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공소가 제기된 사실조차 몰랐던 피고인이 불출석 상태로 1ㆍ2심 재판이 진행돼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도, 피고인의 책임 없는 사유가 인정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40대 A씨는 2012년 6월 술에 취해 택시기사와 택시요금 문제로 시비가 붙어 욕을 하며 멱살을 잡고 밀치며 폭행했다.
이로 인해 A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담배를 피우려 했는데 담당조사관인 경찰관으로부터 제지를 당하자, 주먹으로 경찰관의 왼쪽 눈 부위를 1회 때리는 등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2013년 12월 폭행,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항소심은 2014년 7월 A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회 동종ㆍ유사전과가 있음에도 누범기간 중 범행에 나아간 점, 피고인이 폭행 범행으로 피의자신문을 하던 경찰관의 얼굴을 때리는 등 정당한 공무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점, 수사 과정에서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연락을 끊은 채 도망한 점, 피해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사건 1심 재판은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공소장 부분과 소환장 등을 송달하고 A씨가 불출석한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또한 검사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자, 항소심 재판부도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소환장 등을 송달하고 피고인 A씨가 불출석한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한 후,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실형 판결에 의한 형 집행으로 검거된 A씨는 “공소장 부본 등을 송달받지 못해 공소가 제기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검거 후 A씨는 곧바로 상소권회복청구를 했고, 법원은 A씨가 상고기간 내에 상고하지 못한 것은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해 상고권회복결정을 했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지난 6월 25일 폭행,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14도17252)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이 사건은 재심청구 사유가 있다”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 제23조는 제1심 공판절차에 관한 특례가 허용돼 피고인에 대한 송달불능보고서가 접수된 때부터 6개월이 지나도록 소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대법원규칙으로 피고인의 진술 없이 재판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사형, 무기 또는 장기(長期)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건에서다.
다만 소송촉진법 특례 규정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고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이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공판절차에 출석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피고인이 소송촉진법 제23조의2 제1항(재심 규정)에 의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판부는 “귀책사유 없이 공판절차에 출석하지 못한 피고인에게 재심청구권을 부여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은, 특례 규정에 따라 진행된 제1심의 불출석 재판에 의해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뿐만 아니라, 1심의 불출석 재판에 대해 검사가 항소해 항소심도 불출석 재판으로 진행한 후에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새로 유죄판결을 선고해 확정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또 “오히려 제1심에 이어 항소심까지 불출석 재판으로 진행돼 1심판결이 파기되면 제1심판결을 재심청구 대상으로 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고권회복결정을 받아 상고하더라도 형사소송법에 의해 사실오인이나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주장하지 못하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제대로 주장을 펴지도 못하고 항소심 유죄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고려하면, 제1심의 불출석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이 항소 없이 그대로 확정된 경우에 비해서 재심을 허용해 피고인을 구제해야 할 필요성은 훨씬 더 크다”고 봤다.
재판부는 “항소심 재판이 진행됐다는 이유로 재심절차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귀책사유 없이 1심은 물론 항소심까지 공판절차에 출석할 수 없었던 피고인은 사실심 재판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어서 실체적 진실발견을 통해 형벌권을 행사한다는 형사소송의 이념을 훼손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1심의 불출석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비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므로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례규정에 따라 진행된 제1심의 불출석 재판에 대해 검사만 항소하고 항소심도 불출석 재판으로 진행한 후에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유죄판결을 선고해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도, 재심 규정을 유추 적용해, 귀책사유 없이 제1심과 항소심의 공판절차에 출석할 수 없었던 피고인은 재심 규정이 정한 기간 내에 항소심 법원에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보면 제1심은 특례규정에 따라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공소장 부본과 소환장 등을 송달하고 A씨가 불출석한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고, 이에 대해 검사만 양형부당으로 항소하자, 원심도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소환장 등을 송달하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A씨가 불출석한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한 후,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징역 1년을 선고해 원심판결이 형식적으로 확정됐다.
그런데 A씨는 공소장 부본 등을 송달받지 못해 공소가 제기된 사실조차 알지 못했으며, 그 후 원심판결에 의한 형 집행으로 검거되자 곧바로 상소권회복청구를 했고, 이에 법원은 피고인이 상고기간 내에 상고하지 못한 것은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해 상고권회복결정을 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런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제1심과 원심의 공판절차에 출석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며 “따라서 재심청구의 사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 민일영, 권순일 대법관 반대 의견은?
반면 민일영, 권순일 대법관은 “제1심에 이어 항소심도 피고인 불출석 재판으로 진행돼 제1심판결이 파기되고 다시 유죄판결이 선고돼 확정된 경우까지 재심 규정을 유추 적용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다수의견은 법원의 정당한 법률해석권의 범위를 벗어난 사실상 입법을 한 것이나 다름없어 찬성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대법관은 “제1심에 이어 항소심까지 불출석 재판으로 진행된 경우 피고인으로서는 사실심 재판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재판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재심의 기회를 부여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러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소송촉진법의 입법상 불비는 국회의 개선 입법을 통해 보완해야지 법원의 법률 해석을 통해 보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