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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동거남 술잔 농약 살해 징역 18년…대법원은 무죄 판단 왜?

“피고인이 범행을 계획하고 살해했다는 것에 대해 강한 의문…증거부족”

2015-05-27 14:05:17

[로이슈=신종철 기자] 아파트와 승용차 명의를 자신에게 해준 동거남에게 농약을 탄 술잔을 건네 마시게 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던 여성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살인범으로 징역 18년을 복역해야 할 상황에서,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해 파기환송함으로써 지옥을 오간 사건. 이른바 내연남 농약 살해 사건에서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하게 된 이유를 판결문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 봤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며 40대 후반인 A(여)씨는 2011년부터 아들 친구의 아버지인 B씨와 내연관계로 지내다 그해 12월 남편에게 발각돼 부부싸움을 한 후 사이가 악화되자 2012년 5월 별거를 위해 집을 나온 다음, 이혼하고 B씨와 함께 살기로 했다.

이에 B씨가 충남 아산시에 A씨 명의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또한 B씨는 이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자 그랜져 자동차 명의를 A씨로 이전했다.

그런데 A씨의 둘째 아들의 결혼이 2012년 10월 예정돼 있어 남편이 이혼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B씨의 가족들이 A씨가 유부녀라는 이유로 교제를 반대하자, A씨는 B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남편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A씨는 2013년 4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한 후 별거를 시작했고, 그해 7월부터 B씨의 아파트로 입주해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A씨는 B씨의 가족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B씨와 수시로 다투었다.

그러다 2013년 11월 4일 A씨는 이별 요구를 받았다. 이날 A씨는 B씨와 집에서 폭탄주를 먹고 취하자, 미리 준비한 농약을 B씨가 마시던 잔에 몰래 담에 마시게 했다. 결국 B씨는 농약 중독으로 며칠 뒤 숨졌다.

이에 검찰은 A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A씨는 “당시 피해자와 둘이서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나, 술을 마신 후에 안방에 있다가 우당탕 소리가 나서 화장실에 가보니 피해자가 농약을 마셔 구토를 하고 있었을 뿐, 피해자를 살해하고자 농약을 잔에 따라줘 살해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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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 A씨 살인 혐의 인정해 징역 18년


1심인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2014년 4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피고인은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재산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B)에게 커다란 분노를 표출하며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이 2013년 7월부터 피해자와 동거하면서 피해자의 가족들이 교제를 반대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로 피해자와 자주 다투었던 점,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의 이혼 서류가 발견된 점, 농약을 담았던 스포츠음료수 병에서는 피고인의 지문만이 발견됐고, 피해자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은 점 등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 당일 피해자가 입원한 병원에 왔던 것 이외에는 이후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피해자를 찾아온 적이 없고,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교제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로 자살을 마음먹고 농약을 마셨다고 보기 어렵고, 범행 당일 피고인과 피해자 이외에 다른 제3자의 출입이나 개입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중환자실에서 (농약이 들어있던) 스포츠음료수 병을 보거나 농약을 먹을 생각이 없으며, 피고인이 먹던 양주를 가지고 나와 마신 이후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또 피해자가 사망하기 3일 전에는 자녀들에게 피고인을 용서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며 “이런 피해자의 진술은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사망하기 전에 할 수 있는 태도로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을 법리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스포츠음료수 병을 준비해 둔 농약을 피해자가 마시던 유리잔에 따라 건네줬고 이런 사정을 모르는 피해자로 하여금 농약을 마시도록 해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 항소심도 A씨 살인 혐의 인정해 징역 18년

이에 A씨가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없다. 나는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피해자를 살해하더라도 상속을 받지 못한다”며 무죄를 호소했다. 또 스포츠음료수 병에 자신의 지문이 나온 것은 사건 발생 후 병을 가볍게 잡아보았기 때문이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1심 형량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대전고등법원은 2014년 12월 A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당시 남편과 이혼하고 결혼을 약속했던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하고 주변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다가 막다른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살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1심과 같이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


◆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대전고법으로 파기환송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40대 A(여)씨에 대한 상고심(2015도119)에서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농약이 들어있는 스포츠음료 PT병과 관련, B씨의 어머니 집에 보관된 이 사건 농약병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아, 어머니의 농사일을 돕던 B씨가 농약에 대한 접근 및 입수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피고인보다는 준비하기가 훨씬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또 피해자(B)가 중환자실에 후송된 이후 3회에 걸쳐 경찰관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시종일관 ‘자살할 생각으로 먹은 것은 아니다. 농약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어떤 경위로 마셨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피고인이 농약을 먹였는지는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피고인이 농약을 줘서 마신 것 아니냐?’는 경찰관들이나 자녀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피고인을 분명하게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은 채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한 점에 주목했다.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만남과 다툼, 그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불만이나 비난ㆍ간섭ㆍ압력 등으로 인해 그 이전에는 물론 사건 당일에도 수차에 걸쳐 죽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고, 특히 동생과 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화장은 하지 말라’며 사후(死後)의 매장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해 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평소 주량을 감안할 때 당시 만취 상태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고, 또한 피해자는 평소 농사일을 해와 이 사건 농약의 색깔이나 냄새를 잘 알고 있어, 사건 당일 피해자가 아무리 취한 상태에 있었더라도 생선 썩는 독한 냄새가 나는데다 진초록색을 띠고 있는 이 농약을 맥주나 양주 등의 술과 구분하지 못하고 술인 줄 착각하고 마신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설령 술에 취한 나머지 구분하지 못해 자기도 모르게 실수로 마시는 경우에도 소량을 마셨을 수는 있지만, 한 번에 마시기 어려울 정도인 100cc에 이르는 많은 양을 마신다는 것은 일부러 마음먹고 마시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만취해 농약인 줄 모르고 마셨다면 술을 마시던 탁자 부근에서 술 마실 때처럼 옷을 입은 채로 토하는 것이 보통인데, 피해자가 토한 토사물은 현관 입구 화장실 부근에 주로 있었고, 병원 후송 직후 작성된 임상기록에 ‘머금고 있다 뱉었다’고 적혀 있는 점 등에 미루어보면 피해자가 과연 농약인 줄 모르고 마셨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만취 상태를 이용해 농약을 마시게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음독 이후 수차에 걸친 진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는데, 피해자가 자살하려 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으로부터 농약을 건네받아 술인 줄 알고 실수로 마신 것이라면 깨어난 직후부터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해 강한 분노심을 표출하거나, 설령 당시 술에 취해 있어 음독 경위가 상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이 몰래 술에 농약을 타는 등의 방법으로 먹였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표명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라고 봤다.

이어 “그런데도 피해자는 수차에 걸친 경찰관들이나 자녀들의 유도성 질문에도 끝까지 피고인에 대해 특별한 분노심을 표출하지 않았음은 물론 피고인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발언조차 명백하게 하지 않았고, 피고인에게 사 준 아파트마저 피고인이 그대로 가질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이 아파트와 자동차를 반환해 주지 않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피고인에게 아파트와 자동차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한 사람은 피해자의 아들이고 피해자가 반환해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는 점, 피해자는 음독 후 딸에게 ‘아파트는 OO엄마(A)가 갖는 걸로 하고, 차는 가져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까지 표명한 사정에 미루어 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에게서 아파트를 되찾고자 하는 분명한 결심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아파트와 자동차의 반환 문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원심이 경제적 동기를 살해의 충분한 동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고인으로서는 아파트에서 피해자와 둘만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농약을 마셔 사망하게 될 경우 곧바로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돼 범행이 탄로 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만약 피고인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면 굳이 범행 장소를 아파트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별도의 은밀한 장소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이런 점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계획하고 살해했다는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심과 제1심이 유죄의 근거로 삼은 증거들 중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믿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들은 유죄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한 간접증거들”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의 진술과 스포츠음료 PT병에 묻은 피고인의 지문 등에만 의존한 나머지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유리잔에 농약을 따라 마시게 해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으니, 이런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며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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