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안관찰법의 무분별한 적용에 제동을 거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보안관철처분 기간갱신결정 취소 판결을 확정한 것과 관련,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보안관찰법상 재범의 위험성을 엄밀하게 판단한 서울고등법원 판결 취지를 재확인해 확정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법원과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김OO(50)씨는 2000년 이른바 ‘민혁당’ 사건으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하는 한편 편의를 제공 등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죄로 징역 4년6월을 선고받고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2003년 4월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김씨는 출소한 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2007년 9월 보안관찰처분을 받았고, 이후 2009년 6월 및 2011년 5월 각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처분을 받았다.
그 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가 김씨에 관해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을 청구하자, 법무부장관은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2013년 7월 “준법의식이 결여돼 있고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김씨에 대해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결정을 했다.
그 이유로 국가보안법폐지를 주장하면서 보안관찰법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이에 김씨는 “재범의 위험성의 판단근거로 든 사유들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르고, 설사 사유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재범의 위험성의 징표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안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결정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한편 김씨는 2003년 4월 출소한 후 2005년부터 2006년 6월까지 인터넷신문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했고, 이후 6개월가량 일간지에서도 근무했다. 또 2007년에는 모 연수원의 원장으로 근무했고, 2008년 1월경부터 2011년 4월경까지 ‘희망제작소’의 콘텐츠센터장으로 근무했다. 2011년 5월경부터 2012년 9월경까지 모 학회 미디어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9월경부터 현재까지 ‘한겨레 두레공제조합 연합회’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서울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고의영 부장판사)는 2013년 12월 김OO씨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결정 취소 소송에서 “피고가 2013년 7월 원고에 대한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처분을 취소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송비용도 법무부장관에게 부담시켰다.
재판부는 먼저 “보안관찰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보안관찰법 제4조 제1항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안관찰처분 대상자가 보안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재범의 방지를 위한 관찰이 필요한 경우이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재범의 위험성이란 장래에 다시 죄를 범할 개연성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유무도 처분대상자의 전력이나 성격, 환경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고가 출소 후 보안관찰 해당범죄와 관련되는 구체적인 활동을 했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는 점, 원고가 최근 사회적 이슈에 관한 집회나 시위 등에 참가한 사실이 없고, 피보안관찰자들을 만난 사실도 없는 점, 출소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정한 보수를 받는 등 비교적 안정된 사회생활을 해온 점 등 보안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범행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설령 원고가 국가보안법폐지를 주장한 적이 있었더라도 이는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적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 또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인 점 등에 비춰 보면, 원고가 보안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법무부장관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은 지난 4월 30일 심리불속행으로 법무부장관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판결 및 상고이유서와 이 사건 기록을 모두 살펴보았으나, 상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 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므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심리불속행은 형사 사건을 제외한 상고심 사건 중 2심 판결에서 중대한 법령 위반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 대법원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곧바로 기각하는 제도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보안관찰법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창이자 엄청난 감시권력”
한편, 김씨는 서울고등법원 소송 계류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지난 1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친북적’ 또는 ‘용공적’ 사상과 관련된 정치 범죄를 특별히 단죄하고 사상 전향을 강요하고 있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 법무부차관이 위원장인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와 법무부장관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법원의 판결이 없어도 보안관찰처분을 부과할 수 있어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되고 법관에 의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보안관찰대상자는 3개월마다 주요 활동 사항, 연락하거나 만난 보안관찰처분대상자의 인적사항과 일시ㆍ장소ㆍ내용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이사를 할 때는 그 이유를 신고해야 하며 국외여행이나 10일 이상 국내여행을 할 때도 여행 목적과 기간, 동행자 등을 미리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검찰과 경찰은 재범방지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연락을 금지할 수 있고 집회ㆍ시위 장소 출입을 금지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하는 것이 보안관찰법이다.
고 유현석 변호사 공익기금으로 이번 소송을 지원하고 대리한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처럼 보안관찰법은 사생활 전반에 관여함으로써 사상과 양심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눈에 보이는 철창만 없을 뿐이지 오히려 자발적인 복종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보안관찰법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창이자 엄청난 감시권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럼에도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처분의 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갱신 기간의 횟수나 최대한을 정하고 있지 않아 절대적 부정기 보안처분을 허용하고 있다”며 “2년마다 갱신되기만 하면 대상자는 사망할 때까지 보안관찰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는 형사제재 기간의 한정을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보안관찰제도는 이미 처벌받은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추측하여 불이익을 가하다는 점에서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 처벌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두 차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정부에 보안관찰법의 폐지 또는 단계적 완화 계획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금도 2000여명의 보안관찰처분대상자와 40여명의 피보안관찰자가 공안기구의 감시를 받으며 고통 받고 있다”고 밝혔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헌재가 이번 대법원 판결을 핑계 삼아 재판의 전제성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김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함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파괴하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