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특공대’에게 집단 학살당한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인 1950년 9월 이승만 대통령은 비상시향토방위령을 제정해 각 지역별로 자유대 또는 치안대를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강화군 소속 13개 면에서 강화치안대가 조직됐다. 강화치안대는 수사대를 별도로 설치해 부역혐의자 수백 명을 임의로 연행해 구금하면서 고문하고 일부는 살해하기도 했다.
이후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해 1951년 1월 강화도에서 다시 군인과 경찰이 철수하게 됐다. 이에 피난민들이 몰려왔고, 일부 피난민들은 해병특공대, 강화해병특공대, 황해도특공대 등을 조작했다.
이 특공대는 북한군 점령지역으로 건너가 식량을 가져오거나 강화도 내의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들을 조사해 연행ㆍ구금했다. 나아가 특공대는 민간인들을 부역혐의자 또는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금ㆍ고문한 뒤 살해하기도 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3월 강화 민간인 183명이 한국군과 미군의 통제 아래에 있던 유엔군 유격대에 의해 부역혐의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됐다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을 했다.
당시 민간인 특공대에 희생된 18명의 유족 1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심우용 부장판사)는 2013년 11월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공대의 전신인 치안대 등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또는 비상시향토방위령 등에 따라 조직돼 순수한 사설단체로 보기 어려운 점, 특공대는 국가의 비상사태에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한다는 공통된 목표 아래 부역혐의자 색출 및 향토방위라는 동일한 임무를 수행한 점, 비상시향토방위령에 의하면, 강화치안대는 강화경찰서의 지휘ㆍ감독을 받았고, 북한군과 부역혐의자를 체포하고 무기를 휴대하는 등 경찰권을 위임받아 행사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한국군은 특공대에 무기를 직접 공급한 점, 특공대는 피고 소속 해군과 함께 공동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하기도 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에게 특공대에 대한 관리ㆍ감독 책임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특공대가 피고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무기를 공급받아 강화도 일대의 치안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단적ㆍ조직적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데 대해 피고의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강화 민간인 희생사건은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ㆍ조직적으로 연행돼 적법절차 없이 살해된 사건인데, 그 과정에서 유족들에 대한 통지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사망 여부나 사망 경위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유족들은 학살 사건 발생 이후 유ㆍ무형의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희생자들의 사망 경위를 숨겨야 했다.
위자료 액수와 관련, 재판부는 “희생자들이 강화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인해 겪었을 고통, 그 유족들이 그릇된 인식 아래 사회와 국가로부터 받았을 차별과 경제적 궁핍,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희생자 본인에 대한 위자료는 8000만원, 그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는 4000만원, 부모 또는 자녀들에 대한 위자료는 800만원, 형제자매에 대한 위자료는 40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가가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13민사부(재판장 고의영 부장판사)도 2014년 11월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사건은 국가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 5월 28일 특공대에 희생된 피해자 유족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4다236380)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원소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특공대가 피고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무기를 공급받아 강화도 일대의 치안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기 강화군 난정리, 인사리, 상룡리 등지에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단적ㆍ조직적으로 희생자들을 살해한 것으로 인정해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비록 피해자 등으로부터 진실규명신청이 없었더라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사를 개시해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한 경우에는, 희생자의 피해 및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수용하겠다는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국가의 의사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며 “희생자나 유족의 권리행사에 대해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