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국회의원에게 ‘종북의 상징’이라고 표현을 했다면 명예훼손일까, 별개로 인격권 침해일까. 또 “임 모 국회의원”이라고 표현했다면 특정 국회의원을 지목한 것일까.
박상은 새누리당이 의원이 성명을 통해 단지 “‘종북의 상징’인 임 모 국회의원”이라고 표현했다가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는데, 법원은 위자료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재판은 ‘종북의 상징’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별개로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는지가 핵심이고, 또한 “임 모 국회의원”이 제19대 국회의원 295명 중 임수경 의원을 특정한 것인지도 재판의 주요 대목이었다.
먼저 임수경 의원은 2013년 7월 27일 인천시가 백령도에서 개최한 정전60주년 예술작품 전시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3일 뒤 “천안함 46용사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백령도 청정해역에 종북의 상징인 임 모 국회의원을 대동해 행사를 치르는 송 시장”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임수경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종북의 상징’이라고 지칭해 종북의원으로 인식돼 정치인으로서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설령 ‘종북의 상징’ 표현이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경멸적 인신공격에 해당해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했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서울남부지법 제12민사부(재판장 김종원 부장판사)는 3월 25일 임수경 의원이 박상은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고(박상은)는 원고(임수경)에게 2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법원의 판결 직후 박상은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재판부가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데 대해 사법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한다”며 “소송의 주된 판단인 ‘종북’ 표현의 명예훼손 여부에 대해서 사법부가 기각했다는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자세히 살펴봤다.
먼저 박상은 의원은 “일반적인 사람들로서는 성명서 중 ‘임 모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이 원고(임수경)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지만, 그 특정을 할 때 반드시 사람의 성명이나 단체의 명칭을 명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 않거나 머리글자나 이니셜만 사용한 경우라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해 볼 때 그 표시가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면 피해자가 특정된 것”이라고 대법원 판례(2008다27769)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회의원 중 임씨는 원고를 포함해 2명뿐이고, 위 정전60주년 예술작품 전시 행사에 참석한 사람 중 임씨 성을 가진 국회의원은 원고뿐이었던 점, 게다가 원고가 1989년 평양에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후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처벌받은 사실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임 모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이 원고를 지칭하는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어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박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예훼손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성명서 중 원고와 관련된 부분은 ‘종북의 상징인 임 모 국회의원’이라는 표현뿐이고, 위 표현은 원고에 대한 피고의 의견 내지 논평을 표명한 것에 불과할 뿐 그 자체로서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만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더구나 위 표현의 앞뒤 문맥이나 전체적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원고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한다고 평가받을 만한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여부 등에 관해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위 표현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구체적 사실을 암시한다거나 묵시적으로 그 기초가 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성명서가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상은 의원이 ‘종북의 심장’이라고 하면서 만약 조금 더 구체적인 언급을 했다면 명예훼손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재판부는 명예훼손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별개로 인격권 침해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표현행위자가 타인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했다는 사유만으로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만일 표현행위의 형식 및 내용 등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혹은 타인의 신상에 관해 다소간의 과장을 넘어서서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를 함으로써 인격권을 침해한다면, 이는 명예훼손과는 별개 유형의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대법원 판례(2005다65494)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어떠한 구체적인 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원고를 ‘종북의 상징인 임 모 국회의원’이라고 지칭했는데, ‘종북’이라는 말이 대체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 원고의 지위나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종북의 상징’이라는 표현은 원고의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과도 연관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위와 같은 표현은 원고에 대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는 성명서를 통해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성명서 중 원고와 관련된 표현이 차지하는 비중, 표현의 내용 등을 참작하면 위자료 액수는 200만원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