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 등으로 불법 정치관여와 대선개입 혐의(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2014년 9월 1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세훈은 장기간 동안 국가정보원의 수장으로 근무했던 사람으로, 누구보다도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고 직원들의 정치활동 관여행위를 방지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면서 “이 사건 범행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죄책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세훈의 범행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 관한 판단을 그르쳐 사이버 활동이 국가정보원의 적법한 직무 범위에 속한다고 오인함에 기인해 범해진 것으로 보일 뿐, 원세훈이 적극적으로 위법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 또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정치적 공작을 벌일 목적으로 범행을 지시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선거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이로 인해 “술을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다”, “물건을 훔쳤지만, 도둑은 아니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었다.
이후 검찰은 선거법 위반 무죄에 대해 항소했고, 반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위반 유죄에 대해 각각 항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모두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사이버 활동은, 헌법에서 요구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특히 선거 과정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외면한 채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과정에 개입해 이를 왜곡한 것이고 동시에 국민의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부여한 평등한 자유경쟁기회를 침해한 것”이라며 “이로써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근본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와 관련, 박찬운 교수가 판결 직후 페이스북에 ‘원세훈 사건’의 1심 재판장인 이범균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혹평하고, 항소심 재판장인 김상환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는 글을 올린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변호사 경력 15년 등 법조인생 30년차를 맞이한 박찬운 교수는 “김상환,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 부장판사. 이 사람을 오래 동안 기억해야 할 것이다”라며 “오늘 그가 원세훈을 법정구속했다. 사필귀정의 판결이지만, 쉽게 나올 수 있는 판결이 아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원세훈에 대해서 1심을 맡았던 이범균 판사는 국정원법에 의한 정치 관여는 인정했지만, 공직선거법상의 선거개입은 인정하지 않았다”며 “국사범임이 분명했지만 원세훈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범균 판사의 이 판결에 대해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다”며 “나도 그 (비난) 대열에 섰다”라고 말했다.
박찬운 교수는 “선거철에 국정원이 인터넷 상에서 댓글을 달면서 정치에 관여했는데 그것을 선거개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라고 반문하며 “이 무슨 해괴한 판결이란 말인가”라고 질타했다.
박 교수는 “누구는 이 판결이 다가올 법원 인사와 관계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며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시중의 비난과는 관계없이 지난 번 인사철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이 지난 3일 발표한 고위법관 인사에서 이범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승진 임명됐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차관급 예우를 받으며 ‘법관의 꽃’이라 불린다.
박찬운 교수는 “지금 세월이 수상하다. 사법부의 법관들도 거꾸로 가는 세월 앞에서 번번이 정의와 양심을 지키지 못한다. 시대를 왜곡하는 판결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우려하며 “이런 판결에 시민들은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다면서 절망한다”고 씁쓸해 했다.
박 교수는 “그런 가운데 김상환 판사의 판결이 나왔다.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다. 하지만 김 판사의 고뇌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시대를 역주행한 1심 (이범균 부장판사) 판결을 눈 딱 감고 그냥 패스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라도 단호히 ‘노’를 외칠 것인가”라고 김상환 부장판사의 고뇌를 읽었다.
그러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유죄는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것이니 보통 부담스런 게 아니었을 것”이라며 “형량도 그렇다. 실형을 선고할 것인가, 계속 집행유예를 유지할 것인가. 실형을 선고하고 자신의 손으로 법정구속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만은 그냥 눈감아 줄 것인가...그런 고민 속에서 결단을 내린 판결이다. 선거법 유죄, 실형선고, 법정구속...”이라고 김상환 부장판사의 판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이 시대에 이런 법관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한다. 이런 기억은 길수록 좋다. 그를 잊지 말자. 그와 같은 법관이 우리의 사법부를 굳건히 지킬 수 있도록 응원하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