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변호사 1052명이 동참한 현직 판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연서(연판장)가 13일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에게 제출됐다. 변호사단체 차원의 성명이 아닌, 변호사들이 직접 연서 형태로 판사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반발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재판연구원 출신으로 지난 1일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이 된 A판사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던 변환봉 변호사는 13일에는 변호사 1052명의 서명을 받은 연서와 <변호사법을 위반한 부적격 판사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법원행정처에 접수했다.
◆ 변환봉 변호사는 왜 A판사를 고발했나?
▲변환봉변호사(사진=페이스북)
먼저 변환봉 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의 고발장에 따르면 A판사는 2012년 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그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2012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대구지방법원에서, 이후 2014월 2월까지 대구고등법원 민사O부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했다.
A씨는 대구고법 민사O부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배당된 사건을 직무상 취급하게 됐다. 당초 이 사건은 1심에서 전부 패소한 원고가 항소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진행되던 중 A씨는 2014년 2월 재판연구원에서 퇴직해 J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2014년 3월 28일 위 사건에 소송위임장을 제출해 사건을 수행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항소심은 2014년 7월 9일 1심 원고 패소 판결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로 결론이 나왔다. 판결문에는 A변호사가 변론기일에 참석했기 때문에 A변호사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고 변환봉 변호사는 밝혔다.
그런데 A변호사는 대법원이 2014년 하반기 진행한 단기 법조경력자(3년 이상) 법관임용절차 모집에 지원해 합격했다. 대법원은 이번에 합격한 법조경력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신임법관 37명에 대한 임명식을 지난 7월 1일 진행했다.
한편,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와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도 A변호사의 법관 임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에 변환봉 변호사는 A판사가 변호사법 제31조의 수임제한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지난 1일 A변호사가 법복을 입고 판사가 된 당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이다. 변환봉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데, 물론 이번 일은 개인자격으로 진행했다.
변환봉 변호사는 더 나아가 지난 3일부터 A판사에 대한 사퇴를 촉구하는 연서를 동료 변호사들로부터 받았다. 불과 일주일 만에 1052명의 변호사들이 적극 동참했다.
여기에는 사법연수원 9기의 60대 선배들부터 연수원 44기의 신입 변호사들 그리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들, 법원과 검찰에서 재직했던 변호사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연서에 참여했다고 한다.
변환봉 변호사는 “저희 1052명의 변호사들은 사법부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대법원의 행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사퇴 촉구 성명서와 함께 연서를 법원행정처에 제출했다.
이들 변호사들은 이날 <변호사법을 위반한 부적격 판사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법원행정처에 접수했다.
◆ A판사 사퇴 촉구하는 성명서에 담긴 내용은?
성명서는 먼저 “대법원은 법조 경험이 없는 판사의 무리한 재판이나 사법기관의 폐쇄적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 등과 같은 문제점을 시정하고자 법조일원화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법기관의 자의적인 권력행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간접적 통제까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사법신뢰를 제고하고자 한 것”이라며 “그리고 이러한 취지에 따라 지난 수개월간의 검증과 심사를 거쳐 대법원은 7월 1일 법조경력 3년차인 로스쿨 출신 변호사 37명을 경력법관으로 임용했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하지만 경력법관 임용을 두고 많은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며 “경력 3년이 되지 않아 법관 임용 통보를 받은 후 수개월간 로펌 등에서 급여를 받고 이른바 ‘예비판사’로 대우를 받으며 경력을 채우려 했다는 등의 문제제기가 바로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은 “그리고 이러한 ‘후관예우’와 같은 비판에 나아가, 경력법관으로 임용되는 판사들 중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일반 로펌에서 근무하며 재판연구원 재직 시절 취급한 사건을 변호사로서 수행했다는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더욱이 이러한 문제점은 변호사법 제31조의 수임제한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하지만 이에 대한 대법원의 답변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임용을 취소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지난1일대법원에서열린법학전문대학원출신경력법관임명식서대표자선서(사진제공=대법원)
변호사들은 “사법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최후의 보루다. 또한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실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사법부 독립의 시작은 바로 공정한 판사의 임용인데, 판사 임용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은 동종의 사안에 대해 변호사단체가 해당 변호사는 물론 소속 법무법인까지 징계를 신청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라며 “변호사단체는 제 식구에게 마저 엄격한 잣대를 통해 국민이 법조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최대한 지켜내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대법원은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권위주의적인 사법이 아니라 권위 있는 사법을 열망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잘못을 용기 있게 시정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권위를 존중 받을 수 있고, 존경 받고, 신뢰 받을 수 있는 길임을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사들은 “또한, 해당 판사 개인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판부와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지내는 재판연구원 시절 취급한 또는 충분히 취급할 개연성이 있었던 사건을 변호사가 돼 다시 취급했다는 사실은 이미 법조인으로서의 윤리의식에 흠결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은 “이와 같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가 문제될 당시 스스로 사퇴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대법원의 인사 전반에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끼는 (법관) 임용에 나아가는 모습에서 해당 본인의 법관으로서의 자질과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지난 신임 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권을 가진 법원의 존립 근거가 바로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있다...법관이 신뢰를 잃는다면 단순히 그 법관 개인에 대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의 존립 기반이 허물어져 법관과 법원 전체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대법원은 스스로의 말을 지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