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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수혈 거부’ 각서 쓴 환자 수술 중 사망…의사 책임 못 물어

“환자 자기결정권 존중할 의무와 환자 생명 보호할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 의사 행위에 대한 무죄 법리 첫 선언”

2014-07-06 14:58:13

[로이슈=신종철 기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호와의 증인’ 환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술을 받기 전 명백히 수혈을 거부하다 수술 중 수혈을 받지 못해 사망한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과 관련, 대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에 원칙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우선하지만,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위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 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를 최초로 선언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법원에 따르면 A(여)씨는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 받지 않는 방식으로 시술되는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고자 2007년 12월 대학병원을 찾았다.

정형외과 의사 L씨는 A씨에게 무수혈 방식(타가수혈)의 수술이 가능하지만 수술 상황에 따라서는 수혈을 하지 않으면 출혈로 인해 사망에 이를 위험성이 있음을 설명했다.

A씨는 ‘여호와 증인’ 신도로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를 생명보다 소중히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이 종교단체에서 역사적으로 인정돼 온 교리다.

A씨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혈을 하지 말 것을 의사 L씨에게 요구하며 만약 문제가 되더라도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병원에 제출했다.

각서에는 “의료진은 치료 도중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다는 본인의 의지는 확고하며, 설사 환자가 무의식이 되더라도 이 방침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분으로, 관련된 문제를 심사숙고한 후 본 의료적/종교적 각서를 작성합니다. 본인의 이러한 방침을 따름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모든 피해에 대하여 병(의)원 및 담당 의료진에게 민ㆍ형사상의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도 수술 전날 A씨와 가족에게 수술 도중 대량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그런 경우 타가수혈을 하지 않으면 사망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으나, A씨는 타가수혈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결국 정형외과 의사 L씨는 A씨의 요구에 따라 무수혈 방식으로 수술하던 도중 과다출혈로 인해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해 지혈이 되지 않고 타가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자, A씨의 가족들에게 상태를 설명한 후 타가수혈을 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다.

A씨의 남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타가수혈을 거부한 반면 자녀들은 타가수혈을 강력히 원하는 등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런 중에 A씨의 출혈이 계속돼 L씨는 수술을 중단한 후 A씨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 후 A씨의 남편도 타가수혈에 동의했으나, 당시는 폐울혈 및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상태라 타가수혈이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병원 측에서는 A씨에게 타가수혈을 시행하지 않았고, 결국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했다.

이에 검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으나, 1심과 2심은 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 의사가 어떻게 행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법리 판단의 문제였다.

▲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도 지난 6월 26일 검사의 상고(2009도14407)를 기각하고 의사 A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우리 헌법은 인간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고 있고, 여기에 자살관여죄를 처벌하는 형법의 태도와 생명 보존 및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취지 등을 보태어 보면, 회복가능성이 높은 응급의료 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된 치료방법을 회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렇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가장 본질적인 권리이므로, 특정한 치료방법을 거부하는 것이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침해될 제3자의 이익이 없고, 그러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는 헌법적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이러한 자기결정권에 의한 환자의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므로 환자의 명시적인 수혈 거부 의사가 존재해 수혈하지 아니함을 전제로 환자의 승낙(동의)을 받아 수술했는데,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태에 이른 경우, 환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혈 방법의 선택을 고려함이 원칙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때에는 이를 고려해 진료행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어느 경우에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될 것인지는 환자의 나이, 지적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수혈 거부 의사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확고한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및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를 했다면, 이러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그렇지만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환자가 거부하는 치료방법, 즉 수혈 및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방법의 가능성과 안정성 등에 관한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과 이에 따른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어떠한 하자도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즉 “환자는 치료행위 과정에서의 수혈의 필요성 내지 수혈을 하지 않을 경우에 야기될 수 있는 생명 등에 대한 위험성, 수혈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 방법의 효용성 및 한계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러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한 후 진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그 설명 및 자기결정권 행사 과정에서 예상한 범위 내의 상황이 발생돼야 하며, 또한 의사는 실제로 발생된 그 상황 아래에서 환자가 수혈 거부를 철회할 의사가 없는지 재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통해 의미를 부여했다.

대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에 원칙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우선하지만,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를 최초로 선언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나아가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자기결정권 행사에 하자가 없어야 하고, 무수혈 방식으로 수술할 수 있다고 판단함에 있어서는 통상의 방식에 의한 수술에 비해 의사의 주의의무가 가중됨을 선언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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