ‘1.86%의 저금리로 최대 8,6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저금리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제3금융권 대출 실적이 필요하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고, 이에 위 피해자가 현대캐피탈에서 1,500만 원 대출을 받자, 다른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은 현대캐피탈 직원을 사칭하며 ‘신용등급 회복을 위해서 돈을 다시 갚아야 하니, 우리가 보내주는 직원에게 위 1,500만 원을 갚아라.’라는 취지로 거짓말했다.

이에 피고인은 경북 의성군 한 병원 중앙현관 앞에서 피해자를 만나 현금 1,500만 원을 교부받았다.

피고인은 2022. 7.5. 대구 동구에서 현금 1,005만 원을, 2022. 7. 14. 대구 북구에서 현금 1,270만 원, 2022. 7.15. 경주시에서 현금 1,240만 원을 교부받았다.

피고인 및 변호인은, 피고인은 구인·구직사이트인 ‘알바천국’을 통해 ‘신진테크’라는 회사의 경리업무 모집공고에 지원했고, 위 회사의 ‘이준우 과장’을 사칭하는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으로부터 ‘신진테크’의 협력업체이자 가구판매업을 하는 ‘LSJ 파트너스’라는 회사에서 세금계산서 발행, 은행 업무 등을 수행할 것을 제안 받아 ‘LSJ 파트너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이 전화금융사기 범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이 사건 각 사기범행에 대한 공동가공의 의사가 없었고 피해자들에 대한 기망 및 편취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채용과정에서 ‘신진테크’ 또는 ‘LSJ 파트너스’를 방문하여 대면면접을 하지 않은 점, 업무지시자를 대면하지 않고 ‘텔레그램’을 통해서만 업무지시를 받은 점, 피고인이 피해자들로부터 현금을 받은 다음 이를 ‘LSJ 파트너스’로 가져가거나 그 명의의 계좌로 입금하지 않고 위 업무지시자가 알려준 계좌로 금액을 100만 원씩 나누어 무통장송금을 하거나 제3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에게 전달한 점, 수당과 경비를 피해자들로부터 수거한 현금 중에서 직접 꺼내가는 방식으로 수령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전화금융사기 범행과 유사한 것으로 불법적인 행위임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전화금융사기 조직원들과 공모하여 ‘현금수거책’으로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편취하는 행위임을 인식했고, 나아가 이를 ‘용인’하여 범행에 나아갔음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은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의 치밀하고 적극적인 기망에 속아 ‘LSJ 파트너스’를 위하여 실제로 세금계산서 발행 및 발송 등의 세무 업무를 수행하면서 외근을 한다는 착오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위 세무 업무 개시 후 추가로 부여받은 현금수거 업무가 범죄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인식하지는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 각 공소사실 중 일부에는 피고인이 금융기관 직원 행세를 하며 피해금을 교부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미필적 고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의 변소와 정면으로 모순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피해자 E가 이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 및 나머지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살펴보면, 피해자들이 금융기관 등을 사칭하는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과 통화하던 중에 피고인을 만나 현금을 교부했으므로 당연히 피고인을 금융기관의 직원으로 짐작햇다는 취지로 보일 뿐이고 피고인이 스스로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

재판부는 카카오택시를 호출해 이용하면서 자신 명의의 출금계좌에서 택시요금이 인출되도록 했고, 현금수거과정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외에 외관을 위장하거나 주변에 설치된 CCTV를 의식하는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 같은 신분노출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사정은 피고인이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용인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보여지는 정황으로 봤다.

피고인이 ‘LSJ 파트너스’에 대리로 채용되었고 적지 않은 일당을 지급받은 사실은 있으나, 피고인이 이 사건 각 현금수거를 위해 이동한 거리, 그에 소요된 시간을 고려하면 위 일당(11만 원)이 지나치게 고액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피고인은 대리로 채용된 경위에 관하여 ‘LSJ 파트너스의 이광현 팀장’을 사칭하는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으로부터 ‘협력업체에 파견하기 때문에 직급을 높여주고 비용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정식 직원이므로 현금업무도 맡기겠다.’는 설명을 들었고 이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2022. 6. 14. 친구 G에게 “위탁이다 보니 대리급으로 해서 식사, 교통비 100% 지원해주겠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위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의 위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신진테크’가 정상적인 회사인 것으로 알았던 것으로 보이고, 위 회사에서 소개받은 ‘LSJ 파트너스’도 협력업체로 인식했을 뿐 전화금융사기 조직일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나서도 자신이 ‘현금수거책’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에 관하여 의심하지 못하였다가 그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전화금융사기 범행에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전에 전화금융사기 범죄에 연루되거나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 전화금융사기 범죄의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고도화되어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취업이 절실한 젊은 연령대의 청년들에게 접근하여 정상적인 회사에 채용된 것처럼 교묘하게 기망하여 이들을 범행도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고인도 전화금융사기 범죄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정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며, 이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유죄로 판단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등 참조).

공동정범은 공동범행의 인식으로 범죄를 실행하는 것으로, 이러한 인식과 고의는 반드시 확정적일 것을 요하지 않고 미필적인 것으로도 족하나, 이러한 미필적 인식과 고의 역시 그와 상당한 관련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통하여 공소사실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피고인이 공동범행을 인식한 채 고의로 범행에 가담하였다는 사실과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된 정황이 다수 존재하여 그 부분에 관한 합리적인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경우에는 이러한 주관적 요소에 관한 증명이 부족한 것으로 보아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이와 달리 형사재판에서 위와 같은 주관적 요소에 관한 증명이 부족함에도 이를 미필적이라는 명목으로 증명책임을 완화하여 쉽사리 유죄로 인정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한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8도14361 판결 등 참조).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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