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회의록)을 유출한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던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가졌다. 국가정보원은 2008년 1월 3일 남북정상이 대화한 내용을 녹취해 자체적으로 공공기록물인 회의록을 생산한 후 1급 비밀문서로 지정해 관리했다. 이 회의록은 2009년 2월 25일 2급 비밀문서로 재분류해 관리했다.
▲정문헌새누리당의원(사진=홈페이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으로 재직 중 업무상 필요로 국정원이 생산해 관리하고 있던 비밀 기록물인 이 회의록(대화록)을 열람해 내용을 알게 됐다.
이후 정문헌 의원은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국회에 입성했다. 그런데 정 의원은 2012년 10월 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던 중, 류우익 통일부장관에게 질문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비공개 대화록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공개했다.
이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상당히 큰 파장이 일었고, 회의록 내용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됐다.
그런데 정문헌 의원은 국정감사 발언 이후 ‘국정감사에서 발언한 내용이 사실이 맞는지’를 물어보는 당시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권영세 상황실장에게 “모두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선대위 김무성 총괄본부장에게 “통일비서관 시절에 보았고, 모두 사실이다”라고 확인해 줬다.
이후에도 정문헌 의원은 언론 인터뷰뿐만 아니라, 2012년 12월 14일에는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듭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공개했다.
◆ 검찰, 노무현 정상회담 유출한 정문헌 약식기소 vs 법원, 정식재판 벌금 1000만원
노무현 전 대통령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회의록) 유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는 지난 6월 9일 정문헌 의원을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비밀누설금지)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이상용 판사는 지난 6월 17일 “공판 절차에 의한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돼 약식 명령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정 의원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결국 정문헌 의원은 업무처리 중 비밀 기록물인 회의록에 접근 열람했던 자로서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인 회의록 내용을 누설한 혐의로 정식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김우수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벌금 500만원보다 무거운 형이다.
재판부는 정문헌 의원이 청와대 통일비서관 재직시 열람했던 대화록 내용을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 등에서 계속 공개하고, 2012년 대선 당시인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김무성 총괄본부장과 권영세 종합상황실장에게 대통령 기록물인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정문헌 의원은 “2012년 10월 8일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회의록의 존재 및 내용을 발언해 회의록 내용이 언론매체에 보도 공개됐으므로, 그 이후부터 회의록 내용은 ‘비밀’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국정감사 발언 이후 김무성 총괄본부장과 권영세 실장에게 확인해 준 것은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의록은 2009년 2월부터 2급 비밀로 지정돼 피고인의 국정감사 발언 당시에도 여전히 2급 비밀이었고, 내용도 대한민국의 국방, 외교 등과 관련해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며,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며 “피고인의 국정감사 발언내용이 언론매체에 의해 보도됐음에도 회의록 내용은 여전히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정 의원은 “언론보도를 통해 국정감사 발언내용을 알고 있던 김무성, 권영세에게 국정감사 발언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을 두고서, 회의록 내용을 ‘누설’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밀의 ‘누설’이란 비밀을 아직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이를 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며 “피고인이 김무성, 권영세에게 국정감사 당시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준 것은 ‘누설’에 해당한다”며 일축했다.
또 “비밀 누설의 방법에는 제한이 없어, 비밀인 어떤 사실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상대방에 대해 ‘사실이다’라고 수동적으로 확인해 주는 행위와 ‘어떤 사실이 존재한다’고 능동적으로 발언하는 행위를 비교해 볼 때, 그 행위들의 결과 비밀이 누설됐다는 점에서는 불법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무성, 권영세는 피고인의 국정감사 발언이 진실인지 여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직접 발언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한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에게 한 발언내용이 비밀인 상황에서, 피고인이 국정감사 당시 한 발언내용의 진위가 논란이 되자 이를 ‘사실이다’라고 확인해 주는 행위는, 종전의 비밀 공개를 강화하고 비밀내용을 확인해 주는 방식의 비밀 누설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김무성에 대해 ‘통일비서관 시절 보았다’고 말해 비밀을 지득하게 된 경위까지 알려줌으로써 그 비밀내용을 확인해 주는 효과는 더욱 강화됐다”며 “김무성에게 사실 확인을 해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이 모두 사실이라는 점을 알게 된 김무성은 대통령선거 유세현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 발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통령의 통일정책ㆍ외교ㆍ안보 등의 국정수행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통일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2급 비밀인 회의록의 내용을 공무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을, 국회의원으로서 통일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면책특권을 이용해 공개했다가, 진위 여부에 관한 논란이 생기자, 이를 진실한 것이라고 확인시켜주거나 추가적인 내용까지 발언하는 방법으로 2급 비밀이었던 회의록 내용을 누설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청와대 비서관, 국회의원이라는 막중한 지위에 비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보호해야 할 고도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반복적으로 누설해 스스로의 권위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 비서관 및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2급 기밀인 회의록 내용을 알게 됐을 당시 및 이 사건 범행 당시의 피고인의 지위, 회의록의 비밀로서의 보호필요성 등에 비춰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이 사건 범행으로 장기간에 걸쳐 정치적ㆍ사회적 논란과 대립이 야기됐고, 그로 인한 정치적ㆍ사회적 자원의 소모가 컸으며, 외교적 신인도에 큰 손상을 초래했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또한 향후 남북정상간 회담 개최 결정 및 회담과정에서 남북정상 모두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될 여지도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회의 벌금 전과 이외에 특별한 전과 없이 오랜 기간 동안 공직 기타 맡은 직역에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해 온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범행은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등과 관련된 부당한 주장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대북문제(2007 남북정상회담의 논의 내용 등)와 관해 국민의 알권리 충족 등에 이바지한 측면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이런 점도 양형에 참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