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학교에서 공무를 수행하다가 얼굴과 눈에 화상을 입은 뒤 우울증으로 결국 자살한 사건에 대해 1ㆍ2심은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공무상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초등학교에서 시설관리 담당자로 근무하던 A씨는 2010년 7월 학교 옥상에서 물탱크 순환모터 고장 점검을 하다가 뜨거운 물이 안면부로 분출되는 사고를 당해 얼굴화상 및 각막화상을 입었다.
그런데 수술을 포함한 치료를 받던 중 A씨는 두 달 뒤인 9월 자신의 집근처 공원에서 철봉에 목을 매어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처는 공무원연금공단에 남편의 사망은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망인의 자살은 공무수행과는 무관한 고의 또는 사적 행위에 의한 사고에 해당하다”며 거부했다.
이에 A씨의 처는 “양막이식수술 등의 치료를 계속 받았음에도 증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시력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이환돼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며 공무상재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치료와 관련된 정신적인 부담과 스트레스 등이 망인의 자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긴 하나, 그 정도가 도저히 감수할 수 없을 정도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려워서 망인의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5일 자살한 A씨의 처 K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 소송 상고심(2013두16760)에서 공무상재해로 판단해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각막 이식수술이 필요했으나 수술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고, 수술을 하더라도 시력이 회복될 가능성은 낮았고, 회복이 느리고 추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등으로 치료가 장기화됨에 따라 향후 치료에 대한 걱정이나 그로 인한 불안감과 위축감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망인은 원고와 형제자매들에게 핸드폰으로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무렇게 막 살아온 세월이 너무 아쉽고 허망하다.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이날 공원에서 준비한 끈으로 철봉에 목을 매어 목숨을 끊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망인은 공무 수행 중에 당한 이 사건 상병으로 인해 신체적 고통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시력상실에 대한 불안감, 자신과 가족의 처지에 대한 비관 등으로 상당한 심리적 위축감과 정신적 자괴감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또 “그리고 심각한 신체 손상에 동반해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현상으로 이 사고로 인해 망인이 중증의 우울증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고, 추가 수술을 받더라도 시력이 사고 이전으로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세는 더욱 악화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결국 망인은 상병을 입은 후 신체적 고통과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정신적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해 사고 발생 후 두 달 만에 자살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사정이 이렇다면 망인이 비록 자살했다고 하더라도, 자살 직전 극심한 정신적 불안상태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빠지고, 그런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므로, 망인의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망인이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등에 관해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가볍게 판단해, 망인의 사망과 공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말았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공무상 재해에서의 공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