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부장관의 지침과 달리 교육공무원들이 이에 반대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한 행위는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교육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고 호소문을 발표한 교육공무원에 대해 교육감에게 징계의결요구를 신청할 의무가 없어, 교육부장관이 교육감에 내린 직무이행명령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먼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2012년 1월 27일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기록해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 및 상급학교 진학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훈령으로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을 개정했다.
▲김상곤경기도교육감(사진=페북)
이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2월 15일 교육부에 “학교폭력 징계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7월 전원위원회를 열어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정책권고’ 결정을 했다. 권고안에는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록에 대해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재가 또 다른 인권침해가 되지 않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근거해 김상곤 교육감은 2012년 8월 9일 관내 교육지원청과 각급 학교에 “교육과학기술부 및 경기도교육청의 향후 방침이 정해질 때까지 각급 학교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사실 기록을 보류하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교육부는 일주일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권고사항에 대한 수용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그러면서 8월 23일에는 김상곤 교육감에게 “보류 지시를 취소하고,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관내 학교 및 교육지원청에 8월 24일까지 안내 공문 시행 후, 이를 제출하라”는 내용의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수원교육지원청 교육장 등 25명은 2012년 8월 27일 경기도교육청에서 개최된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 학생부 기록 관련 교육장 회의에 참석해 ‘경기도교육청 교육장 호소문’이라는 제목 아래 교육부의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 학생부 기재 반대 및 감사 철회 등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작해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다음날부터 9월 13일까지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했다. 그러면서 경기도교육청에 기관경고 처분하고, 또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거부한 교장 등에 대해서는 중징계 등을 조치했다.
특히 경기도교육감에게 징계사건 대상자인 학교장 등을 징계위원회에 1개월 이내에 징계의결 요구해 징계조치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이에 김상곤 교육감이 재심의신청을 했으나, 교육부는 기각했다. 이후 징계의결 요구에 대해 김상곤 교육감이 응하지 않자, 교육부는 김 교육감에게 2012년 11월 27일까지 교육부 특별지계위원회 관할 징계사건 대상자에 대해 교육부에 징계의결 요구를 신청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직무이행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김상곤 교육감은 이에 따르지 않고 교육부를 상대로 직무이행명령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교육감에게 징계대상자들에 대한 징계의결요구를 신청해야 할 직무이행 의무가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7일 “교육부의 징계요구는 부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공무원인 교육장, 시ㆍ도교육청 교육국장 및 그 하급자인 장학관, 장학사에 대한 징계는 국가사무이고, 징계의결요구의 신청 역시 국가사무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교육감이 담당 교육청 소속 국가공무원인 교육장, 시ㆍ도교육청 교육국장 및 그 하급자들에 대해 하는 징계의결요구 신청 사무는 기관위임 국가사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학교생활기록의 작성에 관한 교육감의 지도ㆍ감독 사무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통일적으로 처리돼야 하는 사무로서 시ㆍ도 교육감에게 위임된 국가사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기도교육청 교육국장 및 그 하급자들에 대한 징계대상자들이 학교생활기록의 작성에 관한 지도ㆍ감독 사무를 집행하면서 그 사무의 법적 성질을 자치사무라고 보고 직무상 상관인 교육감의 방침에 따라 교육부 지침의 시행을 보류하는 내용으로 직무를 수행했으나 결과적으로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징계대상자들의 직무집행 행위가 징계사유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수원교육지원청 교육장 등 25명의 호소문 발표행위는 국가공무원법 등 개별 법률에서 공무원에 대해 금지하는 특정의 정치적 활동에 해당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 또는 당파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행위 등과 같이 교육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호소문의 내용이나 표현 방식에 비춰 보면, 호소문 발표행위는 교육자적 양심에 기초해 교육부의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침의 재고를 호소한 것으로서, 교육정책의 영역에서 건전한 사회통념상 교육자가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의사표현 행위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행위를 교육공무원의 본분을 벗어나 공익에 반하는 행위로서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기강을 저해하거나 공무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어서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렇다면 징계대상자들에 대한 징계사유가 성립되지 않아 원고에게 징계의결요구를 신청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직무이행명령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관련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 사이의 견해 대립과정에서 경기도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원들이나 교육장들의 행위가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경기도교육청 “잘못된 징계 바로잡은 판결, 환영”
이와 관련, 경기도교육청 이홍동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은 학교폭력 조치사항 학생부 기재보류에 대해 내린 중앙정부의 징계지시 자체가 부당하다는 점을 적시한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 재판부, 어려운 길을 함께 해준 경기교육가족과 성원을 보내준 도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이 정한 아이들 인권을 지키기 위해 경기교육의 교육자들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중앙정부의 징계 대상에 올라 훈ㆍ포장에서 제외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그간의 심경을 전했다.
이 대변인은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는 그분들의 양심이 옳았음을 다시 확인했다”며 “ 경기교육은 양심적인 우리 교육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겠다”고 강조했다.